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공부 습관:21일 엉덩이 프로젝트

by 유타쌤

며칠 전 은행 주차장에서 누군가가 "000 선생님"이라며 나를 불렀다. 뒤돌아보니 제자였다. 오랜만에 만난 제자와 추운 겨울, 그것도 길거리에서 무려 40분 가까이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나중에서야 근처 커피숍에라도 들어갈걸 후회가 되었지만 그때 당시에는 너무나 반가워서 추운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이야기하느라 어디 따뜻한 곳에 들어갈 생각 조차 하지 못했다.



"참, 너 교대 갔었잖아?"

"네. 저 지금 1학년 담임이에요. 그런데 선생님. 대부분 신입교사한테 왜 1학년을 주는지 알겠어요."

"왜, 힘들어?"

"그냥 유치원 티를 못 벗은 아이들이 많아요. 수업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있는 것 자체를 못하니까요. 왜 엄마들이 아이들 초등학교 가기 전에 영어나 수학, 요즘엔 한자까지 시키던데 뭔가를 배우고 오는 것보다 그냥 제 자리에 가만히 40분간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는 습관만 좀 들이고 오면 좋겠어요."

나는 제자의 말을 듣고 살며시 웃음이 나왔다. 왜냐하면 고등학생들조차 수업시간에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는 걸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어른들, 특히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조차 50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있는 게 힘들다는 것이다.



오래전 나는 해외 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설레는 마음을 잔뜩 안고 갔었지만 막상 도착해서 수업이 시작되자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교사들이 "어휴, 너무 힘들어." 라면서 두 번은 못 오겠다며 손사래를 쳤다. 오전 9 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되는 수업은 정말이지 내가 가르치는 고등학생 교실 모습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1교시는 활기차다. 하지만 2,3교시에는 집중도가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한국에서 미리 싸온 일명 다방커피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었다. 4교시에는 시계만 봤다. 배가 고팠기 때문에 자꾸 엉덩이가 들썩였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뛰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식당으로 향했다. 5교시는 공포의 시간이다. 수업이 재미있는 말든 집중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무조건 졸리기 때문이다. 다방커피를 마셔도 소용이 없다는 걸 알게 되자 학생 신분이었던 교사들은 식사를 마치고 일단 교실에 자리를 맡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 앞자리에 앉냐가 아니라 잘 안 보이는 뒷자리에 앉아서 덜 민망한 채 꾸벅꾸벅 졸 수 있냐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특히 교실 불을 다 꺼 놓은 채로 영상을 시청하는 날이면 더욱 큰일이다. 컴컴한 분위기에서 잠드는 경우가 허다하고 또 영상이 끝났다 하더라도 잠에서 쉽게 깨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래전 일정 연수를 받았던 때는 정말이지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순간들이 많았다.

일정 연수는 지정된 자리에 앉아야 했는데 나는 한가운데 자리였기 때문이다. 강사가 아주 잘 보이다 못해 나랑만 눈을 마주치면서 수업을 하시는 분도 계셨는데 나는 졸음을 참느라 허벅지를 꼬집기까지 했다. 한 번은 5,6교시 강사분이 파워 포인트로만 수업을 진행했는데 나중에는 화면이 잘 안 보일 것 같다면서 교실 불까지 끄는 게 아닌가. 수업이 끝나고 맨 뒷자리에 앉았던 선생님이 해준 말에 따르면,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교사들은 마치 머리에 채상모를 쓰고 신나게 풍물놀이를 하듯이 머리를 돌리면서 졸고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성인들도 수업시간에 집중하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십 대 고등학생들은 어떻겠는가.

50분 수업 내내 앞자리에 앉아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열심히 수업을 듣는 아이들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이다. 재미있는 것은 아이큐, 즉 머리와 엉덩이의 힘은 별로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아이큐가 굉장히 높아서 줄곧 영재반에 있었다던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와서 실력 발휘를 전혀 못하는 경우를 굉장히 많이 봤다. 이 아이들은 하나같이 엉덩이의 힘이 부족했다. 50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칠판과 교사, 교과서만 보면서 정신없이 필기하는 앞자리 아이들과는 달리 이런 아이들은 종종 수업 도중에 시선을 살짝 다른 곳으로 돌리며 다른 생각을 하곤 한다. 한 번은 머리가 너무나 좋은데도 수업태도가 좋지 않아서 성적이 잘 나오지 않은 반 아이를 불러서 상담을 한 적이 있었다. 도대체 왜 수업시간에 집중을 하지 않는지 묻자 아이는

"선생님,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집중이 잘 안돼요"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수업태도가 좋고 도서관에서 자기 주도적 학습을 잘하고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이런 아이들에게서 세 가지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첫째, 끊임없이 자기 스스로에게 이야기한다.

