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표현할 곳이 없는 십대들

by 유타쌤

육아휴직 후 학교에 복직하자 모든 게 달라 보였다.


전에는 지각이 잦은 학생을 볼 때면 '저 애 엄마는 도대체 왜 자기 아이도 통제를 못하는 거야?'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아침마다 아이와 매일 전쟁을 치러야 할 엄마가 너무 안쓰러워진다. 수업시간에 태도가 바르지 못한 학생들을 훈계할 때마다 '부모가 어떻게 키운 거야?'가 아니라 '아들이 학교에서 선생님들에게 이렇게 혼나는 걸 알면 엄마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라는 생각이 든다. 문제행동을 보이는 학생들의 대부분은 부모와의 문제 역시 있기 때문에 같은 부모로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동시에 '나는 아들에게 이렇게 하지는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들은 학교 성적 역시 높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흡연이나 이성문제로 학교 규칙을 어겨서 정당한 절차를 받고 안전생활부(예전 학생부) 지도를 받는 학생들은 오히려 괜찮다. 남들은 아침 조회를 받고 있는데 혼자 나와 환경미화 봉사를 하면서 지나가던 선생님이 한 마디씩 해도 '에이, 앞으론 안 할 거예요'라고 웃으면서 대답하는 경우라면 사실 걱정할 것도 없다.


문제는 수업태도나 학교 생활은 성실한데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이들은 갑자기 수업 중에 감정 조절을 못하거나 상담을 할 때 손발을 덜덜 떠는 등의 모습을 보이곤 한다. 선생님들이나 친구들은 이런 학생들의 이상 행동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인데 그 이유는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나 보다'라고 간단히 원인을 규정해버리기 때문이다.


내성적인 학생들의 이상 행동 역시 눈에 띄지 않는다.

자신의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기도 하겠지만 이상 행동이라고 해봤자 신경 쓰고 살펴봐야 눈에 보일 정도로 잘 안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학생들이 나중에 가출을 하는 등 큰 문제를 일으켰을 때 담임교사가 '전혀 그럴 애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나는 아침 조회 때마다 학생들을 한 명씩 불러 상담을 하곤 한다. 조회라고 해봤자 15분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학생과 단 둘이 복도에 서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주로 들어주지만) 전에는 몰랐던 아이들의 생각이나 행동에 대해 알게 된다.

아침 조회 때마다 자꾸 엎드려 자는 학생에게 "요즘 피곤한가 봐.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라고 물었을 뿐인데도 순식간에 눈이 빨개지면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모습을 보면 '아, 내가 조금이라도 늦게 상담했으면 큰일 날 뻔했구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예전에 내가 미처 신경 써주지 못한 학생들이 떠올랐다. 초보 교사 시절에 수업 준비와 업무를 핑계 대고 상담조차 제대로 해 주지 못한 아이들... "선생님, 저 상담하고 싶어요."라고 용기를 내서 말한 학생들에게 "지금 너무 바쁘니까 나중에 선생님이 부를게"라고 대답했지만 결국 불러서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한 학생들이 너무나 많았다. 교사도 사람이기에 잘 몰랐던 때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 많은 아이들에게 무관심했다. 담임 선생님에게조차 감정을 표현할 시간을 거절당한 학생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바쁘게 업무를 하고 있을 때(대부분의 교사는 가르치는 일 못지않게 많은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내 등 뒤로 모기소리만 한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저 영어상담 좀 하고 싶어서요."

"어, 선생님 지금 너무 바쁜데 나중에 다시 올래?"

나는 학생에게 고개 조차 돌리지도 않고 대답했다.

"아, 네. 죄송합니다."

뒤돌아서서 교무실을 나가는 학생의 인기척이 느껴지자 순간 '아차'싶었다.

"잠깐만!"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는 학생 얼굴을 보니 더 미안함이 느껴졌다. 평소 수업시간에 굉장히 태도가 좋았지만 내성적인 아이였는데 상담을 요청하기 위해서 교무실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결심을 했을까 상상이 되었다.

"방금은 미안해. 선생님이 급히 해야 하는 일이 있었거든.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네가 더 중요한 거 있지? 하하하. 오늘 점심시간까지 끝내서 교육청에 보고해야 하는 일이 있어. 내일 점심시간에는 어떨까?"

"네, 감사합니다"

학생이 조용히 웃으며 대답했다.


아이를 보면서 생각했다.

나와의 상담이 학생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그리고 나중에 내 아들이 커서 부모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지 않을 때에도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학교에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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