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레이디 경향'이라는 여성잡지에 실린 ‘초중고 입학 앞둔 아이와 학부모를 위한 지침서’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기사 말미에 한 초등학교 교사의 인터뷰가 실려 있었는데 학교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교사는 ‘성실’이라고 대답한 걸 보고 나는 ‘초등학교 시절 버릇이 고등학교 시절까지 가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나 역시 주변의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로부터 무엇이 제일 중요하냐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하는데 그때마다 ‘성실성’이라고 대답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성실성을 크게 세 가지로 적어보면,
첫째, 등교시간에 지각하지 않기
둘째, 수업시간에 지각하지 않기
셋째, 정해진 기준의 복장 규정 지키기
이다.
‘아니, 수업시간에 스마트폰 하지 말기, 야자시간에 땡땡이치지 않기, 이런 게 더 중요한 성실성의 덕목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바에 의하면 위의 세 가지를 지키는 학생들은 나머지 부분도 역시 성실하며, 지키지 못하는 경우에는 나머지 부분 역시 성실하지 못했다. 특히 맨 첫 번째인 등교시간에 지각하지 않기는 대부분의 교사가 학생과 그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준이다. 담임들은 대개 아침 조회 시작 전에 교실에 먼저 들어가 반 상태를 점검하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런데 이때 꼭 지각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이런 아이들을 살펴보면 졸업하기 전까지 내내 ‘지각생’이라는 불명예를 갖고 있다. 왜 늦었냐고 물으면 아이들은 대부분 늦게 일어났다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너무 지각이 잦은 경우 학부모와 통화를 해 보면 부모 역시 수업시간이 아닌 아침 조회 시간에 조금 늦은 것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한 인상을 받는 경우가 많다.
학교생활의 시작부터 지각을 한다는 것은 일찍 와서 준비하는 다른 아이들에게 이미 뒤처져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반별로 지각이나 조퇴, 결석 등의 숫자가 파악되어 학년별로 통계가 나오기 때문에 담임 입장에서는 지각이 많은 경우 그 반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명예를 얻게 된다.
고등학교는 많은 과목의 수업이 전용 교실로 이동해서 이루어진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 역시 영어, 수학 과목은 학생들의 수준에 맞게 수준별 이동 수업을 하며 화학실, 물리실, 미술실 이렇게 전용 교실에 있는 과목 수업 역시 학생들이 다 이동해서 수업을 듣게 된다. 쉬는 시간 10분 동안에 한 교실에서 다른 교실로 이동하는 것이 빠듯하기 때문에 수업에 욕심이 있는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앉기 위해 수업종이 울리자마자 부리나케 가방을 싸서 다음 교실로 이동하곤 한다. 그런데 이 짧은 쉬는 시간에 매점을 다녀오게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매점은 보통 교실이 있는 건물 밖에 위치하는데 나갔다 오면 대개 수업 종이 치기 때문이다. 매점을 다녀오느라 지각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먹거리를 산 뒤 먹으면서 교실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매점을 자주 가는 아이들은 수업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수업시간에 다 먹지 못한 음식을 몰래 먹느라 수업 자체에 집중을 하지도 못한다. 다시 말해서, 수업시간에 지각하는 학생들은 수업 자체에도 성실하게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부분의 고등학생들 역시 지각에 민감한데 수업에 늦었을 경우에는 생기부에 무단지각으로 표시가 될 뿐만 아니라 해당 수업의 수행평가 태도 점수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점에 다녀오느라 지각을 하는 아이들은 지각을 반복하곤 하는데 그런 아이들 대부분이 아침식사를 하지 않고 학교에 온다. 따라서 쉬는 시간이 되면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매점에 가서 삼각 김밥이나 과자로 끼니를 때울 수밖에 없게 되고 이게 반복이 되면 수업시간에 지각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내가 맡고 있는 학급 아이들이 다른 수업시간에 지각을 자주 하면 바로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아침밥을 꼭 먹고 올 수 있도록 당부한다. 아침밥을 먹고 등교하는 것 자체로도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하고 교사에게 모범적인 학생이라는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교과 선생님들은 수업시간에 떠들거나 자는 아이들 못지않게 지각하는 학생들에게 굉장히 엄격하다. 