상위권 아이들에게 수업시간 내내 가만히 앉아서 집중을 할 수 있는 비결을 물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딴생각하지 마', '얼른 다시 집중하자' 같이 계속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어쩔 때는 다시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잊고 딴생각에 푹 빠져버릴 때가 있어요.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고개를 끄덕이고 펜을 굴리는 척 하지만 다른 생각을 하는 거죠. 제가 몇 번 그렇게 집중을 못해서 수업 시작할 때마다 책상 맨 위에 '집중'이라고 쓴 포스트잇을 붙여놔요. 그러면 딴생각을 하다가 포스트잇을 보고 아차 하면서 다시 수업에 집중해요."

"저랑 나름 라이벌인 애가 있는데 그 애 뒤쪽에 일부러 앉아요. 수업시간에 딴생각 들거나 잠이 올 때 그 애가 막 필기하거나 엄청 집중하는 거 보면 안 되겠다 싶거든요. 막 저한테 이야기해요. 쟤도 하는데 넌 지금 뭐 하는 거냐고, 빨리 집중하라고요."

이렇게 아이들은 졸음이 쏟아지거나 집중이 어려워지는 순간이 올 때마다 스스로에게 이야기하고 채찍질한다.



둘째,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제 막 고등학교에 올라온 아이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아직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학과를 목표로 해야 하는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부모의 주도 아래 공부를 해 온 학생들 역시 정해진 진로는 있으나, 사실은 부모의 바람일 뿐 학생 자신이 원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공부하는 주도적인 학습이 어렵다. 나는 이렇게 목표가 없는 아이들에게 종종 등수를 목표로 세워보라고 말하곤 한다. 지난번에 182등을 한 아이는 나에게 "선생님, 저 이번에 꼭 150등 안에 들 거예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른 과목은 죄다 바닥인데 한국사만 잘하는 학생에게 다른 과목 공부에 대한 목표를 갖도록 이렇게 말해준 적도 있다.

"나중에 외국인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여행 가이드를 할 수도 있고,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써서 작가가 되어 여러 지역, 혹은 다른 나라에 강의를 하러 마치 여행 가듯 돌아다닐 수 있어.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열심히 한국사 공부를 하면 되긴 하지만 다른 과목들도 소홀히 해선 안 되겠지? 특히 네가 영어까지 잘하면 더 메리트가 있는 거잖아!"


목표가 없어서 자칫 무기력한 고등학교 아이들에게 단순히 "목표를 세우고 동기를 가져봐"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하고 싶은 욕구가 들도록, 그래서 매일 조금씩이라도 변화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주변에 어른들, 특히 부모와 교사들이 끊임없이 자극해 주고 이끌어 주어야 한다.



셋째, 어렸을 때부터 공부하는 습관을 가져왔다.

EBS 영어 지문에 '습관'에 관한 글이 나온 적이 있다. 뭔가 새로운 행동을 매일 하길 원한다면, 다시 말해서 그 행동이 습관이 되길 원한다면 단지 21일 동안만 매일 그것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21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말고 매일 그 행동을 하다 보면 22일째 되는 날에는 자연스럽게 혹은 아무런 생각 없이 그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매일 야간 자율학습을 꾸준히 하는 아이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대부분 어렸을 때부터 늘 책상에 앉아서 공부해 왔다고 한다. 그래서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늦게까지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게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마치 밥을 먹고 난 뒤에는 양치질을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그 아이들에게는 그날 배운 것들을 복습하고 어려운 부분은 스스로 다시 한번 확인해 보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그날의 일과인 것이다.


오늘부터라도 아이들과 '21일 엉덩이 프로젝트'를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정해진 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서 스스로 작성한 그 날의 학습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딱 21일 동안 말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똑똑한 게 아니라 단지 문제를 더 오래 연구할 뿐이다 (It is not that I am so smart. It is just that I stay with problems longer)"


머리가 좋고 나쁨은 중요하지 않다. 누가 더 오랫동안 그 길을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게다가 내가 걸어야 하는 길이 단지 21일만 노력하면 그다음부터는 어렵지 않은 길이라고 한다면 한번 걸어볼 만하지 않겠는가.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학교 규칙, 꼭 그렇게 지켜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