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새로운 캔버스, GR Photo Festival 2025 도전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로 그림을 그릴 때,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 바로 '실행 취소(Ctrl+Z)'다. 선이 조금이라도 삐져나가면 지우면 되고, 색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레이어를 끄면 그만이었다. 모니터 속의 세상은 언제나 나의 통제 아래, 안전하고 정교하게 조립되었다.
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나선 세상은 달랐다. 특히 내 뷰파인더의 주인공인 두 아이들은 '실행 취소'를 허락하지 않는다. 웃는가 싶으면 울음을 터뜨리고, 예쁜 표정을 지었다 싶으면 순식간에 프레임 밖으로 달아난다. 통제 불능의 피사체. 그 혼란 속에서 나는 문득, 'GR Photo Festival 2025'라는 공모전 포스터를 마주했다.
"일상의 순간을 기록하라."
거창한 예술사진을 뽑으라는 말이 아니었다. 그 문구는 마치 나에게 이렇게 묻는 것 같았다. "당신이 매일 마주하는 그 정신없는 풍경 속에, 당신만의 시선이 있습니까?"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도전을 결심했다. 이 공모전은 나에게 수상을 위한 경쟁이라기보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아이들의 시간을 붙잡아두기 위한 일종의 '마감 기한'이 되어주었다.
나의 무기는 리코 GR3. 작고, 빠르고, 조금은 투박한 이 카메라는 아이들을 찍기에 더없이 좋으면서도 어렵다. 줌(Zoom) 기능도 없이 오로지 내 발로 뛰어서 거리를 맞춰야 하는 28mm 단렌즈. (물론 크롭 기능이 있긴 하지만!) 덕분에 나는 아이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거리까지, 땀 냄새가 나는 거리까지 다가가야 했다.
그렇게 아이의 꽁무니를 쫓던 어느 날, 나는 '결정적 순간'을 마주했다. 거실 쇼파 위에서 아이가 허공으로 몸을 던지는 찰나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GR3의 빠른 반응속도는 내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찍힌 결과물을 확인한 나는 숨을 멈췄다. 흔들림은 없었다. 아이의 머리카락 한 올, 힘이 잔뜩 들어간 발가락, 공중에서 균형을 잡으려 뻗은 손끝까지. 마치 시간을 칼로 베어낸 듯 완벽하게 정지된 채 선명하게 박제되어 있었다.
나는 컴퓨터로 사진을 옮겨 과감하게 컬러를 걷어냈다. 흑백으로 보정하고 나니 알록달록한 한글공부 포스터나 거실의 잡동사니는 사라지고, 오직 중력을 거스르는 아이의 단단한 형상만이 도드라졌다. 그 선명함은 곧 아이의 자신감처럼 보였다.
나는 이 사진을 첫 번째 출품작으로 골랐다. 그리고 본 공모전의 출품을 인증하는 이벤트에 짧은 코멘트를 꾹꾹 눌러 적었다.
"뒤로 돌아 천천히 쇼파에서 내려오던 아이가 누나가 되더니, 수많은 점프를 과감히 해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 쇼파는 녀석에게 넘기 힘든 거대한 산이었다. 혹여나 다칠세라 엉덩이를 뒤로 잔뜩 빼고, 짧은 다리로 바닥을 더듬거리며 조심스레 내려오던 아기였다. 그런데 어느새 동생이 생기고 '누나'라는 이름표를 달더니, 아이는 제 키만 한 높이 따위는 두렵지 않다는 듯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흔들림 없이 도약하고 있었다.
그림으로는 도저히 그려낼 수 없는, 시간이 빚어낸 성장의 증거가 그 쨍한 초점 안에 들어 있었다. 사진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건, 아이의 마음이 그만큼 단단해졌다는 방증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지금, 카메라라는 도구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감 대신 빛으로, 붓 대신 셔터로.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는 삐져나간 선을 지우려 애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과가 어찌 되든 상관없다. 이 도전을 핑계로 나는 뷰파인더 너머의 아이들을 더 오래, 더 깊이 사랑하게 되었으니까. 나의 'GR Photo Festival 2025'은 이미 시작되었다.
※ 이 글에 포함된 사진은 'GR Photo Festival 2025' 출품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