열심히 수업 준비를 하고 교실에 들어갔는데 지각한 학생들로 인해 수업 시작부터 흐름이 끊기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아이들을 훈계하면서 감정적으로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혼나는 아이보다 혼내는 부모 마음이 더 아프다는 말이 교사에게도 적용되는데 학생들을 혼내면서도 ‘왜 내 시간에만 지각을 하는 걸까? 내가 아이들을 제대로 지도하지 못하는 걸까? 혹시 교사의 자질이 좀 부족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수업 시작종이 울리자마자 교실에 들어가 출결 확인을 하며, 조금이라도 늦은 아이에게는 수행평가 태도 점수를 깎을 뿐만 아니라 지각이 잦은 경우에는 이동 수업 교실을 옮기도록 지시하는 등 엄격하게 지도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 시작부터 지각생을 훈계하고 나면 수업 내내 그 학생과 눈을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미안한 마음이 들고 내가 과연 교사로서 잘하고 있는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고등학교 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의 복장 상태를 지도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만 해도 머리카락이 귀밑 3센티미터를 넘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의 영향 아래 머리카락 길이에 특별히 제한이 없는 요즘 상황을 보면 정말 아이들의 자유와 개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십 대이던 90년대에 교복 치마 속에 체육복 바지를 입는 학생들이 복장 규정으로 가장 많이 걸리던 때와는 그 정도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입학할 때 구입했던 교복 치마 중에 하나는 교내에서 입고 다니지만 나머지 하나는 속옷이 보일랑 말랑 할 정도로 짧게 수선해서 학교 밖에서 입고 다닌다. 사실 학교 밖에서만 입고 다니면 양반에 속한다. 아이들은 학교 화장실에서 짧은 교복을 갈아입고 난 뒤에 정문 밖으로 나가기 때문에 그 사이에 교내에서 미니스커트로 변신한 교복차림을 선보이곤 한다. 사실 이것 역시 봐줄 만하다. 책가방에 항상 미니스커트 교복을 가지고 다니다가 점심때나 저녁때 갈아입고 다니는 아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남자 교사들은 이런 아이들의 치마 길이를 지도하는데 많은 불편함을 느끼고 일부 선생님은 아예 여자 선생님에게 지도하도록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 짧은 치마 길이를 지도했을 뿐인데도 아이들이 혹시나 자신이 여학생의 다리를 쳐다봤다며 성희롱 아니냐고 따질까 봐 겁이 난다는 것이다. 여자인 나조차도 엉덩이를 겨우 가릴만한 길이의 교복 치마를 입고 학교 근처를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볼 때면 내가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가려주고 싶을 정도이다. 내가 처음 담임이 되어 학급을 맡던 해에 한 아이가 교내에서도 이런 미니 교복을 입고 다니다가 여러 번 걸리곤 했다. 그래서 그 학생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가 학교에서 여러 번 치마 길이를 수선하라고 했지만 이게 수선한 거라고 말하면서 계속해서 짧은 교복 치마를 입고 다니기 때문에 아침에 집에서 등교할 때 복장 상태를 엄격하게 지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학생의 어머니가 “제가 아무리 말해도 안 들어요. 그냥 학교에서 더 혼내 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대답해서 당황한 적이 있었다. 물론 아이가 학교 안에서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선생님이 지도를 하겠지만 가정에서 부모의 도움이 없다면 완전히 지도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그런데 매년 담임을 맡으면서 복장 규정을 어기는 아이들을 지도하다 보니 그런 아이들에게서 공통된 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바로 부모들이 자녀들의 올바른 학교 생활에 대해 직접 관여하기보다 학교가 잘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점이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에게 뭔가 이야기하면 할수록 더 어긋나는 행동을 하기 때문에 지도하기 어렵다는 부모가 대부분인데 나는 이런 아이들을 담임인 내 선에서만 해결하려고 했다가 실패한 적이 많았다. 이런 아이들은 학교나 가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혼자서 해결하는 방법조차 모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불안한 상태이기 때문에 교복을 수선해서 입거나 머리를 염색하는 등의 행동으로 해소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교에서 선생님은 아이에게 불량하다고 뭐라고 하고, 집에서는 부모가 그 꼴이 뭐냐고 잔소리를 하기 때문에 아이는 자신이 받은 스트레스나 문제 상황을 해결할 곳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짧은 교복 치마를 입고 짙은 화장을 하는 등으로 자신의 불만을 표출하곤 한다.
