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 너머를 쓰는 일

by 동네과학쌤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교실에서는 이 문장이 유난히 자주 떠오른다. 학생을 본다고 믿지만, 정작 보고 있는 것은 학생이 아니라 이미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학생의 이미지’ 일 때가 많다.


몇 해 전 활동 수업이었다. 한 학생이 연필을 들고 있었지만 활동지는 끝까지 비어 있었다. 설명은 이미 마쳤고, 다른 조는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나는 자동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오늘도 이 학생은 집중하지 않았구나.’


“왜 아직 준비 안 했어?”

내 물음에 학생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생님… 어디서부터 다시 보면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 말은 내 판단을 단숨에 멈춰 세웠다. 나는 이 학생이 오늘도 집중하지 않았다고 믿고 있었지만, 정작 학생은 몰라서 멈춰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본 것은 학생의 현재가 아니라 예전부터 머릿속에 저장해 둔 그 학생의 이미지였다. 학생은 지금의 문제를 말하고 있었지만, 나의 시선은 여전히 과거의 기억에 머물러 있었다.


비슷한 일이 또 있었다. 종이 울려도 제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는 학생이었다. 수업이 시작되면 친구들과 장난을 치거나 몸싸움을 하고, 엉뚱한 질문으로 수업의 흐름을 자주 끊곤 했다. 나는 어느 순간 그 학생을 ‘산만한 학생’, ‘집중력이 떨어지는 학생’으로 자동 분류해 두고 있었다. 어느 날 그 학생이 손을 들었다. 맥락과 맞지 않는 듯한 질문을 불쑥 던졌고, 내가 답하기도 전에 주변 학생들의 핀잔에 묻혀 버렸다.

나 역시 별 의미 없는 말이라고 넘겼다. 그런데 수업이 끝나고 교실을 나서다가 문득 그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수업 중 다룬 개념의 핵심을 비껴가면서도 정확히 건드리는 꽤 괜찮은 질문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놓친 것은 학생의 태도가 아니라 학생의 질문이었다. 더 정직하게 말하면, 나는 학생을 본 것이 아니라 학생에 대한 내 기억과 선입견을 본 것이었다. 학생을 보기 전에 우리는 학생을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다. 그 믿음은 판단을 빠르게 만들지만, 정확함을 잃게 만든다. 선입견은 눈보다 먼저 움직이고, 해석은 사실보다 먼저 결론에 도달한다. 플라톤은 사람들이 그림자를 실체로 착각한다고 했다. 칸트는 인간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신의 틀을 통과해 본다고 했다. 교실의 장면은 이 명제가 날마다 증명되는 공간이다.


심리학은 이를 ‘확증 편향’이라고 부른다. 한 번 느렸던 학생은 계속 느린 학생이 되고, 한 번 침묵했던 학생은 늘 조용한 학생으로 남으며, 한 번 실수한 학생은 끝내 부주의한 학생으로 규정된다.


학생이 변해도 그 변화를 보지 못하는 쪽은 종종 교사다. 그 이후 나는 판단보다 인정을 하고자 노력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관찰을 먼저 적기 시작했다. 사실만 남기는 방식이다.

– 연필을 들고 있음
– 공책에 기록 없음
– 설명 후 교사를 바라봄
– 주변 조의 진행 상황 확인

이 네 줄만으로도 학생의 상태는 과도한 해석 없이 드러났다.


학생에게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도 중요했다.


“왜 안 했어?” 대신 “어디서부터 막혔니?”


이 질문 하나가 학생의 언어를 열고 나의 선입견을 닫는다.


뇌과학은 관찰의 의미를 더욱 명확히 한다. 편도체는 익숙하지 않은 정보를 위험으로 해석하고 전전두피질은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빠른 판단을 선호한다. 그러나 전측대상피질은 예상과 다른 정보가 들어올 때 활성화되며, 그 순간 뇌는 기존의 틀을 잠시 멈추고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관찰은 학생을 다시 보게 하는 행위이자, 교사의 뇌를 다시 작동하게 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관찰은 기술이 아니라 교사가 성장하기 위한 태도다. 교사의 성장은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학생을 바로잡으려는 마음에서 “내가 무엇을 보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으로 옮겨가는 순간, 변화는 조용히 시작된다. 학생의 가능성도 그만큼 넓어진다.


교실에서 정말 바뀌어야 할 것은 학생이 아니라 학생을 바라보는 교사의 시선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보는 학생은 실제의 학생일까, 아니면 우리가 만들어 놓은 학생일까?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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