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쉬의 인사이트 May 14. 2021

찌고, 말리고, 휘고
자연을 닮은 가구. 히다

한국의 스튜디오 가구 제작자의 대부분이 일본 가구를 교본으로 삼고 있는 상황이 보여주듯 일본은 '가구 선진국'이다. 목재와 디자인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기술적 완성도 역시 유럽 가구와 어깨를 견준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일본의 가구 브랜드는 찾기 어렵다. 디앤드디파트먼트 D&Department의 나가오카 켄메이가' 60비전 프로젝트(일본 디자인의 원점인 1960년대 디자인을 돌아보는 프로젝트)'를 통해 재조명한 카이모쿠 60시리즈가 일본의 대표적인 가구로 기억되는 정도다.

카리모쿠 60 시리즈를 만든 덴도목공 Tendo이나 세계적 산업디자이너 후카사와 나오토와의 협업 등으로 변신에 성공한 마루니 Maruni 같은 일본의 대표적 가구 브랜드가 한때 청담동의 쇼룸을 차지했지만 결국 기억조차 희미하게 퇴장하고 만 것이 여러 해 전이다. 일본 가구 부진의 원인을 한국 정서와 미묘하게 맞지 않는 '와모던(일본풍의 모던 양식)'의 디자인에서 찾거나 브랜드 인지도를 크게 상회하는 사격 책정이 패착이었다고 분석하지만 단정짓기는 어렵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합쳐진 결과일 수도 있다.


히다는 공장이 위치한 지역명이기도 한데 이곳은 '히다의 장인'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과거부터 기술이 뛰어난 목수를 많이 배출한 곳이다. 히다의 목수들이 교토와 나라 지방의 유명 사찰을 지었다. 히다산업은 1920년 설립 이후 나무를 쩌서 압력을 가해 원하는 모양대로 휘는 '곡목 기술'을 바탕으로 1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일본의 대표 가구 브랜드로 성장했다. 곡목 기술을 바탕으로 한 히다산업의 가구 기술은 일본에서도 독보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사진=HIDA

과거 히다 지역은 활엽수인 너도밤나무 같은 삼림자원이 풍부했는데, 이 너도밤나무가 외력에 잘 반응해서 곡목하기에 알맞았던 점이 도움이 됐다. 또 히다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다른 예로는 삼나무 가구를 들 수 있다. 일본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삼나무를 심었는데, 이 삼나무가 수십 년이 흐르면서 울창한 숲을 이뤘지만 무른 성질 탓에 쓸모를 찾지 못하고 오히려 숲을 망치는 골칫덩이가 됐다. 히다에서는 곡목 기술을 응용해 삼나무를 고온으로 찐 다음 압축해서 가구 제작에 알맞은 단단한 목재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현재 생산하는 가구의 5% 정도를 이 삼나무 같은 국산 목재로 만들고 있다.


쇼와 시대를 연상시키는 선과 플라워 패턴의 패브릭 사용 등 보수적인 히다가구는 2000년대 이후 디자인에 변화를 주기 시작하며 젊고 모던해졌다. 15년 전 지금의 오카다 산조 회장이 사장에 취임했을 당시 히다산업은 경영 악화로 도산 위기에 처해 있었다. 회장은 그때까지는 가구업계에서 금기로 여겼던 나무의 옹이나 마디를 오히려 장점으로 내세운 디자인을 제안했는데 젊은 세대에게 크게 히트하면서 회사가 정상황될 수 있었다.

그것이 '모리노코토바' 시리즈다. 이후 기후현 차원에서 해외 디자이너와 제조사의 협업을 연계해주면서 이탈리아의 가구 디자이너인 엔조 마리오 협업하게 되었다. 그와 협업했다는 사실만으로 히다의 가구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고 히다의 디자인 레벨도 올릴 수 있었다. 그때부터 디자이너 가와카미 모토미, 건축집단 토라후, 스위스의 건축집단 아틀리에 오이 같은 국내이 디자이너와 꾸준히 콜라보레이션을 하고 있다.


사진=HIDA

가구의 라인업이 60여 가지에 이를 정도로 세분화돼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히다가구는 다품종 소량생산을 원칙으로 한다. 1년에 다섯 가지 시리즈를 새로 만들어내는데 신제품 개발이 상당히 빠른 편이다. 장인을 키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동안 기술자들의 기술과 실력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라인업을 줄이고 싶어도 고객들의 주문이 있기 때문에 줄이기 어려운 실정이다. 각 시리즈마다 생산을 위해 만드는 지그(보조용 기구) 역시 많아서 이를 보유하기에도 벅차다고 밝혔다.


히다는 그동안 일본 고객만을 대상으로 디자인해왔다. 모던한 디자인도 많지만 여전히 일본적 색체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해외에 진출했으니 다양한 고객에게 디자인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을 것이며 이를 적극 디자인에 반영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한다. 다만, 현재의 디자인으로 수차례 밀라노 가구 박람회 등에서 해외 고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충분히 받아들여진 것으로 생각한다.


일본 현지에서의 파내가와 비교해 한국에서의 판매가 책정을 살펴보자. 한국 시장의 가격대는 상당히 비싼 편이다. 가령, 식탁이 일본에서 30만 엔에 팔린다면 우리나라에서는 1.5배에 해당하는 4백50만 원으로 책정된다. 수입 과정에서 관세, 부가세, 소비세 그리고 물류비까지 더하면 현지 가격의 1.1배 정도가 된다. 그래서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와 B2B(기업과 기업 간 거래)를 혼합한 B2BC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음모론에 빠져들수록 진실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