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 <다가오는 것들>
칙칙 폭포- 쪼르르-촤하-
일정하게 반복되는 경쾌한 소리가 조용한 집 안을 가득 메운다. 어둠이 내려앉은 창 밖으로는 듬성듬성 시내버스와 빨간 불빛을 내뿜은 차들이 천천히 지나가고 있다. 그렇다. 지금은 일요일 밤, 가장 멈추고 싶은 시간. 한 주를 잘 마무리하지 않으면 새로운 일주일을 시작하기 두려운 그런 날이다.
일요일의 어깨에 무거운 책임감을 올려놓아 미안하지만, 다른 요일에겐 관대해도 일요일에겐 유난히 인색해진다. 특히 ‘선데이 나잇’에게-
허투루 보낸 일주일이었더라도 일요일만큼은 잘 마무리하고 싶은 책임감 때문일까. 그렇다고 해서 특별하게 치르는 신성한 의식 같은 건 없다. 단 5분이라도 마음 편히 나를 위해 사유(思惟) 할 수 있는 시간만 주어진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양말을 세탁기에 돌리며 쳇바퀴 돌듯 회전하는 동그란 통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오늘은 세탁기가 나를 되돌아보는 대상이 될 건가보다. ‘밖에서 고생한 당신의 발에 향긋하고 포근한 덮개를 만들어 드릴게요. 그게 내 역할이니까요.’라고 세탁기의 사명감을 말하는 예쁜 생각을 가지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나의 세계는 심오하다.
‘하염없이 빙글빙글 돌지만 그 안에 늘 똑같은 양말만 있는 건 아니에요. 낡아서 발 뒤꿈치가 해진 양말, 구멍이 송송 나서 버려지고 한쪽만 남은 양말, 새로 산 뻣뻣한 양말 등 자세히 보면 양말들은 늘 다르죠. 통돌이(세탁기)라는 인생 속에서 받아들이고 떠나보내고를 반복한다는 거죠’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불현듯 한 영화가 떠오른다.
2016년에 국내에 개봉한 프랑스 영화 <다가오는 것들 Things to come>이다. 한마디로 감상평을 말하자면 이자벨 위페르의 감정선으로 가득 찬 영화였다.
마치 가을을 닮아있듯이, 다가오는 것들보다 떠나가는 것들이 더 많다고 느껴지는 상황에서 의연하게 대처하는 자세는 결국 인생은 자연의 순리대로 돌아가게 되어있고, 그 안에서 새로운 삶을 마주하며 잘 살아갈 거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모든 게 별일인 젊은 내게 이 영화는 큰 위로가 되었다. 어떤 일이 발생하면 대안을 모색하기보다 원인을 내 안에서 찾는 실수를 반복한다. 어리석다는 거 너무나 잘 안다. 누군가는 그게 자기 검열이 잘 되어있는 거라 배려가 익숙해서라 말하지만, 혹자는 틀에 갇혀 너의 인생을 피곤하게 만드는 거라 말한다.
나의 행복부터 묻는 삶을 살고 싶어 매년 일기장에 “연연하지 말고 내 안의 중심을 잡자. 내가 행복해지면 모두가 행복하다”라고 쓰지만, 연말이면 또다시 같은 다짐을 하고 있다.
이 영화는 내게 부족한, 내가 꼭 배우고 싶은
“의연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
수많은 선택 안에서 주안점을 어디에 둘 것인지 고민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외부 요인에 힘 없이 무너지기도 하고, 안정적일 거라 믿었던 관계가 허무하게 끊어지고, 의외의 장소에서 새로운 관계는 탄생된다는 스토리를 통해서 말이다. 평화로운 삶은 어떤 방식으로든 흔들릴 수 있다. 작은 균열들이 순탄치 않은 미래를 예고할 때, 그때마다 우린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냐에 달려있다고.
안정적인 축적을 강박적으로 추구하지 않고, 상황에 맞춰 대처하는 태도를 기른다면 지금의 나보다 얼마나 더 자유로운 내가 될지 상상만으로도 흥분이 된다. 조용한 흥분. 구태여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이런 사람으로 보이겠지’라는 틀에 박힌 생각이 사라진다면 그 자유로움은 얼마나 삶을 말랑거리게 만들까.
영화 속 이자벨 위페르처럼 나만의 방법을 찾아 의연해지고 단단해지고 싶다. 그래서인지 엔딩 때 나온 사랑과 영혼의 주제곡으로 유명한 'Unchained Melody'가 한 여자의 인생에서 착안한 멜로디인 것 마냥 깊숙이 파고든다.
아마도 나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서 내가 주체적으로 손쓸 수 없을 때,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진짜 담담해지고 싶을 때마다 이 노래를 들으며 늘 그렇듯 다짐을 쓸 것이다. 중심을 잡자고.
일요일 밤의 끝을 붙잡으며,
자기 성찰 끄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