몇 년 전 내가 맡은 학급의 한 여학생은 위에서 언급한 성실성의 세 가지 조건을 단 하나도 지키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학교에 다니는 것 자체에 흥미가 없었다. 아이는 수년 전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살고 있었는데 밤새 컴퓨터를 하거나 학교를 그만둔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새벽에나 집에 들어가 자곤 했다. 당시 어머니는 힘든 집안 살림을 꾸려 나가느라 아이를 제대로 보듬어 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가 잠에서 깬 시간이 바로 학교에 등교하는 시간이었고 진한 눈 화장을 한 채로 학교에 온 아이는 수업시간에 주로 책상에 엎드린 채 잠만 잤다. 왜 수업에 참여를 하지 않느냐는 교과 선생님의 훈계에 “수업 내용을 하나도 이해 못하겠어서요.”라고 조그맣게 대답하며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자퇴를 하고 싶어 했지만 나는 허락하지 않았다. 알바를 하면서 번 용돈으로 학교를 그만둔 친구들과 어울려 놀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자퇴를 하더라도 아이가 뒤바뀐 낮과 밤 패턴을 고치고 검정고시를 보겠다는 다짐을 한 뒤에야 허락하겠노라고 엄포를 놓았다. 학생의 엄마는 아이가 원하면 학교를 그만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말을 하면서 아이가 어떤 생활을 하는지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아이 스스로 자신의 생활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상담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하루하루 간신히 아이를 학교에 나오도록 했다. 당시 아이의 사정을 알고 계시던 교감 선생님이 아침마다 자신의 자가용으로 아이를 태우고 등교한 적도 있다. 교과 담당 선생님들에게는 아이가 처해 있는 상황을 이야기하고 수업 진도에 따라갈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했다. 아이는 더 이상 화장을 하지 않았고 반듯한 교복 차림으로 학교에 나와 수업시간에는 창가 쪽에 앉아 교과 선생님이 따로 내 주신 공부를 하는 등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듬해에 아이는 결국 자퇴를 하였다. 갑자기 바뀐 교실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워했고 훨씬 더 어려워진 고3 수업 진도를 더는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다시 화장을 하기 시작했고 학교를 아예 나오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화장을 진하게 하고 긴 생머리 가발을 쓴 채 걷고 있는 학생을 봤다는 학생들의 얘기가 전해졌다. 나 또한 새 학기가 시작되어 바쁘다는 이유로 끝까지 아이를 책임지지 못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고등학생들은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 그래서 학교 규칙을 하나씩 어기기 시작하면 학교생활 자체가 계속해서 틀어지게 되고 이것이 쌓이다 보면 아이는 결국 학교 부적응 자가 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교사들은 사소한 규정 위반이라도 이를 엄격히 지도하려고 애쓰는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정에서는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아이가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상태가 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며,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교사’에서 벗어나 ‘이끌어주는 교사’라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아이를 지도해야 한다. 공부를 잘 하든 못하든, 학교에서 ‘날라리’라고 찍힌 아이든 모범적인 아이든 간에 이 세상의 모든 학생들은 결국 어른의 관심과 배려 속에서 성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