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는 가정폭력의 경험에서 비롯된 중증 우울증을 겪게 된 과정을 전반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치료는 어떻게 해야 될까? 나는 인지행동치료(CBT)와 트라우마 중심 치료를 추천받았다.
가정폭력의 치유가 가정폭력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고 관리하는 '극복'에 가깝다. 원론적으로는 우선 과거의 경험이 현재 나의 행동과 생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자각하고, 잘못된 점이 있으면 수정하면서 올바른 정서적 반응을 만들어간다. 여기서 잘못된 점이란 부정적이고 왜곡된 자기 인식을 말한다. 가정폭력이든, 데이트폭력이든 흔한 폭력의 피해자, 그리고 우울증 환자는 생각 흐름이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차례로 살펴보면 인지행동치료는 "증거 있어?"로 요약될 수 있겠다. 대부분의 심리적 문제는 문제 자체가 아니라 문제에 대한 본인의 주관적인 해석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다. 불안과 우울 역시 실제 일어난 상황보다는 그 너머의 타인의 평가와 미래에 대한 과장된 예상을 감안한 반응일 확률이 높다. 증거 없이 지레 겁먹은 사고 회로는 '무가치한 자신', '세상에 대한 불신', '미래에 대한 절망적 기대'로 향한다. 왜곡된 생각의 버릇의 지점을 인식하는 것이 첫 번째 해결책이요, 의식적인 교정이 두 번째 해결책이다. 과제 학습이 포함된 20회차 내외의 상담만으로 인지행동치료는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효과가 즉각적인 만큼, 현재에 마주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한다.
트라우마 중심 치료는 이와 반대로 장기적인 치료 방법이며 과거의 문제를 차근차근 완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트라우마가 된 과거의 경험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는데, 이때 정서적 고통이 없도록 안정된 환경에서 과거를 재가공한다고 한다. 모든 과정은 전문가와 함께 진행되어야 하며, 심호흡과 이완 훈련, 시선 처리 등의 동작 기법이 병행된다.
나의 경우에는 왜곡된 생각 버릇은 '세상에 대한 불신'과 '미래에 대한 절망적 기대'에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무가치한 나'와 관련된 생각 버릇은 심하지 않았다. 이번 일을 제외하고는 유능하고 활기찬 내 모습에 대한 믿음이 단단했기에, 예외가 어디서부터 비롯됐는지 찾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그동안의 인간관계, 그 중에서도 1차적 관계인 가족에 대한 나의 의식과 상태를 재점검할 것을 요구받았다. 교수님으로부터 느끼는 압박의 그 뿌리를 찾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관심을 끊었던 나의 '가족'에게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