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다양성의 확장에 대한 소고

구조와 경험, 그리고 지금의 독서 지형에 대해

by 유테테

<어떤> 창간호 인트로에서 서점을 바다에 비유한 적이 있다. 유영하듯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침잠하러 오는 사람도, 정복하러 오는 사람도 있다고. 그렇다면 우리는 한 번쯤 물어봐야 할지 모른다. 그 바다에 모든 사람이 들어올 수 있는가. 파도가 모두에게 같은 높이인가.


출판계는 활기차 보인다. 크고 작은 북페어가 전국 각지에서 열리고, 독립서점이 늘고, 책과 출판에 대한 이야기가 콘텐츠가 되는 시대다. 그런데 그 풍경 안을 조금 오래 들여다보면, 반복되는 어떤 언어와 감각이 있고, 그것을 중심으로 독자 지형이 설계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다양성을 말하는 자리에서도, 실은 특정한 몸과 특정한 관심사와 특정한 삶의 결을 가진 독자가 기준점으로 놓여 있다. 그리고 그 바깥의 사람들은 아무도 내보내지 않았는데, 어느새 가시권 밖에 있다. 이것을 우리는 '독자 다양성'의 문제라고 부른다.


독자 다양성은 특정 집단의 분포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연령별 비율을 맞추거나, 성비를 조정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얼마나 다양한 삶의 조건과 읽기의 목적이, 책이라는 매체 안에서 실제로 공명하고 있느냐의 문제다. 어떤 독자는 글자가 작아서 책을 내려놓고, 어떤 독자는 자신의 관심사가 책 안에 없어서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어떤 독자는 자신이 살아온 세계가 수상작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조용히 확인한다. 이런 일들은 선언 없이 일어난다. 구조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읽는 몸에 대하여

독서는 생각보다 훨씬 신체적인 행위다. 눈이 줄을 따라가고, 손이 페이지를 넘기고, 어떤 자세로 얼마나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지까지. 우리는 독서를 정신의 일로만 이야기하지만, 그 경험의 상당 부분은 몸의 조건에 달려 있다. 시력이 흐려지면 글자가 뭉개지고, 나이가 들면 길게 집중하기 힘들어지고, 어떤 신체 조건에서는 책을 집어 드는 일 자체가 작은 벽이 된다.


교보문고가 선보인 큰글자책 브랜드 '이지페이지(EasyPage)'는 그 벽 앞에서 출발한다. 판형은 너무 키우지 않으면서도 저시력자와 고령층 독자를 위해 글자 크기와 행간을 넉넉하게 설계한 책. 언뜻 단순한 편집의 변형처럼 보이지만, 이 시도가 담고 있는 질문은 그보다 오래된 것이다. 우리는 지금껏 어떤 몸을 독자의 기본값으로 상정해왔는가. 작은 글씨의 책이 '일반'이고 큰 글씨의 책이 '특수'라는 전제 자체가, 사실은 처음부터 일부 독자를 주변으로 밀어놓는 구조였을지도 모른다. 이지페이지는 그 전제에 조용히 질문을 던진다. 독서 경험의 물리적 장벽을 낮추는 일은 특정 집단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독자라는 개념을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한국이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지금, 이 질문은 더 이상 소수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 독자들이 책을 내려놓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도, 독자 다양성의 한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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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에서 찾는 사람들

어떤 독자들은 책을 떠난 게 아니다. 책이 그들을 담지 않았을 뿐이다. 기술, 산업, 경제, 과학. 혹은 직장 생활이나 삶의 구체적인 현상들. 이 주제들에 목마른 사람들은 오늘도 유튜브 알고리즘을 따라가고, 팟캐스트를 귀에 꽂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분석글을 찾아 읽는다. 책보다 그곳이 더 빠르고, 더 밀도 있고, 때로는 더 솔직하기 때문이다. 이 현상을 독서 인구의 이탈로만 읽으면 오독이다. 이건 책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책이라는 매체가 상정하는 독자와 실제로 존재하는 독자 사이의 거리가 만들어낸 결과다. 책 중심의 지형에서는 현실에서 활발하게 소통하는 주제들, 예컨대 경제 이슈, 장르적 긴장, 과학적 사유, 직업 세계의 구체적인 면들이 충분히 자리 잡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출판이 특정한 언어와 감각을 향해 수렴할 때, 그 방향과 다른 관심사를 가진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매체로 흘러가는 선택을 하게 된다.


