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8-22
내내 친구처럼 티격태격 대고 장난치던 사이라 어딜 가나 많이들 기억하고 계셨나 보다
사귀냐고 물어보시지도 않았지만 둘보다는 늘 셋이 다녔던지라 당연히 친구라고 생각하시는 것도 같고 나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닭살스러워서 굳이 사귄다고 말하진 않았다
그래도 늘 몰려다니다가 혼자 다니니 눈에 띄긴 하나보다
"걔네 요즘 일도 많고 바빠서요. 저만 한가하거든요 ㅋㅋ" 웃으며 적당히 넘겼다
그 사람이 이 가게에서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뭐라고 대답했을까 아주 잠깐 궁금해지긴 했다
그 좋아하는 절을 가도 주차장에서 바로 사천왕문이 보여야 할 만큼 걷는 걸 귀찮아했다
그래서 늘 그는 데이트 계획을 짤 때 최우선순위가 많이 걷지 않는 동선이었다
걷기 좋아하고 등산 좋아했던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을걸 포기하고 맞춰줬을까 고맙기도 했다
(그냥 그랬었다고 하는 말이지 별뜻은 없다
누누이 말하지만 그때의 그 사람과 날 외롭게 홀로 방치한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니 다른 사람이라기보다는 같은 사람의 다른 면이라는 게 맞겠다. 그러나 공유하진 않는)
걷기 싫어하는 내가 요즘은 산책을 한 시간씩 한다
족히 5킬로는 넘게 걷는 것 같다
걷다 보면 생각이 많이 정리가 되고 감정도 가지치기가 되는 것 같다
헤어진 그가 알면 배신감 느낄라나?
자주 가던 절에 들러 아들과 사촌동생들 시험합격 발원초를 올리고 108배와 관음정근 3000번 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녀석들이 부디 원하는 인생을 자신감 있게 헤쳐나가길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또 부처님께 내 어리석음과 이기적인 행동들에 대해 참회기도를 했다
이렇게 살아도 여전히 어리석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업장이 두터운 중생이니 부디 불쌍히 여겨주시고
이 생에서 깨달아야 할 것들이 더 있다면 아프더라도 기꺼이 감내하겠다고 기도드렸다
이번 생에 업장소멸할 수 있도록 다 겪어낼 테니 다음 생엔 이번보다는 조금 더 성숙해져서 지혜로운 중생으로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람 되게 해 달라 기도했다
그가 평안하길 바란다고 한때 내게 너무나 소중했던 그가 몸도 마음도 아프지 않고 평온하길 바란다고 그리고 그에게 힘이 되어줄 좋은 인연 만나 부디 남은 날들은 안정되고 행복하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빌었다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발원기도를 하면서 이제 정말 그를 내 맘에서 놓아줘야겠구나 하는 맘이 들었다
완전하게 그의 인생과 나의 인생이 다른 갈래의 길로 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행복을 빌며 더 이상 요동치는 감정 없이 담담한 나를 보며 아 나도 이제 그를 보낼 준비가 됐구나 느꼈다
기도드리고 나오며 다시 종무소로 걸어가 익숙한 그의 사주와 발원을 적어 초를 켰다
부처님 오늘 저의 모든 절과 기도의 공덕을 제아들과 사촌동생 그리고 날 사랑해 줬던 그 사람과 내가 아프게 했던 사람들. 날 아프게 했던 사람들에게 회향하오니 기도 공덕이 그들에게 이르게 해 주세요
이제 그를 온전히 보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