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여름

by 동네과학쌤

창문 너머 푸른 하늘이 유난히 눈부시다. 은은한 햇살이 교실 바닥에 일렁이고, 복도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파도처럼 퍼져간다. 지필평가가 끝나고, 곧 있을 체육 축제를 앞둔 학교는 들뜬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다. 살갗을 스치는 바람에서도 비릿한 여름의 냄새가 감돌고 있다. 아직 6월은 아니지만, 햇살의 결이 이미 초여름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계절은 흐르고 있는데, 문득 나 자신은 지금 인생의 어느 시점에 서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나는 지금, '30대'라는 인생의 여름, 그중에서도 초여름쯤에 있는 듯하다.


30대 초반의 시간은 마치 연두에서 짙은 초록으로 스며드는 나뭇잎 같다. 청춘이라는 봄을 지나, 본격적으로 삶의 색을 입혀가기 시작하는 계절. 가능성과 열정이 여전히 살아 있고, 이제는 그 에너지를 진짜 '나'로 살아가기 위한 방향성으로 모아야 하는 시기다.


이 초여름은 분명 푸르다. 하지만 이 계절이 상상만큼 청량하고 맑지만은 않다. 봄이 사라진 지구처럼,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온 더위가 삶의 여유를 앗아간다. 매달 손에 쥐는 박한 월급, 매일 계산해 보는 미래의 불확실함, 동기들이 다른 길로 옮겨갈 때 느끼는 외로움. 늘어진 오후의 땡볕처럼 그런 현실들은 숨을 막히게 만든다.


특히 밤늦게까지 수업 준비와 상담을 마치고 돌아온 뒤, 불을 켜고 텔레비전을 틀거나 SNS를 열면 마주하게 되는 또래들의 모습은 더 뜨겁게 다가온다. 대기업에 취업한 친구의 푸른 바다가 담긴 여행 사진, 일찍 자리 잡아 안정된 삶을 사는 동기의 단란한 일상, 여유롭게 휴가를 즐기는 선배의 모습. 그들의 여름은 마치 에어컨이 시원하게 틀어진 카페처럼 보인다. 반면 나의 여름은, 선풍기 네 대로 30명이 함께 견디는 교실 같다. 땀이 식을 틈 없이 다시 흐르고, 바람 없는 나날들이 길게 이어지는 계절. 그러나 정말 여름은, 숨이 막히고 덥기만 한 계절일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름은 반짝임의 계절이기도 하다. 운동장 위로 쏟아지는 햇살, 축구공을 쫓는 아이들의 땀방울, 나무 그늘 아래서 들려오는 숨찬 웃음소리. 교실 창가에 일렁이는 햇빛 조각들, 실험 도중 튀어 오르는 작은 불꽃, 마감 벽보 위에 그려진 형형색색의 아이디어들. 그 모든 순간은 눈부시게 반짝이고, 그 반짝임은 숨 막히는 일상 속에서도 문득 우리를 멈춰 세운다.


교직 생활 속에서도 나는 그런 빛나는 순간들을 마주해 왔다. 화학반응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숙이던 아이가 실험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고 친구들과 즐거워할 때, 소극적이던 학생이 과학 발표를 마친 뒤 또래 친구들의 박수를 받으며 눈빛이 환하게 빛나던 순간, 동아리에서 실험이 성공한 날 아이들의 기쁨. 몇 년 전, 야간 실험 수업을 마치고 나와 아이들과 함께 본 개기월식, 졸업식 날 받은 짧지만 진심이 담긴 감사의 편지, 대학생이 된 제자가 전해준 "선생님 덕분에 생명과학시간이 즐거웠어요"라는 말. 그 순간들은 뜨거운 오후 속에서도 찰나처럼 번지는 반짝이는 빛이었다.


그 반짝임은 월급이 적다는 현실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았고, 피곤함보다 더 강하게 나를 다음날의 교실로 이끌었다. 화려하지 않은 일상이지만, 누군가의 삶에 온기를 더하고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는 감각은 오래도록 내 마음을 환하게 채웠다.


물론, 여름은 때때로 소나기처럼 휘몰아치기도 한다. 실험 예산 부족으로 재료를 구하지 못해 수업이 미흡해졌을 때의 무력감, 아무리 쉽게 설명해도 과학에 흥미를 보이지 않는 학생들 앞에서의 좌절, 동료 교사와의 오해, 끝도 없이 이어지는 회의와 행정 업무. 어느 순간, 비에 흠뻑 젖은 듯 방향을 잃고 서 있다 보면, 내가 왜 교사가 되었는지조차 잊고 싶은 순간이 온다.


하지만 소나기 뒤의 공기는 어째서 더 맑을까. 비를 맞은 나뭇잎이 왜 더 선명하게 빛날까.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다시 교실로 돌아가게 하는 것은, 결국 그 반짝이는 순간들이 진짜였다는 믿음 때문이 아닐까. 매일 같은 듯 다른 아이들의 얼굴을 마주하며, 조금씩 달라지는 그들의 눈빛을 발견할 때, 나 역시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30대 교사의 삶은 그러하다. 봄의 기운을 머금은 채 여름의 열기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시간이다. 마음껏 그늘에서 쉴 수는 없고, 뜨거운 현실에 혼자 맞서야 하는 순간이 많다. 그러나 그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정말 조금씩 단단해진다.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며 시야는 더 멀어지고, 마음은 점점 더 깊어간다.


교정의 나무들처럼 무성하게 자라기 위해, 지금은 햇빛을 견디며 잎을 키우는 시간이다. 빠르게 자라지 않더라도, 조급하지 않고 내 속의 성장에 집중하고 싶다. 다른 직업의 화려함에 흔들리지 않고, 교사로서의 내 리듬을 믿고 걸어가고 싶다. 그 길이 때로 더디고 힘들지라도.


지금, 나는 인생의 초여름에 있다. 어쩌면 교사로서의 여름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 계절이 내게 무엇을 가져다줄지, 나는 아직 다 알지 못한다. 다만 확실한 것은, 햇살 속에서 피어난 작고 눈부신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그 빛을 따라 한 걸음씩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여름은 다가올 수확의 약속이다. 이 시기도 언젠가 가을로 익어갈 것이다. 지금의 이 더위가, 혼란이, 피로함이 어떤 열매로 여물어갈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교실로 향한다. 그 반짝이는 순간들이 나를 다시 시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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