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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르기니 Yurgini Oct 29. 2024

나도 할머니가 될 텐데

0. 시작하며

  지난 2년여간 드라마 보조작가로 일하면서 다양한 시기의 역사, 정치, 문화, 사회 등의  내용을 조사해 왔다. 

  그 내용들을 감히 전문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드라마에 쓰일 특정 주제나 소재 맞는 부분을 주로 2차 자료로 정리하면서 1차 자료를 더했고, 필요에 따라 극에 맞게 재생산하여 정리했기 때문이다.


  메인 작가를 보조하는 보조작가로 나는 제법 많은 내용의 자료 정리를 진행했다. 

  자료 조사와 그 정리는 내가 지난 2년간 제일 많이 해온 일이자, 제일 재미있었던 일이다. 


  그 어떤 막막한 내용을 던져주실지라도 일단 찾기 시작하면, 찾을 때마다 알게 되는 새로운 지식에 머리가 뎅- 울리는 오묘한 쾌감을 느꼈다. 나는 언젠가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어서 보조 작가가 되었는데, 드라마 보조작가의 조사 생활이 무척 즐거워서 가끔씩은 그냥 이것만 해도 먹고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일을 하면서 새로이 알게 된 내용들 중에서 일부는 머릿속에서 쉬이 휘발되지 않았다. 

  인물의 기사나 인터뷰를 읽고, 그가 했던 말에 대해 생각할수록 우러나는 감정들 때문에 몇 날 며칠을 속에서 앓던 날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주로 어떤 내용이 내 속을 헤집었냐면, 중장년층에 대한 내용들이 그랬다. 


  내가 아직 겪지 못한 세월을 사는 어른들. 

  그들의 생애에 관련된 기사나 인터뷰를 볼 때면 자연스레 나의 부모가 떠오르고, 훗날 그 시기를 겪을 나를 상상하곤 했다. 때문에 지나온 과거를 반추하는 것보다 미래에 겪을 일을 생각하는 시간이 늘었다. 조사한 자료를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나와 내 가족을 대입하면 순식간에 오만가지 감정과 생각이 휘몰아쳤다. 

  내가 알게 된 사회 상황과 현상 속에 빗대어 상상한 우리의 미래. 그 상상 속에서 우리는 기쁘고 행복하기도 했으나, 대체로 불행하고 막막하고 두렵고 어려웠다.  


  행복한 모습보단 자연히 불행해질 미래를 상상했던 건 왜일까. 

  그건 중장년층에 대해 설명하는 자료들에 낙관보단 불행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OECD 최고 수준이고, 이는 나이가 많을수록 저소득-저자산으로 그 비율이 높아졌다1). 노인빈곤율은 가처분소득(전체 소득에서 이자나 세금을 뺀 것으로 소비나 저축에 쓸 수 있는 돈) 기준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상대적 빈곤율을 뜻하는데2), 2020년 한국 66살 노인 빈곤율은 40.4%로 OECD 37개국 중 가장 높았다. 


  관련 자료를 제출한 OECD 37개 회원국들의 평균 노인 빈곤율은 14.2%로 한국의 1/3 정도다. 


  한국 사례를 좀 더 살펴보자면, 한국 노인 중에서도 76살 이상 ‘후기 노인’의 빈곤율이 높았고, 여성 노인의 빈곤율이 남성보다 높았다. 위 보고서에는 여성의 연금 수령액이 남성보다 적은 반면 기대수명이 길어, 빈곤율이 높다고 분석했다3).  


  정리해보면, 한국의 66살 노인의 열 분 중 네 분이 빈곤을 겪고 있으며 나이가 들수록 그 빈곤율은 늘어나며 성별로 봤을 때, 여성 노인이 그 빈곤을 크게 맞이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사실 이러한 수치들 때문은 아니었다. 

  나를 동요시킨 건 노인 자살 관련 내용이 실린 기사와 그 기사를 읽고 이어지던 단상들 때문이다. 


  “어른들의 자살에는 이타적 원인이 많다”는 교수의 말이 적힌 기사에는 20여 년이 지나도 노인 자살 문제는 여전히 나아진 게 없고, 이는 빈곤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내용이 있다고 적혀있었다4). 

  노인들의 빈곤은 어디서 왔을까.






  단상의 시작은 정년퇴직부터였다. 

  사람 수명이 100살을 넘어간다는데, 정년이 정해진 한국에서 어른들은 정년퇴직 뒤에 어떤 삶을 살고 있나.    

  다시 또 일을 하신다던데. 근데 재취직하면 임금도 상황도 많이 바뀐다던데. 벌이는 전에 비해 훨씬 준다던데.   

  일을 한다는 것은 노후대비가 진행형이라는 것일까. 이건 사람마다 다를 것일 텐데. 


  아버지의 퇴직 이후 고민이 길어진 나의 어머니. 정년 이후의 삶의 불안정함. 

  왜 이런 불안정함을 느끼는 걸까.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은 왜.

  부모님 세대가 겪은 세상의 이해와 깊이는 어디로 가는 걸까. 

  세상은 그것마저 같이 은퇴시켜 버리는 것일까. 


  노인이 되면… 내가 이 사회와 거리를 두겠다고, 멀어지겠다고 마음먹는 건 사회적 여건, 그런 분위기나 상황 때문이 아니라, 개인 선택으로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선택지가 주어지는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 끝에 ‘나도 할머니가 될 텐데.’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나도 할머니가 될 텐데. 


  나는 나답게 살고 싶은데. 그럼 지금과 같은 사회는 아니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왜’에서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로, ‘어른들’에서 ‘중장년층’으로 그 대상이 넓어졌다. 

  그렇게 생각을 굴리고 굴리다가 단순히 생각만 해선 알 수 없기에 글로 정리하며 도대체 어떤 것들이 나를 이런 생각으로 이끌었는지, 그래서 정확히 무엇이 하고 싶은 것인지 알아보기로 했다. 


  글의 표제를 [나도 할머니가 될 텐데]로 삼아, ‘노년이 불행한 사회에 청장년이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의식에서 글을 출발해보려 한다. 그리하여 ‘어떻게 노인이 되어가는가’ ‘어떤 노인이 되길 꿈꾸는가’ … '어떤 노인사회가 되어야 하는가’ 등 마구 떠올렸던 개인적 단상들을 조사하고 정리하여 하나씩 글로 남겨보려고 한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상상하는 나의 미래를 살기 어렵고 힘든 것에서 긍정적으로, 기대가 담긴 즐거움으로 바꿔보기 위한 탐험을 시작해보려 한다. 부디 나의 부지런함과 호기심, 내용을 접하며 들끓던 마음들이 이 글을 쓰는 동안은 잘 유지되길. 생각을 잘 정리하여 느낀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되길. 

  그리하여 미래에 즐거운 삶을 사는 할머니가 되길 바란다.  






참고

1) KDI FOCUS - 소득과 자산으로 진단한 노인빈곤과 정책방향, 이승희(2023.09.25).

2) 디멘시아 뉴스 기사 - 노인이 살기 힘든 나라, 언제 벗어날 수 있을까, 황교진(2024.03.11).

3) 한겨레 기사 - 66살 이상 한국노인 40% ‘빈곤’ …또 OECD 1위, 천호성(2023.12.19).

4) 중앙일보 기사 - 노인 1000만 시대, 빈곤율은 OECD 1위 …공적연금 강화해 복지사각 해소를, 배현정(2024.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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