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은 짧다. 해가 늦게 지고 일찍 뜨는 탓에 어둠이 머무는 시간이 줄어들지만, 그 짧은 밤은 도시의 네온사인들로 인해 더욱 빛이 난다. 홍대 앞 클럽에서 새어 나오는 음악 소리, 강남 루프탑 바의 반짝이는 조명, 한강 공원에 모여든 젊은이들의 웃음소리. 여름은 축제다. 특히 이십 대 초반의 여름은 더욱 그렇다.
스무 살, 스물한 살의 여름은 무책임하게 아름답다. 학자금 대출이 쌓여가는 것도, 취업 준비를 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잔소리도 아직은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오늘 밤만은 중요하다. 친구들과 함께 마시는 맥주 한 잔, 새벽까지 이어지는 수다, 썸을 타는 누군가와의 설레는 메시지. 여름밤의 네온사인이 젊음을 부추긴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대학가 주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나는 그런 젊음들을 구경했다. 새벽 두 시에 술에 취해 들어와 라면을 끓여달라고 하는 아이들, 아이스크림을 사면서 킥킥거리며 웃는 커플들. 그들의 여름은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다. 나도 그중 하나였으니까.
하지만 몇 해가 지나자 여름의 색깔이 달라졌다. 스물다섯이 되고, 스물여섯이 되면서 네온사인보다는 형광등에 더 자주 노출되게 되었다. 새벽 세시, 편의점 야간 근무를 하며 마주한 형광등은 네온사인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차갑고 밝고 무자비했다. 그 빛 아래서는 숨을 곳이 없었다.
빛은 강해졌지만 반짝임은 없어졌다.
같은 또래지만 다른 삶을 사는 친구들의 인스타그램 스토리가 올라온다. 제주도 여행, 유럽 배낭여행, 부모님이 마련해 준 펜션에서의 휴가. 좋아요를 누르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씁쓸하다. 나는 여전히 형광등 아래에 있다. 편의점 카운터 뒤에서, 혹은 좁은 원룸에서 취업 준비를 하며, 아르바이트 스케줄을 짜면서. 가계 형편이라는 건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든다. 불과 몇 살 차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여름이 축제의 연장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생존의 계절이다. 스물다섯의 여름과 스무 살의 여름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 있다. 그 선을 넘으면 갑자기 현실이라는 무게가 어깨에 얹힌다.
편의점 야간 근무를 하면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또래들이 많았다.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취업할 때까지 버티기 위해. 우리는 다른 이들이 축제를 즐기는 시간에 형광등 아래에서 일했다. 그 시간들이 아깝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친구들처럼 여행을 가고 싶고, 늦잠을 자고 싶고, 아무 걱정 없이 놀고 싶었다.
문득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우화에서 여름은 온전히 베짱이의 계절이었다. 개미는 여름에도 겨울을 대비해 일하고, 베짱이는 여름을 만끽하며 노래하다 결국 벌을 받는다. 그런데 나는 베짱이도 개미도 되지 못했다. 여름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여건도 되지 않았다. 축제에 참여하고 싶지만 돈이 없고, 미래를 준비하고 싶지만 당장 생계가 급했다. 어쩌면 내가 그들보다도 더 준비가 되지 않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우화 속 명확한 이분법과 달리, 현실은 훨씬 복잡하고 애매했다. 하지만 야간 근무의 고요한 시간들이 주는 선물도 있었다. 새벽 네시, 손님이 없는 편의점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 밖으로는 새벽 배송 트럭들이 지나가고, 가끔 택시가 서행하며 지나간다. 그 정적 속에서 나는 생각할 시간을 얻었다.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네온사인 아래의 축제 같은 시간들이 주지 못하는 깊이가 있었다. 혼자만의 시간, 조용한 성찰, 현실과 마주할 용기. 형광등의 차가운 빛이 오히려 내 안의 따뜻함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기도 했다. 어려운 시절을 버텨내는 나 자신에 대한 인정,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 같은 처지의 동료들과 나눈 대화들도 소중했다. 새벽 교대 시간에 나누는 짧은 인사, 힘든 하루를 버텨낸 서로에 대한 격려. 축제 속에서는 찾기 어려운 진정성이 거기에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했고, 작은 위로를 건넬 줄 알았다.
이제는 안다. 여름에는 두 개의 얼굴이 있다는 것을. 네온사인의 화려함과 형광등의 냉정함이 공존한다는 것을. 그리고 둘 다 필요하다는 것을. 스무 살의 무책임한 아름다움도 소중하다. 청춘이라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그 시절의 축제 같은 순간들은 나중에 돌이킬 수 없다. 친구들과 함께 웃고, 사랑에 빠지고, 꿈을 꾸는 시간. 그것들은 인생의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형광등 아래의 시간들도 의미가 있다. 현실과 마주하며 단단해지는 마음,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 진짜 나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들.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나는 더 깊이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결국 중요한 건 균형이다. 축제만 있는 인생도, 고생만 있는 인생도 온전하지 않다. 네온사인의 화려함에 취해 현실을 잊는 것도 위험하지만, 형광등의 차가운 빛에만 머물러 삶의 기쁨을 놓치는 것도 아쉽다. 같은 나이대임에도 처한 상황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누군가는 부모의 지원을 받으며 여유롭게 청춘을 보내고, 누군가는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며 빠르게 어른이 된다. 하지만 그 차이가 우열을 가르는 것은 아니다. 다른 길을 걷고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되,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축제의 시간에는 온전히 즐기고, 고생의 시간에는 그 의미를 찾아내는 것. 네온사인 아래에서도, 형광등 아래에서도 자신만의 빛을 잃지 않는 것. 여름은 여전히 짧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도 여러 가지 빛깔의 경험들이 섞여 있다. 화려한 네온사인도, 차가운 형광등도 모두 우리 인생의 일부다. 그 모든 빛들이 모두 모여 나만의 여름을,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소중한 조각들이었음을 깨닫는다. 지금 네온사인 아래 환하게 웃고 있는 이들도, 형광등 아래에서 묵묵히 자신의 시간을 쌓아가는 이들도, 모두 그렇게 자신만의 아름다운 여름 한복판을 지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