그래서 독자 다양성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책이 누구의 관심사를, 어떤 삶의 단면을, 어떤 사유의 방식을 중심에 두는가. 그 선택이 독자 지형을 만들고, 독자 지형이 다시 출판의 방향을 만든다. (혹은 출판의 지형이 만들어지고, 만들어진 출판 지형이 독자들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것일지도). 그 순환을 들여다보는 것이 먼저다.


문학상이라는 지표

어떤 작품이 빛을 받는지는, 그 장이 무엇을 중심에 두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문학동네 주관 젊은작가상 제16회(2025년), 제 17회(2026년)에서 수상자 전원이 여성 작가다. 이 상 제정 이후 2014년, 2021년, 2023년, 2025년, 2026년 총 다섯 번째 기록이다. 며칠 전 발표한 제49회 이상문학상에서도 대상과 우수상 수상자 전원이 여성이었다. 대상은 위수정 작가의 단편소설 『눈과 돌멩이』, 우수상은 김혜진, 성혜령, 이민진, 정이현, 함윤이의 작품들. 1977년 이상문학상이 제정된 이래 수상자 전원이 여성인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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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결과를 두고 여러 말들이 오갔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더 오래 붙들어야 할 것은 성별 결과 자체보다, 그 결과가 드러내는 질문이다. 문학상은 어떤 언어와 감각과 문제의식을 중심에 두는가. 어떤 서사가 '문학적'이라는 판단을 받고, 어떤 서사는 그 기준에서 비껴나 있는가. 심사의 구조가 특정한 미학을 반복적으로 강화할 때, 그 바깥의 목소리들은 경쟁에서 밀리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른 기준으로 읽히는 자리에 놓이게 된다. 선택은 중립적일 수 없고, 중립적이지 않다. 어떤 작품을 조명하느냐는 어떤 독자를 상정하느냐와 이어지고, 어떤 독자를 상정하느냐는 어떤 삶의 경험이 문학의 언어로 번역될 자격을 갖는지의 문제로 번진다. 그 연쇄적인 구조를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독자 다양성을 이야기할 때 문학상을 함께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보편이라는 이름의 착각

보편성은 한 집단의 언어가 확장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종종 '보편적인 이야기'라는 말을 쓴다. 그런데 그 보편성이 실은 특정한 연령, 특정한 신체, 특정한 직업과 삶의 경험을 가진 독자를 기준으로 설계된 것이라면, 그것은 보편이 아니라 '중심의 다른 이름'이다. 진짜 보편성은 다양한 삶의 조건과 세계관과 경험들이 서로 교차하고 충돌하면서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만들어진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삶의 감각이 책 한 권을 통해 '0.5도쯤 나의 좌표를 틀어놓는 것', 어쩌면 그게 독서가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오래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 장면을 만들려면, 먼저 몇 가지를 직면해야 한다. 어떤 신체 조건이 독서 경험을 방해하고 있는가. 어떤 관심사와 삶의 현상이 책 속에서 충분히 호명되고 있는가. 어떤 미학과 언어가 반복적으로 중심에 놓이고 있는가. 불편한 질문들일 수 있다. 하지만 피해가면, 우리는 계속해서 다양성을 말하면서 특정 독자만을 전제하는 구조를 반복하게 된다.


독자 지형을 다시 설계하는 일

이 변화는 어느 한 사람의 결단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작가가 무엇을 쓰는지, 편집자가 무엇을 선택하는지, 서점이 어떻게 배치하는지, 출판사가 어떤 목소리를 기획하는지. 그리고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책을 집어 드는지. 이 선택들이 겹쳐지면서 독서 지형이 만들어지고, 그 지형이 다시 다음 선택에 영향을 준다.


독자 다양성의 회복은 숫자를 채우는 일이 아니다. 문학과 출판이 어떤 인간 경험을 중심에 두고 있는지를 다시 묻는 과정이다. 연령과 신체, 직업과 관심사, 보편성이라는 다양한 변수들을 독자 지형 안에 포함시키지 않으면, 출판은 특정 프리즘을 통해서만 세상을 쓰고 읽게 된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채로, 조용히. 다양성을 회복하는 일은, 독자가 누구인지를 진지하게 묻는 것에서 시작한다. 어떤 조건에서 살고 있는지, 무엇이 읽고 싶은지, 무엇이 지금 그들을 책에서 멀어지게 하는지. 바다에 누가 들어올 수 있는지를 먼저 물어야, 더 넓은 바다를 만들 수 있다.


2026.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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