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식가 남편과 살고 있다. 입맛의 기준이 머리 끝에 달려서 어지간한 맛에는 크게 감동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음식이 분명하고 싫은 맛은 장모님 밥상이라도 손도 데지 않는다.
결혼하고 한동안 외국에서 근무하던 남편에게 물었다.
"집에 오면 가장 먹고 싶은 게 뭐야"
"묵은지 넣고 푹~ 끓인 고등어조림"
자취 경력만 이십 년이 가까웠다. 웬만한 음식은 레시피를 찾아보지 않아도 만들 줄 알았다. 생선조림은 자주 먹은 음식이라 문제없었다. 남편에게 인생 고등어조림을 만들어 줘야지 생각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후 양가 인사만 드리고 남편은 외국의 근무지로 돌아갔다. 밥다운 밥을 차려줄 기회가 거의 없었다. 남편의 휴가 동안 음식 솜씨 좋은 와이프의 현란한 요리들을 선보일 생각에 설렜다.
드디어 남편이 휴가 나오는 날이었다. 마트에 가서 싱싱하고 두툼한 고등어를 샀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엄마표 묵은지는 진작부터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간 마늘에 고추장, 굵은 고춧가루, 간장, 맛술, 양파를 갈아 넣고 양념장도 기가 막히게 만들었다. 이제 이 모든 재료를 냄비에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된다.
남편이 도착할 시간에 맞추어 찰지게 밥을 지었다. 밑반찬도 몇 가지 만들었다. 대망의 고등어조림은 이제 막 가스레인지 위에서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때마침 남편이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던 남편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이게 무슨 냄새야?"
"고등어조림 먹고 싶댔잖아~"
"냄새 죽이네~~ 비린내 제거는 잘했지?"
"응? 그럼!!
비린내 제거라니. 생각지 못한 대화의 전개에 약간 당황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태어나 먹어본 수많은 생선조림에서 비린내가 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식탁에 마주 앉았다. 윤기 흐르는 쌀밥, 나물 반찬들, 그리고 고등어조림.
남편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숟가락을 고등어조림에 푹 담갔다. 국물부터 한 입 떠먹은 후 아무런 미동 없이 쌀밥 한 숟가락 가득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맛있지? 반응이 왜 그래? 설마 맛없어?"
"맛은 있는데 비려"
"정말? 난 아무렇지 않은데"
"이게 아무렇지 않다고? 엄청 비려."
남편은 생선 비린내에 극도로 예민한 사람이었다. 생선이 비리건, 담백하건 그 모든 맛과 풍미를 좋아한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미각이었다. 그날 내 남편에 대해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남자는 생선을 안 좋아한다. 정확히는 비린맛에 치를 떤다.
이날 이후 남편은 내 음식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밥상에 생선 꼬리라도 보일라 치면 비린내 제거는 몇 단계로 했는지 물었다. 쌀뜨물에 씻고, 맛술을 넣고, 마늘을 팍팍 넣어야 겨우 몇 숟갈 떴다. 요리를 할 때마다 내 요리에 대한 자존심에도 스크레치가 났다. 까짓 거 마음 상할 바엔 평생 생선조림은 안 해 먹겠다 선언을 해버렸다.
시어머님 요리 솜씨는 아들을 까식가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냥 보기에는 소금 넣고 참기름 넣고 무친 나물이 어쩜 그렇게 향긋하고 풍미가 깊은지 비법을 알 수가 없다. 시댁에 갈 때마다 선보이는 온갖 국과 김치들은 밥 한 공기가 줄어드는 것이 늘 아쉬울 정도다. 시어머님 표 튀김은 얼마나 바삭하고 고소했는지 모른다. 신발 빼고는 온갖 재료들을 준비해서 튀겨주신다. 여름에는 방아잎, 고구마, 깻잎, 감자, 겨울에는 막 자라나는 냉이까지.
이번 설에도 집안 가득 향긋한 튀김 냄새로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새로운 재료들을 튀기고 맛보고 하는 동안 남편이 주방으로 슬그머니 다가왔다. 어머님과 나는 한참 튀김옷을 입히고 뜨거운 기름에 빠트리는 중이었다.
"엄마, 냉이 튀김 죽이네~"
"맛있지-"
"와~ 끝장나네~~"
"나중에 냉이 좀 싸줄 게 된장국 끓여 먹어라-"
"어~ 우리 마누라 냉이 된장국 잘한다"
어라? 어머님 앞에서 내 음식 솜씨를 칭찬하고 있다. 까식가 내 남편이. 시어머님 앞이라 몸을 낮춰야 했지만 속으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까식가 남편의 와이프 4년 만에 드디어 음식 솜씨 인정을 받는구나. 그동안 온갖 재료의 비린내와 싸우느라, 재료 본연의 깊은 맛을 찾느라, 내 남편의 음식 취향을 파악하느라 쏟아부은 시간과 상처 난 자존심이 보상받는 것만 같았다.
그 어떤 음식 서바이벌 프로그램보다 스릴 넘쳤던 4년의 날들이 스쳐갔다. 고등어조림의 상처도 떠올랐다. 밥 먹다가 부부싸움까지 한 날도 있었다. 내 남편, 내 아이 입에 맛있는 음식 먹이고 싶은 아내 마음, 엄마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 날 그랬다.
앞으로의 무수한 날 우리 세 식구는 내가 만들어 낸 온갖 음식들을 마주할 것이다. 이제 예선을 통과한 도전자의 자세로 내 식탁의 시그니처 메뉴들을 보여 줄 테다. 남편의 미각 기준이 우리 엄마에서 내 와이프로 바뀌는 그 날까지. 시어머님의 듣도 보도 못한 도전적인 요리들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