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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귤선생님 May 16. 2022

공부할 마음이 안 들어요

그러는 우리는 공부할 마음이 들게 가르치고 있는가

"1학년 0반 수업만 하고 나오면 완전히 지쳐."

올해 1학년 담임을 맡은 동료 A가 말했다. 

"아니, 고등학교 1학년인데 적어도 공부를 하려고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때 아냐? 무슨 수시 다 떨어진 고3처럼 굴어.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건 아닌데 듣지는 않고 그냥 가만히 앉아서 멍 때리는 거야. 내가 수업 따라가기 어려우면 다른 책을 꺼내서 공부해도 된다는 말까지 했어. 아이들 시간이 아까워서! 그런데도 안 해. 그냥 아무것도 안 해."


  매년 고1 수업을 들어가는 선생님들마다 '올해 아이들은 기초학력이 작년보다 더 떨어지는 것 같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물론 올해도 그렇다. 작년보다 학력 수준이 낮고 무기력한 아이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인구수가 점점 줄어들어서 예전 같았으면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갈 성적이 안 되는 아이들 조차 진학하고 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데 교과서나 수능의 수준은 이런 아이들에 맞춰 더 쉬워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난이도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니 중학교 때 공부하는 습관을 갖추지 못한 아이들은 수업시간마다 고역일 것이다.


  교사들 역시 힘들긴 마찬가지다. 

1학년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동기가 이런 말을 했다.

"수업을 아예 못 따라와요. 사칙연산을 하긴 하는데 남들 열개 풀 시간에 두세 개밖에 못 푸는 속도를 가지고 있으니 수업시간에 교사가 하는 설명을 이해 못 하는 거죠. 잘하고 싶어 했다가도 수업시간에 못 따라오는 게 반복되다 보면 결국 포기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냥 멍 하고 있는 시간이 이어지는 거죠."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다 최근 중학교로 옮긴 친한 동생도 이렇게 말했다.

"중학교에서 자유 학년제를 하면서도 꾸준히 공부를 이어가야 하는데 그냥 놀아버리는 아이들이 많아. 중학교에서 활동 위주의 수업을 하고 공부에 대한 경각심이 별로 없다가 갑자기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깜짝 놀라는 거야. 수준이 너무 다르잖아. 중학교 때 아이들이 배우는 국어 문법이 5 단계 까지라면 고등학교에서는 8단계부터 시작되는 거야. 6,7단계를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는데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하고 8단계 수업을 하고 있는 거지. 중학교 때 배운 것도 까먹고 있는 실정인데 어떻게 8단계 수업을 따라올 수 있겠어?"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나 조차도 아이들의 수준을 보면 기가 막히다. 잘하는 아이들은 너무 잘하고 못하는 아이들은 영어의 3인칭 조차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그런데 과연 아이들만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몇 년 전에 교육청에서 실시한 영어 수업 관련 연수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교사들이 다양한 영어 교수법을 가지고 재미있게 영어를 가르치는 방법을 배우고 서로 연습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어느샌가 연수가 토론의 장으로 변했다.

"이런 활동 하는 거 좋아요. 저도 하고 싶죠. 그런데 고등학교에서는 이런 거 못해요. 한다고 해도 고1 때 잠깐 하겠죠. 모의고사 준비해야 하고 결국 수능 성적이 잘 나와야 하는데 이런 활동은 수능 영어랑 관련이 없어요. 그래서 인문계 고등학교에선 EBS 교재나 수능 기출문제집을 할 수밖에 없어요. 중학교 때 이런 활동 위주의 수업으로 재미있게 영어를 배웠다 해도 고등학교에서는 수능을 위해 10년 전, 20년 전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배웠던 그 방법 그대로 여전히 가르치는 거죠."


  내 주변의 많은 영어 교사들은 '아니, 활동식 영어 수업을 하길 원하면 입시도 그에 맞게 따라가야지. 그 둘이 다른데 어떻게 하겠어? 당연히 입시 영어를 해줘야지.'라며 자신들이 아직도 주입식 영어 수업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나름 입시 탓으로 돌리고 있다. 실제로 다양한 활동형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과학중심고등학교에 딸을 보내고 있는 지인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학교 선생님들이 정말 다양하게 수업 준비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수업도 재미있고요. 그래서 딸도 진짜 학교 가기 싫다는 말 거의 안 하고 잘 다니고 있어요. 아, 입시 준비요? 그건 사교육으로 해결하죠."


  며칠 전 나는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영어회화 연수를 신청했다. 학교 수업시간에 활용하려고 한 게 아니라 영어회화를 하도 써먹은 지가 오래된 것 같아서 잊지 않으려고 신청한 것이다. 그런데 십여 년 전 내가 여전히 입시위주의 수업을 하던 시절에 아이들에게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약 1분 정도 짧게 실용영어회화를 알려줬던 게 생각이 났다. 그리고 수업 중간중간에 대학교 때 배웠던 다양한 교수법을 활용하여 수행평가 활동을 진행했던 것도 떠오르면서 '왜 지금은 하지 않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쩌면 현재 입시 상황을 핑계로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아이들이 공부할 마음이 들지 않은 이유를 '고등학교 수업에 따라올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을 갖추지 못한 아이들' 탓으로 돌려 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갖추지 못하고 올라온 건 내 탓이 아니지만 이미 고등학교에 왔는데도 공부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교사로서 나의 수업이 어떠한지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하는데 나는 지금까지 아이들 탓, 입시 탓을 하며 14년 전 첫 신임교사였던 때 보다 더 퇴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능 위주의 문제풀이 수업을 하긴 해야 한다. 하지만 교과서 수업을 할 때에는 다양한 활동 위주로 진행할 수도 있고 수행평가 활동에서는 최근 핫 하다는 미디어 연계 수업을 시도할 수도 있다. 예전에 했던 것처럼 수업 시작 전 짧게 영어회화를 알려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냥 회화면 재미없으니 영화나 미국 드라마 속 대사를 활용해볼 수도 있다. 


  톨스토이가 '모든 사람이 세상을 바꾸는 것을 생각하지만 아무도 자신을 바꾸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듯이, 내가 입시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게 뭐가 있는지 생각해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시도하면 된다. 수업시간이 재미없다면 중간중간에 예전에 여행 간 곳의 일화를 이야기하면서 세계 여행을 꿈꿀 수 있도록 자극시켜줄 수도 있다. 영어 학습과 입시를 위해 만들었던 교과 동아리에서 벗어나 팝송 배우기나 영미 드라마 대사 배우기 같은 동아리를 만들어 볼 수도 있겠다. 어법 위주의 수행평가가 아닌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수행평가를 진행한다면 지루한 입시 위주의 수업에서 벗어나 잠깐이나마 아이들의 숨통이 트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나부터 변하다 보면 공부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던 아이들이 조금씩이나마 영어에 대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테고, 이런 교사들이 점점 많아지게 되면 입시와 교육의 괴리감도 언젠가 좁혀지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도 나는 교실로 향한다.




"I cannot say whether things will get better if we change: what I can say is they must change if they are to get better."

우리가 변한다고 해서 더 나아질 것이라고 장담할 순 없다. 하지만,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변화해야 한다.               

-Georg Christoph Lichten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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