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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 Apr 21. 2022

개발자의 가치

가치는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서비스(소프트웨어) 개발이라는 일을 하며 돈을 받게 된 지 어느새 19년이 되었네요. 


두꺼운 WIN32 API 책과 MSDN을 사전처럼 보며 Visual Studio6에서 F5를 누르며 시작했던 일이, 구글과 github, stack overflow의 검색 결과를 command+c & command+v 를 하면 무언가(뭐든지) 이루어지는 세상에 도달했습니다.  


사실 처음 개발을 시작했을 때에는 컴퓨터를 사용하는 일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과 미래성이 그리 밝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물론 ‘와 신기하다. 이런 걸 어떻게 해?’라고 여겨주는 여자 사람들도 많았고, 주위에 몇 없는 컴잘알이니까 문제만 생기면 불러주는 것에 우쭐해할 때도 많았죠. (당시 컴공 남학생의 흔한 착각 1) 그렇지만 학교의 선배들도 언제까지 이거 할 수 있을 거 같냐는 말씀도 많이 하셨고. 언제나 두 번째의 직업을 생각해놓으라는 조언과 함께 학원 강사라도 할 수 있게 교직 이수는 필수 전공으로 해두고, 치킨 조리 방법 역시 필수 교양 과목처럼 느껴졌었죠.  


지금이야 좋은 개발자 모시기를 모든 기업들이 핵심 경쟁력처럼 가져가고 있고, 기술창업이든 일반창업이든 개발을 할 줄 알거나 해당 지식을 가진 사람은 필수처럼 여겨지고 있고, 심지어 초중고 학생 코딩 교육 과외의 수요도 어마어마해서 1도 현실감 없지만. (라떼는) 졸업을 해도 갈 곳이 마땅치 않아서 교수님이 소개해주시는 회사나, 졸업하고 창업한 선배들의 회사로 들어가서 주는 대로만 받고 일하거나, 그거도 안된다면 스펙을 위해서 대학원 진학을 하는 컴공 학도가 많았던 시기의 이야기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20대 중반에 개발과 관련된 창업을 해보며, 늦어도(?) 35살에는 은퇴해서 생산자가 아닌 절대 소비자로만 살아갈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개발 업무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있고, 이렇게 맥북을 열고 글을 쓰고 있다는 건 ….. (ㅠㅠ) 




‘개발자’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다가 너무 다른 곳으로 많이 빠져버렸네요.  


개발자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IT 커뮤니티에서든 늘 이슈가 됩니다.  근무시간이 크게 의미 없고 야근이 일상화되어 있는 워라벨이 존중받지 못하는 직업이다라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경영진이나 기획부서의 의도를 따라서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에 잡부나 노예라고 지칭하는 분들도 많고, 진입장벽이 낮아서 아무나 될 수 있는 데다가 상당한 수입이 보장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꾹 참고 계속한다는 분들도 많이 보입니다.  


‘개발자’라는 직업은 ‘전문직’ 들과는 다르게 누구나 자격증 없이도 할 수 있죠. 약간(?)의 선행 학습이 전제가 되긴 하지만 전공이 아닌 분들도 다른 직업에 비하여 많고, 다른 직종에서 오랜 시간 일을 하다가 적지 않은 나이에 신입으로 지원하시는 분들도 정말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개발자도 한국 표준직업분류(KSCO)와 한국 고용 직업분류(KECO)에서는 ‘전문가’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면허나 자격증이 없어도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이 사회 통념상 ‘전문직’으로 인식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전문직 신용대출 직업에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ㅠ) 


주위의 많은 분들이 개발자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당연하겠지만 대부분 돈에 대한 이야기이고, 뉴스와 매체에서 너무 상위 개발자들만의 이야기를 부풀려서 보도하기 때문에 개발자들의 콧대가 높아져서 같이 일하기도 힘들고, 다른 분야 종사자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함에도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자랑은 절대 아니지만 30대 중반에 억대 연봉 개발자라는 것을 경험해 본 저로서는 이제야 제대로 된 시장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경험하며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직업이 되었고 개발자들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유연성’ , ‘학습능력’ , ‘속도’ , ‘지식’ , ‘경험’을 대체할 다른 직업은 많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개발자라는 직업은 일정 수준 이상을 검증받고 인정받게 되면, ‘전문가’와 같은 대우를 받게 되는 몇 안 되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돈 주는 입장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해보자면, 주변에서 이야기해주시는 우려와 푸념들이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모두 자기 기준에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돈을 주는 사람들은 특히 더 이해타산적이 되고, 실질적인 재화가 아닌 무형의 가치를 제공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개발자에게 주는 돈은 언제나 아깝게 생각되더라고요.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데에는 개발자들의 잘못도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나보았던 개발자들은 대부분 재능이 있고, 자기 일에 충실하며, 스스로의 작업물과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언제나 일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자기희생도 충분히 많은 분들이었죠. 그러나 그분들은 자신을 가치를 홍보하는 일에는 소홀했습니다. ‘가치’라는 것은 나 스스로 결정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누군가 나의 가치를 인정해줘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참 어려운 것입니다.  


취업을 할 때에는  ‘학력’이나 ‘경력’ , ‘포트폴리오’와 같은 것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즉시 나의 가치를 판단하려는 사람에게 이득을 준 것은 아닙니다. 과거에 나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죠. 그래서 취업 이후에는 꾸준히 시키는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자신의 가치 증명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꾸준히 시키는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개발자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습니다.  


프로 운동선수의 세계는 1년 동안의 나의 실력을 증명하고 다음에 받게 될 자신의 몸값을 결정하게 됩니다.

개발자도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일차적으로 증명된 나의 가치를 계속 높여가야 합니다. 아무도 모르게 스스로 만족하는 코드를 만들어내거나 시스템을 바꿔서는 안 됩니다. 나의 일을 계속 알리고 그것에 대한 평가를 요청해야 합니다. 자신의 실적이 매출 등의 숫자의 영향으로 다가오는 사업부서나 영업부서, 마케팅 부서의 직종을 가진 분들은 본능적으로 이것을 학습하여 자신을 알리는 것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그것을 경험해 볼 기회가 적고, 하는 일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개발자들은 누군가 자신을 알아봐 주기를 항상 기대하고 있습니다.  


가장 위험한 것은 ‘내 가치만 제대로 평가받는다면, 지금보다도 더 잘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태도가 되어 보이는 것입니다. 가치는 ‘신뢰’가 기반인 것이며, 나의 가치를 원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꾸준히 그 가치를 제공하고 증명했느냐에 따라 쌓여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IT 종사자들이 개발자와는 ‘일하기 어렵다.’ , ‘대화하기 어렵다.’ , ‘너무 딱딱하다.’ 등의 이야기를 합니다. ‘개발자와 싸우지 않고 일하는 방법’, ‘개발자와 대화 잘하는 방법’ 등의 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개발자의 부족한 사회성(!)도 크게 일조하고 있지만, 개발자에 대한 ‘신뢰’가 많이 떨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하여 개발자들도 학습과 자기만족에만 치중할게 아닌 셀프 브랜딩을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개발만 열심히 해서는 안 되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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