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망상에 이별을 고하다

영화 <해빙>

우리는 일상적으로도 망상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혼자 피해망상을 가지는 것 같다' '뇌 내 망상이 있다' 등은 많이 사용하는 표현이다. 최근 망상과 관련된 뉴스 보도로 망상(delusion)과 관련 질환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는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사용하는 망상은 일상용어와는 다른 의미를 가지는데 이에 대하여 설명한다. 망상(Delusion)은 현실에 맞지 않는 잘못된 믿음을 말한다. '다른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것은 아닌가, 나를 안 좋게 보는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닌가, 혹시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는 것은 아닌지. 등등'의 생각이 들 수가 있다.

이처럼 가끔 스쳐가는 생각은 스스로 마음을 다잡거나 주변의 조언을 받아들이면서 조절이 가능한데, 쉽게 변화가 가능한 생각은 망상이 아니다. 확고한 믿음으로 쉽게 변화할 수 없고 주변의 설득에도 변화되지 않는 지속적인 생각을 망상(Delusion)이라고 한다. 확고한 믿음이다 보니 이를 억지로 설득하려는 사람들과 다툼이 있다. 감정이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누군가 자신을 괴롭힌다는 생각에 무서움에 떨기도 하고, 망상적 생각에 빠져서 주변에 위해를 가할 수도 있다. 망상은 기본 전제가 잘못되어 있다. 하지만 비교적 나름대로 논리성을 가지고 잘 연결되어 있는데, 이를 '체계화된 망상'(systematic delusion)이라고 한다.

이런 망상은 치료를 통해 교정을 하지 않으면 점점 고착화되고 나중에는 치료하기가 어려워진다. 누군가 자신을 괴롭힌다는 전형적인 피해망상(Persecutory delusion)을 호소하며,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고착화되고 체계화(systematic delusion) 양상을 보인다. 자신과 관계없는 일을 자신과 관련된 일이라고 오해하는 관계망상(delusion of reference), 감시하고 있다는 감시망상(delusion of reference)을 보이기도 하며 악화될 수 있다.

망상이 있다고 심한 정신질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조현병(정신분열병, schizophrenia), 망상장애(delusional disorder)는 망상이 주된 증상으로 한다. 하지만 망상은 조현병이나 망상장애 외에도 다양한 질환에서 보일 수 있는 증상이다. 조울증의 조증 삽화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과대망상, 주변 사람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색정망상 등을 보일 수 있다. 우울증(depression)에서는 우울증상 외에도 자신이 매우 빈곤하다거나 망했다고 굳게 믿는 경우도 종종 있다. 치매가 간혹 이른 나이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데, 치매에서는 주변에 대한 의심, 경계, 자신의 물건을 도둑질당했다는 망상이 흔하다. 그 외 강박증, 신체염려증에서도 반복되는 생각과 행동이 망상적인 수준에 이르는 경우도 많다.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는 크게 약물치료와 정신치료로 구분된다. 망상에 대하여는 초기에 약물치료를 시행하고 증상이 잦아든 후 정신치료를 병행한다. 항정신병약제(Antipsychotics)가 가장 널리 사용되는데, 항정신병 약제는 선입견과는 달리 안전하고 매우 효과적이다. 과거에는 약물의 부작용이 많았지만 최근에 개발된 약물은 부작용이 크게 감소하였다. 망상을 보이는 환자는 치료 초기에는 스스로의 병식이 거의 없다. 그래서 치료의 유지가 되지 않을 수 있어 보호자가 치료 유지에 도움을 주어야만 한다. 초기부터 망상에 대하여 직접적인 접근은 좋지 않다.

약물치료를 통하여 망상이 약화된 이후에 직접적인 언급, 인지적인 접근을 해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더불어서 환자의 스트레스 요인, 성격적인 측면, 전체적인 진단 등을 고려하여 추가적인 정신 치료와 약물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망상이 심한 경우는 입원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망상이 있다고 입원의 적응증, 특히 강제적인 입원을 시행하는 것은 아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판단할 때 심한 망상으로 환자가 자신이나 타인에게 위해를 끼칠 가능성이 현저히 놓고 직계 가족 2인이 동의할 경우에만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을 시행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