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퓨링 May 18. 2020

4월 블라블라

왜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지


1. 이달의 책 / 2020 올해의 문제소설



당혹스러울 정도로 문제집같은 표지디자인..!

윤이형의 <버킷>이 제일 좋았다.


p.289

다른 깨달음들도 있었다. 남의 일에 신경 쓰고 걱정하거나 못마땅해하는 일이 대체로 시간 낭비라는 것, 마음보다는 실질적인 일들이 중요하다는 것, 평범하고 진부하다고 알려진 일들 속에 그런 식으로 평가절하될 이유들이 실은 별로 없다는 것. 남의 말을 듣는 일과 무언가를 직접 맞닥뜨리고 손으로 만져보고 코로 냄새를 킁킁 맡아보는 일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 ... 정상적인 일, 많은 사람이 하는 일, 그것이 뭐가 나쁜가. 물론 정상이라는 게 허구의 개념이라는 것은 류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특이하거나 재미있어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그건 나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매일같이 발밑이 흔들리는 이런 세계에서는 누구나 기대고 안심할 곳이 필요했다. 다수 속에 있을 때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안정감을 함부로 경멸하는 일이야말로 바보 같은 것 아닌가.


p.305

-그렇지만 고통을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삼으면 안 되죠. 더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항상 옳지는 않잖아요.

-그래,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떼어낼 수 있는 걸까? 사람이라는 생물이 자기 고통 밖으로 걸어 나가 공정한 판단이라는 걸 할 수 있을까? 감정이라는 요소를 완벽히 배제하고 행위 자체의 의미를 알아낼 수 있을까? 너는 내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들이 나쁘고 내가 억울하다고 생각하게 되겠지. 내가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팔에 깁스까지 하고 있으니까 더 그렇게 느껴졌을 거야. 일까지 그만두었으니 불쌍하다고 생각할 테고. 내가 조금 더 비참하고 힘든 모습을 하고 있었으면 아마 그 사람들이 악하다고 생각하는 마음도 더 컸을거야. 하지만 내가 실은 아버지에게서 제법되는 유산을 상속받아서 앞으로 최소한 10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고, 다른 사업을 준비하며 룰루랄라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한다면 어떨까?


p.309

문득 옛날의 공연에서 태정이 불렀던 <Rape Me>가 떠올랐다. ... 너무 가녀린 사람이 부르는 거친 노래. 감당하기 힘겨워 보이는 노랫말. 나직하지만 강하게 울리는 목소리. 아름답고 선하게 싸우는 약자의 이미지. 그때는 멋지다고만 생각했다. 주위 사람들도 모두 그런 이미지를 좋아했던 것 같다. 강한 무언가와 싸우는 사람의 얼굴이 말갛고 여리면서 의연할수록 감동적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그야말로 이미지, 불가능한 어떤 것에 대한 강요, 페티시에 가까운 환상처럼 느껴졌다.




2. 이달의 노래 / 플라이투더스카이-missing you


https://youtu.be/FUzD3bB-1aw


별안간 플라이투더스카이..?

갑자기 꽂혀서 엄청나게 돌려들었다. 지독하게 하나에 꽂히면 여러번 반복하는 나..

찾아보니 2003년에 나온 노래고 그럼 나는 갓 입학한 초딩이었을텐데 꽤나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초등학생의 심금도 울려버리는 미씽유였나보다.

근데 위 영상 도입부에 브라이언이랑 환희랑 뭔가를 열심히 만들면서 "자신이 생각한 무대를 미니어처로 구상!"이 자막과 연출 너무 웃기다ㅠ



3. 이달의 장소 / 은평구 진관동


단청 예쁘다


석가탄신일쯤에 진관사 갔다. 이날 하필 중간고사여서 디지털 노마드처럼 북한산 자락 빵집에서 시험을 쳤다. 빵도 맛있었고 건물 크고 날도 좋아서 기분이 좋았다. 널찍한 공간감과 우거진 나무가 함께 있는데 우글거림이 없는 카페라니, 서울에서 좀처럼 느끼기 힘든 조화였다. 은평 한옥 마을은 처음 가봤는데 뭐랄까.. 한옥이랑 예쁜 단독주택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단독주택 살면 무섭지 않으려나? 여기서 봤던 단독주택들은 담장이 낮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왕왕 보여서 신기했다.


호수 비친 나무였는데 뭔가 모네그림같다




4. 이달의 영화 / 벼랑위의 포뇨


이번 달에는 영화를 많이 안 본거같은데 그중에 기억나는건 <벼랑위의 포뇨>. 포뇨도 귀엽지만 엄마캐들이 넘 좋았다. 소스케 엄마 리사, 포뇨 엄마 그랑 맘마레 둘다 강인함과 대범함이 느껴지는 캐릭터들이었다.


