“그러니까, 카페 사장님은 경영 이유상 인원 감축이 필요했다고 사유서를 작성해 주셨을지 몰라도 근무 일수를 137일밖에 못채우셨어요. 비자발적인 퇴사 그리고 퇴사일 기준 1년 반 이내 180일 이상 근무 조건이 모두 맞아야 해요."
“계약서에는 주 3일 일했지만 이따금씩 사장님이 부르..”
“계약서 상 적혀있는 일수로만 계산되기 때문에 그래도 안돼요.”
“하아.. 방법이 없나요?”
“네.”
끝끝내 그 망할 카페는 나에게 엿을 먹였다. 일이 이렇게까지 틀어진 거 계약서를 잃어버린 것도 모자라 내 서명을 2번이나 위조해서 신고한 사실을 알려버릴까. 아니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카페의 민낯을 고발할까.
그런 마음을 먹기에 앞서 나는 눈앞이 캄캄했다. 얼마 안되는 돈이라도 실업급여를 받으며 다시금 힘내보려 했다. 왜 나에게 연속되는 시련이 주어지는가.
고용센터에서 허탈하게 나온 지 3분 만에 진한 먹구름은 나를 조롱하듯 비를 쏟아낸다. 이대로 집에 들어가면 기분이 더 안 좋을 게 분명하다.
그래, 한 줄기 위로를 찾아보자면 나는 읽을 책을 한 권 들고 나왔다. 실업급여를 신청하고 기분 좋게 읽으려던 책인데 조용히 우울한 기분을 삭이기 위해 읽는 책이 되었다. 네이버 지도를 켜서 저장해 두었던 카페를 왔다. 수제 도넛을 파는 카페다.
지금 나는 당이 필요해. 슬픔을 이겨낼 아드레날린이 필요해.
도넛을 스윽 둘러보고 결국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켰다. 막상 들어오니 입맛이 없다. 그리고 허투루 돈을 쓸 수 없다. 당은 무슨, 살이나 빼자.
카페는 우드톤의 인테리어로 깔끔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4인석 자리가 많이 남아 있었지만 가장 구석지고 작은 2인 테이블에 앉는다. 오늘은 비좁은 공간에 몸을 맡겨 아늑함을 얻고 싶다.
Deep Pressure Stimulation (DPS)라는 용어가 있다. 한때 즐겨보던 미국 드라마에서 얻었던 정보인데 피부, 근육, 관절 등에 일정하고 부드러운 압박을 가함으로써 신경계를 진정시키고 안정감을 주는 감각 자극 치료다.
굳이 많은 자리를 두고 비좁은 원형 탁자에 앉은 이유다. 비록 뒷 테이블에서 시끄럽게 자신의 사생활을 떠들고 있어도 나는 그 자리가 마음에 들었다. 오늘은 옆 테이블 소음이 하나의 배경음악처럼 멀게 들린다.
카페 음악과 사람들의 말소리가 번잡스럽게 뒤섞인 곳에서 독서하며 차분함을 얻는다. 시끄러움 속에서 고요함을 찾는 모순. 모순은 가끔 우리에게 예상외로 더 높은 효과를 준다.
책을 보다 나무 창문틀 위에 놓인 꼬마 화병이 눈에 들어온다. 이 식물은 원래 이렇게 작았던 걸까 아님 길에서 자라 있는 잡초를 뽑아 꼽아 놓은 걸까. 잡스럽지만 앙증맞으니 괜스레 귀엽다. 귀여운 식물을 눈에 담아 내 마음을 또 한 번 달래준다.
어느정도 마음이 가라앉으니 더 이상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에 가야하나. 집에 가기엔 살짝 이른 시간인데. 지하철을 타면 집에 10분 내로 도착하는데 이대로 들어가기엔 영 아쉬웠다. 그래, 오늘 날도 덥지 않은데 걸어볼까. 도보로 걸으면 1시간 10분 정도가 걸린다 뜬다. 좋아. 걷자.
카페를 나와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감정이 북받친다. 왜? 나름 나를 잘 도닥였다고 생각했는데 왜 갑자기 울려고 하는거야?
울지마, 울지마. 내가 너를 이렇게 달래주고 있잖아. 저장해뒀던 카페도 갔고 빌려온 책도 읽고 집 가는길 산책까지 하고있잖아. 울어서 얻는 것은 없어. 정 울고싶으면 꼴사납게 길에서 울지 말고 집 가서 울자.
눈시울이 붉어졌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가, 당당하게 걷는 연습을 했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멀쩡한 척 표정을 숨기려고 했다가 나 혼자 1인 연극을 공연하는 중이다. 그렇게 15분 정도 나홀로 관객 없는 공연을 했다.
관객 없는 무대에서 나 홀로 독백.
그래, 실업급여 뭐. 괜찮아. 푼돈에 연연해하지 말자. 괘씸한 사장도 정말 신고해서 혼내주고 싶지만 둥글게 사는 법도 배워야지. 그래, 내가 큰 사람 되자. 이 속상한 일들이 언젠가 피와 살이 되는 때가 오겠지.
덕분에 글감도 생겼잖아? 고맙다 고마워!
집에 오자마다 더운 물로 씻으니 어둡던 나의 마음이 맑게 갰다. 그래, 울지 않고 오늘 정말 잘했어! 운다고 일이 해결될 거였다면 나는 억만장자가 되어있었겠지. 근데 나 억만장자 아니잖아?
나는 오늘도 내 감정과 줄다리기를 한다. 가끔은 내가 이기고 가끔은 감정이 이기는 끝없는 내면의 싸움. 정답은 없다. 하루 마음껏 울어도 오답은 아니지만 오늘 나는 나를 위로할 다른 방법을 찾은 것일 뿐.
그렇게 나는 단단해진다.
글유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