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리가 만난 지구인 17 _ 무속인 홍세미.
천황글문도사, 지인의 지인이 그녀를 나에게 소개시켜주었다. 사실 우리 사이에 몇 개의 다리가 걸쳤는지는 셀 수 없다. 그저 속 깊은 이야기를 잘 듣고, 냉정할 땐 냉정하게 딱 선을 긋는 무속인이라는 말만 듣고 그녀를 찾아 갔다. 남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서로 닮아 있었다. 그녀의 점집은 평범하고 소박한 가정집이었고, 방 한 칸만 불상이나 신상을 모셔두고 있었다. 방문 하나 사이로 새로운 세계가 나타났다. 별나지도 모나지도 않은 중년의 그녀는 푸근한 옆집 아주머니처럼 선선히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기꺼이 인터뷰에 응했다.
Q . 언제 신을 받으셨어요?
A . 우리 할아버지(모시는 신) 모신 지가 27살 부터예요. 그때 말문이 터졌어요. 그 앞엔 신이 온 줄도 모르고 살았지요. 미쳤다는 소리도 들었어요. 시집가서 첫애 낳았을 땐데, 밤중에 일어나서 갑자기 곡을 하면서 울기 시작했어요. 아무리 그치려고 해도 안 그쳐져요. 돌도 안 된 애기를 안고 우는데, 내 마음대로 그쳐지지가 않아요. 신랑이 사람도 부르고 하면서 애를 써보는데 정말 내 의지대로 안돼요. 나중에 알고보니까, 그날 동네에서 누가 애기를 낳다가 죽었대요. 그 혼령이 씌인 거예요. 그래도 신이 온 줄은 모르고 그냥 이사만 갔어요.
그때부터 신랑이 아프기 시작했어요. 나는 나대로, 밤마다 하얀 말을 탄 장군 같은 사람이 하늘에서 우리 집 마당으로 내려오는 걸 보기 시작했어요. 밤마다 하나씩 하나씩. 꿈이 아니라, 그게 진짜 눈에 보여요. 지금 내가 모시는 신이었는데, 그때는 내가 미쳤나보다 했어요. 아침이면 또 멀쩡해졌거든요. 결국은 돌아가신 시아버지 혼이 나한테 실렸어요. 내가 시집 오기 전에 돌아가셔서 저는 본적 없는 분이예요. 그런데 그 분이 실려서, 아픈 신랑을 자다가 막 깨워요. ‘야야, 일어나봐라, 일어나봐라’하면서요. 신랑한테 존댓말을 늘 했는데, 야야, 하고 부른 적이 처음이었어요. ‘내가 니를 살리줄낀데, 니가 와 이라고 있노’ 그래요, 내가. 신랑도 놀랬어요.
중앙시장에, ‘할머니집’이라고 유명한 점집이 있었거든요. 육효점( 『주역』의 팔괘의 원리를 이용하여 인간의 길흉을 판단하는 점법)을 보는 분이셨어요. 내가 왜 이러는 건지를 모르겠으니까, 거길 찾아갔어요. 그때도 팔십 넘은 분이셨으니까 지금은 돌아가셨겠죠. 그 할머니가 절 보더니 자기 집에 앉아서 오는 사람들 보고 맞춰 보래요. 근데 그게 다 맞았어요. 그래서 마당에 판자 놓고, 촛대 두 개 켜 놓고, 물 떠놓고, 내림굿을 받았어요. 그리고 근 30년 동안 손님을 받기 시작했어요. 나도 그 할머니처럼 육효점을 봐요. 명리도 배웠고요.
Q . 어떤 어린 시절을 보내셨어요?
A . 사실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부모님이 많이 반대했지요. 엄마는 ‘딸은 공부하면 안 된다’ 하고, 울 아버지도 ‘홍씨 집안 여자는 공부하면 안 된다. 남자 누른다’ 하셨어요. 공부 시켜달라고 많이 울었는데 결국 안됐어요. 그게 원이 맺혔어요. 다음 생에는 다른 건 몰라도 공부 좀 시켜주는 부모를 만났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많이 하고 살아요. 절에 가서 부처님 전에, 조상님 전에 ‘생각 없이 살지 말고 정신 차리고 죽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동물이든 사람이든 죽으면 몸은 없어지지만 혼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탄생하는 육체를 찾아 들어가요. 그때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좋은 몸에 들어가겠지요. 그러니까 인생이 힘들다고 부모 탓을 해도, 결국은 내 탓이에요. 내가 아무 몸에나 들어간 거니까요.
오빠가 둘 있었어요. 내 밑으로 여동생 남동생 하나씩 있고요. 친정이 우산 장사를 했어요. 우산을 만들어서 파는 거요. 학교 갔다 오면 계속 우산을 만들었어요. 놀 시간도 없었어요. 딸 중에서 맏이라는 이유로 살림도 많이 시켰어요. 여동생은 안 시키는데. 많이 속상했어요. 그런 것 까지는 좋다 쳐도, 엄마가 큰 아들이랑 막내만 챙기고, 우리 셋은 안 챙겼어요. 그 차별이 사무쳐요. 학교도 안보내고, 일만 시키고, 선본지 보름 만에 시집보내고. 내가 눈물이 안 나겠어요.