특히 좋았던 장면은, 포뇨가 자신을 물고기라고 소개하는데 리사가 아하 그렇군 알겠어! 하고 넘어가는 부분.. 대박 관대한 어른이다ㅇ0ㅇ! 늘 소스케와 포뇨를 따스하지만 강인하게 대한다. 나중에 생면부지의 포뇨를 같이 키우는 것도 완전 대장부캐릭..;; 씩씩하고 용감한 여캐는 항상 반가운 것 같다. 아, 리사의 최고 매력은 그녀의 아찔한 운전실력이다. 정말 멋져.. (근데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어부 남편에, 양로원에서 일하는데 애기 둘이라니.....ㅠ 까지 생각하고 리사의 안위는 현명한 리사 그녀에게.. 그리고 포뇨 엄마가 바다의 여신이니까 도와주겠지..라고 생각함)


포뇨 엄마 그랑 맘마레는 방금 말했듯이 바다의 여신이다. 말해모해 짱짱 멋지다! 신이잖아! 이름도 어쩜 그랑 맘마레?! 킥킥 그리고 포뇨 아빠는 포뇨가 인간이 될까봐 전전긍긍하고 그것을 막기에 급급해하는데 그랑 맘마레는 참으로 명료하고 대범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포뇨아빠가 "사랑에 실패하면 어떡해! 그래서 물거품이 되면!"라고하자 "우리는 모두 물거품에서 왔는걸요..." 라는 말을 아주 은은하게...흡사 예수 붓다 공자의 미소를 띄면서 말한다. 자식이 물거품이 되어도 괜찮다니 다소 이해가 안되기도 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하니 사랑의 실패가 끝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우리의 시작점도 물거품이었으니까, 사랑에 실패해서 물거품이 되더라도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느낀건데 소스케 엄마/포뇨 엄마를 리사/그랑 맘마레라는 "이름"으로 호명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5. 이달의 아이템 / 양념장 선반



집에서 밥을 자주 해먹는 편이다. 점점 불어나기 시작한 양념장들을 정리해두기가 어려웠는데 꿀아이템을 찾았다. 높이도 넉넉해서 기름이나 식초 같은 키큰 녀석들 두어도 괜찮고 튼튼해서 아주 좋다. 일단 하나만 사봤는데 옆에 자질구레한 조미료들을 위해서 하나 더 살까 고민중이다.



6. 이달의 드라마 / 킹덤


와우 뒤늦게 킹덤 시작해서 순식간에 다봤다. 개인적으로는 시즌1보단 시즌2가 리듬도 빠르고 박진감넘쳤다. 시즌3 언제나와 떡밥 회수가 시급하다.



7. 이달의 맛밥 / 바지락 찜


바지락에 막걸리로 술찜한건데 정말 만들기 간단하고 맛있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조금 더 끓여서 술맛을 날렸어야하는데 일찍 불을 껐다. 바지락 후루룩 다 먹고 국물만 따로 해서 파스타 해먹었다. 아직도 감질맛이 잊혀지지 않아! 정말로 맛있었다.





8. 이달의 月 / 슈퍼문!



4월 7일에는 슈퍼문이 떴다. 휘영청!



9. 이달의 콘텐츠 / 조성진 온라인 콘서트


https://youtu.be/LdPWoNXZLNQ (오 방랑자 앨범이 나왔었군)


도이치그라모폰 유튜브에서 조성진 콘서트를 3일동안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온라인 콘서트 처음 들어봤는데 40분이 그렇게 짧게 지나갈 줄 몰랐다. 브람스 인터메쪼, 베르크 피아노 소나타,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 세 곡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베르크 피아노 소나타는 알못인 내가 느끼기엔 너무 난해해서 인상 깊었다. 난해하고 어려우면서도 우아한 느낌이었는데 꺾이는 음..? 반음..?이 많아서 불안하고 까다로운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슈베르트 방랑자는 제목처럼 방랑자의 여정을 듣는 느낌이었다. 서사를 혼자 상상해보면서 들었는데 어느 구간에서는 '이 방랑자 녀석 마음 다 잡았네 드뎌ㅠㅠ' 하다가도 '뭐야 왜 또 무슨 일인데요ㅠ'하면서 갈피를 못잡는 느낌을 받았다. 그 둘 사이의 반복이 후반부까지 이어지길래 시간이 흘러도 마냥 평탄한 것은 없는건가 하는 삶의 유약함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느끼기에 후반부에 이르러서 방랑자는 무언가에 완전히 져버린 탓에 자신도 자신이 투항하기를 바라는 것 같았고 그래서 절뚝절뚝 싸우듯이 걷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걷는 방랑자의 모습이 life goes on 처럼 느껴졌다. 아무튼 방구석에서 누릴 수 있는 큰 교양의 시간이었음!


작가의 이전글 3월 블라블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