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 아들, 그리고 흔들린 흑백 사진의 미학
나는 직업병이 있다.
모니터 속의 선은 반드시 수직 수평이 맞아야 하고, 색감은 의도한 값 그대로 구현되어야 마음이 놓인다. 내 렌티큘러 작품 속 세상은 0.000000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철저히 계산된 '질서의 세계'다.
하지만 퇴근 후 현관문을 여는 순간, 그 질서는 산산조각 난다.
집에 들어서면 나의 가장 강력한 천적, 4살 아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7살 딸아이가 어느 정도 말이 통하는 '협상 파트너'라면, 4살 아들은 그저 '본능 덩어리'다.
이 녀석에게 "잠깐 멈춰봐"라든가 "예쁘게 웃어봐" 같은 주문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기분이 좋으면 소리를 지르며 빛의 속도로 달리고, 기분이 나쁘면 그 자리에서 액체처럼 흐물거리며 바닥과 혼연일체가 된다.
처음엔 이 통제 불능의 피사체를 예쁘게 찍어보려 애썼다.
조명을 맞추고, 구도를 잡고, 아이의 관심을 끌어보려 했다. 하지만 결과는 늘 참담했다. 심령사진처럼 흔들리거나, 프레임 밖으로 머리가 잘려 나간 사진뿐.
나의 완벽주의는 이 녀석 앞에서 무참히 무너졌다.
그래서 나는 전략을 바꿨다. 깔끔하고 화사한 '인스타 감성'을 포기하는 대신, 리코 GR3의 '고대비 흑백(High Contrast B&W)' 모드를 켰다.
놀랍게도, 거칠고 투박한 리코의 흑백 톤은 4살 아들과 기가 막히게 어울렸다.
파스텔 톤의 화사한 색감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었던 아이의 '날것의 에너지'가, 흑백의 강렬한 대비 속에선 묘한 예술이 되었다.
울고불고 떼쓰는 일그러진 표정은 세상의 부조리에 저항하는 로커(Rocker) 같았고,
내복 차림으로 짝짝이 양말을 신고 서 있는 모습은 고독한 행위 예술가 같았다.
노이즈가 자글자글한 사진. 초점이 나가 배경이 뭉개진 사진.
예전 같았으면 휴지통으로 직행했을 그 '망한 사진'들이, 아들을 찍을 때만큼은 A컷이 된다.
그 흔들림이야말로 지금 이 아이가 뿜어내고 있는 폭발적인 생명력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나는 렌티큘러 작업을 할 때는 마우스를 꽉 쥐고 숨을 참지만,
아들을 찍을 때는 카메라를 대충 휘두르며 같이 뒹군다.
정교함 따위는 필요 없다. 지금 필요한 건 예측할 수 없는 이 작은 맹수의 움직임을 본능적으로 낚아채는 '순발력'뿐.
나의 4살 아들은 내 인생에서 가장 통제할 수 없는 피사체다.
하지만 동시에, 나를 강박적인 완벽주의에서 해방시켜 주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다.
오늘도 나는 엉망진창인 거실 한복판에서 셔터를 누른다.
비록 수평은 맞지 않고 구도는 엉망이지만, 뷰파인더 속에 담긴 너는 그 어떤 계산된 조형물보다 자유롭고 아름답다.
그래, 마음껏 흔들려라.
아빠의 사진도, 너의 성장통도.
그 흔들림 속에 진짜 네가 살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