Q . 어떤 신을 모시고 계세요?
A . 어떤 신이라기보다, 신은 다 와요. 신이란 신은 다 오셔야 해결이 돼요. 우리 할배(모시는 신)가 가르쳐 주긴 하지만, 동자신이 올 때도 있어요. 동자신은 거짓말도 하거든요. 그러니까 점이란 건, 지나간 걸 잘 맞춘다는 거지, 다가오는 건 잘 못 맞춰요. 그래서 명철학을 더 공부했어요. 그걸 합치니까 딱 잘 맞아요. 내가 꾸준히 공부하고 해야 잘 맞춰요. 난 굿도 잘 안 해요. 굳이 굿 안 해도 다른 방향을 제시하면 잘 가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굿 하면 최소한이 사오백인데,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요.
굿을 많이 하면 나야 돈을 많이 벌겠지요. 하지만 꼭 굿 한다고 다 해결되는 건 아니에요. 나도 아들 딸 있어요. 내가 안 해도 되는 굿을 하면 내 업이 쌓이고, 우리 아들딸, 며느리, 손자까지 업이 가면 안돼요. 업장소멸 기도를 열심히 해요. 굿 안하고 잘되는 방법을 가르쳐주면 그 사람도 좋고 나도 좋지요. 욕심을 부리면 우리 할배가 가버릴 수도 있어요. 부처님도, 사람들도 날 보고 있는데, 임시방편으로 돈버는 건 안 해요. 내가 행동을 잘 해야 자식들도 본을 보지요.
Q . 사실 저는 점을 잘 안 봐요. 점을 딱 두 번 봤는데, 그 두분이 너무 잘 맞추셨어요. 겁이 났어요. 내가 여기 매달릴까봐.
A . 점에 너무 집착하면 안돼요. 나도 여기 안달복달 매달리지 않아요. 내가 미친 사람도 아니고(웃음). 하지만 기도는 필요해요. 사주팔자가 힘든 사람들이 있어요. 그냥 종교 생활을 하라고 해요. 일과 일상을 조절하면서 살아야죠. 나도 손님 볼 때는 손님 보고, 친구랑 놀러 갈 때는 놀러가고, 살림 할 때는 살림해요. 그걸 잘 유지해야 해요.
Q . 나에 대해서 사람들은 어떤 편견을 가지나요?
A . 내가 일상생활을 잘 하면서 살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사람들이 편견을 가지고 날 대한다는 생각은 잘 못했어요. 친구들 하고도 잘 지내고, 가족들도 마찬가지고요.
오히려 다른 편견이, 제가 절에 다닌다는 것 때문에 약간 다르게 봐요. 무당이 절에 다니는 걸 이상하게 생각해요. 실제로 무속인들이 산에는 열심히 다니는데 절에는 잘 안가요. 절에 가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으면 참 특이한 사람이라고 그래요. 저는 부처님을 배제할 수는 없어요. 내가 무당이라고 불교 믿지 말란 법 없어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기독교 믿는 사람도 마찬가지고, 천주교 믿는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다 신앙을 가지고 종교생활 하는 거예요. 다른 종교 믿는 사람도 사는 게 힘들면 나한테 와서 상담 정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걸 존중해줘야죠.
그녀는 어떤 퍼포먼스도 하지 않았고, 신을 과장해서 설명하지도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평범한 애기엄마에게 신이 내렸다. 그녀는 가정을 떠나지도, 신을 핑계 삼아 방황하지도 않았다. 점을 너무 믿지 말라고 말하는 무속인이라니. 그러나 그녀의 단골손님들은 그런 점을 매력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오늘도 그녀의 점집엔 손님이 찾아들어 한 많은 이야기를 쏟아낼 것이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공감하는 그녀, 할 수 있는 한 덜 고통스러운 삶을 제시하는 무속인, 그리고 아들딸의 엄마이며 손자 손녀의 할머니. 그렇게 균형을 잡으며 살아가는 것이, 홍세미가 살아가는 방법이다.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부산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다리 사업 일환으로 추진됩니다.
우리가 속칭 ‘소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어쩌면, 인종이나 민족, 장애, 성별, 외모, 학력, 가족 구성, 지역, 사회적 신분 등
사회가 정한 틀에 의해 소수자로 분류된 건 아닐까요.
김유리의 지구인 프로젝트는 우리 모두 다 소수자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부산에 살고 있으면서 사회적 편견을 경험한 40인의 지구인 에피소드’를 기록해
그동안 깨닫지 못했거나 무관심 했던 우리 안의 배타성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부디 40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마음에 작은 파도가 일렁이기를 소망해 봅니다.
_ 부산문화재단 ×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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