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 일요일밤
1.
백수일 때는, 일요일 저녁 약속을 친구들이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 몰랐다.
어차피 즐겁게 보내다 들어가서 다음 날 출근하면 되는 거 아닌가?
아무 것도 모를 때의, 이기적인 생각.
2.
직장인이 된 지금은, 이르면 토요일 저녁, 늦으면 일요일 오후부터 스트레스가 찾아온다.
빌어먹을 한 주가 또 시작되는구나.
내일 전무가 또 주말 재밌게 보낸 사람 없는지 묻겠지.
표정관리는 포기한지 오래다.
아직도 월요일, 아니 일요일 저녁에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뭔지 모르겠다.
3.
저번 주 인사평가에 대한 면담이 있었다.
받은 점수가 불만스러웠지만 승진대상자가 있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부장은 그 점수도 사실 내가 받을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첫 해이고 더 나아지길 바라서 그 점수를 주었으니 앞으로 더 분발하라는 메시지.
거기까지는 받아들여야지 했다. 부족한 점이 많으니까.
그런데 이어지는 부장의 말들은 충격에 충격이었다.
그 사람은 진심으로 내가 업무상 발전하길 바라서 말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평상시 자신이 나에게 갖고 있던 불만을, 인사면담이라는 자리를 빌어
마치 엄청나게 합리적인 근거라도 있는양 쏟아냈고
기습 당하는 입장에 처한 나는 그 사람이 말하는 동안 제대로 생각도 할 수 없었다.
4.
감정적으로 아직도 굉장히 미숙하다고 느끼는 것이,
인사면담이라는 걸 처음으로 하고 나서 쏟아지는 분노와 좌절을 혼자는 어쩌지도 못하고
그저 누군가 와서 날 좀 구해줬으면, 날 좀 안아줬으면 하는 생각으로 가득차
남은 시간 일에 집중하지도 못했다.
면담이 끝나자마자 홀가분하다는 듯이 퇴근하는 부장의 뒷모습은 덤이었다. 야, 아직 네 시도 안됐어.
5.
주말 내내 앓아누워있을 뻔한 나를 구원한 것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저번 달부터 다시 받기 시작한 심리상담.
부장의 비수같은 말에 찔려 상처입은 새처럼 찾아든 상담센터는 기억하는 그대로 참 따뜻했다.
항상 조곤조곤 말씀하시는 선생님께서 약간은 목소리를 높여 힘주어 말씀하시는 내용.
차에 치인 사람이 자기가 왜 더 조심하지 못했는지 자책할 필요는 없다.
본인이 스스로 느끼고 생각해서 깨닫는 약점과 고쳐야 할 부분, 그리고 그 사람의 말 때문에 드는 의심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휘둘리지 마라.
큰 도움이 되었다.
다른 하나는 주위 사람들.
S대리는 퇴근하자마자 자기가 오늘 너무 바빠 챙기질 못했다며 미안하다고 전화를 주었고
부장과의 면담은 어땠는지 물었다. 지하철 안내방송과 주변 소음에 섞여 들려오는 그 사람의 걱정과 배려.
그런 순간들이 나를 계속 살게 한다. 더 잘해야지.
동생, 엄마와 보낸 시간은 말할 필요도 없고. 사랑하는 내 가족들.
6.
휘둘리지 않겠다.
건전한 비판은 얼마든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단지 상처입히기 위한 말들에는 절대 꺾이지 않을 것이다.
주위 사람들이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말해주듯이 나는 책임감이 없지도 않고, 항상 노력하고 있고, 딱히 느리지도 않다. 주위 사람들에게 잘하고 있고, 더 잘하려고 노력 중이다. 나에게는 상황을 바꿀 힘이 있고, 그 힘은 온전히 나에게 있다.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
7.
다음 질문. 나는 이제 어떻게 하고 싶은가?
어떻게 살아서 어떤 결과를 만들고 싶은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