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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수 Oct 05. 2022

25살, 육체노동에 뛰어들다

도전: 즐겁고 뚜렷하게 걸어가길

얼마  귀농한 친구 Y 만났다. 취업 대신 자기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 돈을 벌려고 양봉에 도전했다. SNS 양봉툰까지 올리던 Y 오늘 갑자기 너무 막막하다며 눈물을 보였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다들 입을 모아 성공했다고 말하잖아요. 그 길로 따라가지 않으려고 양봉을 시작했는데, 벌통도 너무 무겁고 주변에 보고 배울 사람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맞는 말이다. 취업 대신 알바만 하면서 평생 잘 먹고 잘 살겠다고 선언한 또래가 몇이나 될까.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심지어 본인이 먼저 그렇게 살고 있는 어른이 주변에 몇이나 될까. 직장인 틈바구니에서 혼자 다른 길을 가보겠다고 나서는 일이 얼마나 철딱서니 없게 여겨질까. 보고 배울 사람이 없다는 건 이렇게도 슬픈 일이다.   


벌통이 너무 무겁다는 Y의 말은 그저 귀여운 푸념이 아니었다. 직접 해보지 않고 감히 떠들 수 없는 묵직하고도 실존적인 고민이었다. 일단 발을 내디뎌 길을 나선 Y가 반가웠다. 나도 마을 밥상에서 일하면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급식실에서나 보던 대형 냄비를 번쩍 들고 씻을 때마다 매번 낯설고 힘들다. 압력 밥솥은 무겁고 잘 닦이지도 않아서 꽤 오래 사투해야 한다. 대부분의 제철 채소는 흙 묻은 채로 오는데, 세척하는 데에만 30분이 걸린다. 머리는 직장인의 정체성을 강렬하게 거부하지만 몸은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있던 때를 그리워하는 눈치다. 분명 나를 살리는 가장 이기적인 선택이었는데, 몸 쓰는 노동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호기롭던 첫 마음을 종종 잊는다. 누가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시작했는데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마주할 때마다 점점 흥미를 잃는 느낌이다.


돈으로나 지위로나 머리 쓰는 노동이 우대받는 세상에서 몸 쓰는 노동을 우직히 해나가기 위해서는 간절함과 단호함이 필요하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취업당하지 않겠다는 간절함, 모든 활동을 취업으로 귀결시키는 생각을 분명히 끊어낼 단호함이 필요하다. 하나 더, 함께할 사람이 필요하다. 혼자서는 안 된다. 양봉도, 마을 밥상도 혼자서는 지속할 수 없다.


코로나 돌림병을 지나며 자본주의와 기후위기 사이에 있는 부질없는 탐욕을 돌아보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멈추면서 고립, 우울, 단절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것을 돈에 의지하며 나 혼자 잘 사는 세상보다 단순하고 소박하더라도 함께 사는 삶을 꿈꾸게 되었다.


'기후위기 느낀다면 덜 사고 덜 써야 한다', '공장식 축산 반대한다면 고기 대신 땅에서 나는 채소 먹어야 한다', '돈 앞에 비참해지지 않으려면 직접 만드는 능력 길러야 한다'라고 말로만 외치면서 사는 모습은 그렇지 못할 때 그 말은 힘을 상실한다.


이제 막 전환의 삶을 시작한 나의 동지이자 벗, Y에게 잔잔한 응원을 보낸다. Y가 갑자기 양봉 그만두면 나도 계속 이 길을 걸어갈 용기를 잃을 것 같으니까. 우리 둘 다 뚜렷하게 잘 살아야 한다. 적어도 10년 뒤에는 누군가 우릴 보고 이 삶을 따라 살 수도 있으니까.


참고로 Y가 양봉을 시작한 지는 3주, 내가 마을 밥상에서 일한 지 1개월 되었다. 갈 길이 한참 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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