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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1년차 마무리

by 꼬박꼬박

박사 1년차 코스웍이 끝났습니다. 사실 1월에 학기가 시작해 4월 20일경 마지막 시험을 봤으니, 코스웍은 한 달 전에 끝난 셈입니다. 경제학 박사 과정은 대개 1학년을 마치면 5월이나 6월에 박사자격시험(qualifying exam)을 치르게 되는데, 저희 학교는 일정 학점을 넘기면 이 시험을 면제해줍니다! 물론 2학년 때도 본인의 전공 분야에 대한 시험을 보고 통과해야 하지만, 심리적인 부담이 훨씬 덜하죠. 처음 입학할 때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던 조건인데, 막상 면제가 되니 정말 다행스럽고 기쁩니다. 전부 면제가 된 건 아니고 일부 친구들은 시험을 봐야 해서, 동기들 사이에 희비가 조금 엇갈리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 학기도 첫 학기와 유사하게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 계량경제학, 그리고 코딩 과목을 수강했습니다. 미시에서는 게임이론과 불완전경쟁시장, 불완전정보에 대한 내용을 주로 배웠습니다. 교수님께서 진도를 굉장히 빠르게 나가셔서 중간중간 걱정이 많았지만, 시험 난이도는 오히려 낮은 편이었습니다. 다만 시험 범위가 굉장히 넓어서 준비보다는 실제 시험 시간에 체력적으로 더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거시와 코딩 과목은 두 과목 모두 거시 전공 교수님께서 강의하셔서 내용이 약간 겹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거시 수업에서 이론을 배우고, 코딩 수업에서는 그 이론을 코드로 구현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식이었는데, 전공이 무역 쪽이라 이 과목들에 엄청난 시간을 쏟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GitHub를 통해 버전 관리하는 법, 코드를 모듈화해서 관리하는 법 등을 배운 건 앞으로 연구할 때도 분명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코딩 수업에서는 직접 코드를 발표할 기회도 있었는데, 영어 실력이 여전히 부족해서 발표 때 꽤 애를 먹었습니다. 특히 제 앞 순서에 미국인 동기가 발표를 하면 괜히 주눅이 들게 됩니다. 그래도 거시경제학에 나오는 impulse response function 같은 개념은 동적인 변화를 파악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역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 흥미롭게 보게 되었습니다.


계량경제학은 이번 학기 들어서야 제대로 ‘계량’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수업이었습니다. 첫 학기는 거의 통계학 중심이었고, 이번 학기에는 Hansen의 Econometrics 교재를 기반으로 GMM과 같은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석사 때는 실습도 많았던 기억인데, 이번에는 거의 순수 이론으로만 구성되어 있어서 처음엔 많이 걱정됐습니다. 하지만 해보니 결국 행렬대수랑 미적분만 어느 정도 익숙하면 따라갈 수 있는 수업이었습니다. 시험도 영어보다는 수식 위주로 적는 방식이라 마음이 편했어요. 영어 실력을 더 키워야겠다는 생각은 여전히 하지만요.


코스웍이 끝나면 여름학기 동안 1년차 페이퍼를 작성하게 됩니다. 지도교수님에 따라 요구하는 수준은 다르지만, 완성된 논문을 제출하라고 하시진 않는 분위기입니다. 4월 초쯤 되면 본인이 관심 있는 분야나 아이디어를 정리해서 교수님을 찾아가는데, 저는 무역 전공을 비교적 일찍 정했던 덕분에 빠르게 교수님과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교수님께 아이디어 하나를 가져갔는데, 교수님이 원하는 주제와 제 아이디어 중 하나를 선택할 줄 알았더니 둘 다 해보자고 하셔서 조금 바빠지긴 했습니다. 덕분에 여름이 더 알차게 지나갈 것 같습니다.


저희 프로그램상 여름학기에는 정규 수업이 없지만, 저는 머신러닝에 관심이 있어서 경영대에서 열리는 머신러닝 수업을 수강 중입니다. 5월부터 6월 중순까지 짧게 운영되는 수업이라 한 수업에 다루는 내용이 꽤 많고 길어서 집중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실증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기법들을 배우는 만큼 장기적으로는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박사 1년차가 지나고 나니, 전반적인 기틀도 조금 잡히고 가고 싶은 분야도 점점 더 명확해지는 느낌이 들어 뿌듯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 예전 직장 동료와 통화를 했는데, 말투나 단어 선택이 많이 아카데믹해졌다고 해서 저도 조금 놀랐습니다. 물론 아직 제대로 된 연구를 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고 배워야 할 것도 산더미지만, 그래도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는 점이 큰 위안이 됩니다.


사실 학업적인 부분은 운이 좋게도 큰 탈 없이 지나가고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크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국에 있는 집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집을 매매하거나 세입자를 받아야 아내가 미국에 올 수 있는 상황인데, 최근 부동산 시장이 좋지 않아 매수자도, 세입자도 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이번 여름에 아내가 휴직하고 저와 함께 지낼 계획이었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어렵게 되다 보니 미안한 마음이 크고 무거운 마음이 드는 날도 많습니다. 그래도 연구의 방향이 조금씩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버틸 힘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하루빨리 상황이 정리되어 아내와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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