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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Feb 02. 2020

다시 영양제를 챙겨 먹기 시작했다.

나와 내 직장 동료들은 약쟁이였다. 출근하자마자 유산균 한 알, 오전 간식을 먹고 나면 피로 해소를 위한 밀크시슬, 비타민C, 눈 건강에 좋은 루테인을 먹었다. 그 외에도 오메가 3, 프로폴리스, 달맞이꽃 종자유를 먹었다. 우리 모두 삼십 대 중반이었다. 우리의 건강은 스스로 챙기자며 서로 효과가 있었던 영양제를 추천하기도 했다. 드라마 이야기보다 영양제 이야기를 더 자주 했다.


영양제를 꼬박꼬박 챙겨 먹어서인지 거친 직장생활도 그럭저럭 견뎌냈다. 야근을 해도, 굵직한 행사들을 쳐내는 것도 체력이 받쳐줘야 가능했기 때문이다. 약은 영양제만 가득한 게 아니었다. 책상 서랍 하나에 영양제를 채우고 두통약, 소화제 같은 상비약들도 빼곡했다.


그 무렵엔 1년이 넘게 원인 모를 두통이 이어지고 있었다. 가방에는 부적처럼 타이레놀이 들어있었고 어느 날 두통약이 떨어지면 불안하기까지 했다. 이런 생활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한의원을 찾았다. 침이라도 맞으면 머리가 개운할 것만 같았다. 한의사 선생님은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잠은 충분히 자나요?"

"네다섯 시간 정도 자요."


"식사는 잘 챙겨 드시나요?"

"아침은 안 먹고 점심 저녁은 먹어요. 영양제도 꼭 챙겨 먹고요."


"운동은 어떻게 하나요?"

"일주일에 삼일 정도 달리기를 해요."


"두통을 잠시 멈추려 하지 말고 생활을 조금만 바꿔보세요."


한의사 선생님의 처방은 이랬다. 밤 열한 시 전에는 무조건 잘 것. 채소를 지금보다 더 먹을 것, 땀을 덜 흘리는 실내 운동이나 수영을 할 것. 그리고 영양제를 끊을 것.


막상 듣고 보니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잠도, 운동도 마음먹으면 못할 것이 없었다. 영양제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술이나 담배처럼 건강을 해치는 것도 아닌데 끊으라는 표현에 내가 그동안 잘못한 건가 괜히 자책도 했다.


진료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왔다. 책상 서랍 한 칸을 가득 채운 약통들을 모조리 상자 하나에 옮겨 담았다. 박스테이프로 여러 겹 상자를 감아 책상 아래에 두었다. 이별은 뭉그적 거리지 않고 단호해야 한다. 마음은 단단히 먹었어도 시간만 되면 습관적으로 약통이 들었던 서랍을 열곤 했다. 한동안 그랬다.


지긋지긋한 두통에 시달려 본 사람이라면 안다. 얼마나 벗어나고 싶은지. 두통 없이 맑은 머리로 살던 때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의 권유대로 잠자는 시간도 식습관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채소 위주로 먹으려니 마트에 갈 때마다 살 게 별로 없어서 서글프기도 했다. 마트의 코너들을 돌며 해 먹을 요리를 떠올리고 카트를 채우는 즐거움을 포기해야 했다. 필라테스를 본격적으로 접한 시기도 이때이다.


이렇게 한다고 정말 두통이 사라질까 의심이 되기도 했다. 핸드백에 늘 넣어 다녔던 두통약은 버리지 않고 계속 가지고 다녔다.


두통이 어느 날부터 사라졌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 날 가방 주머니를 뒤지다 나온 두통약을 보고 먹지 않은 지가 한 달도 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게 영양제와 두통약까지 온갖 약들과 미련 없이 이별했다.



올 겨울은 유난히 감기를 오래 앓았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날을 손꼽을 정도이다. 면역력이 바닥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위염에 사라졌던 두통까지 스멀스멀 되살아났다. 신종 바이러스까지 위협하는 날들이라 불안함이 커졌다.


한 번 약쟁이가 다시 약쟁이로 돌아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다시 싱크대 한편을 약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엔 가득은 아니다. 우선 비타민C와 유산균만 챙겨 먹기로 한다. 나머지는 식습관에서 개선할 것이 없는지 돌아보기로 했다. 세 식구가 아침에 눈 떠 거실로 모이면 나란히 앉아 각자의 영양제를 챙겨 먹는다. 두려운 날들을 건강히 버티길 바라는 우리만의 세리머니처럼. 예전처럼 영양제에만 매달리지는 않을 것이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건강을 지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얼른 겨울이 지났으면 좋겠다.


(C)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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