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채소는 안 먹는데?

율의 성장 보고서_식습관 편

by 우비

율이의 식사시간에는 고도의 심리전이 펼쳐진다. 아이를 식사 의자에 앉히는 것이 첫 번째 임무이다. 최대한 담담하게 ‘밥 먹자~’ 외친 후 율이를 슬쩍 쳐다본다. 자동차 놀이에 푹 빠져 밥에 관심이 아예 없다. 엄마 말은 들었지만 못 들은 척 연기도 제법이다. 지금은 밥보다 재미있는 빠방 놀이를 멈추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더는 율이를 부르지 않고 남편과 내가 먼저 밥을 먹는다. 오늘 요리가 너무 맛있다고 신나게 떠들며 율이 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척한다. 그제야 율이는 쪼르르 달려온다. 엄마 아빠의 관심 아래 있고 싶은 이유이다.


“ 밥 먹을 거야?”

“ 응!”


식사 의자에 앉히는 것은 일단 성공이다. 접시 위에 담긴 음식들을 쓱 훑어보며 가장 좋아하는 생선부터 먹기 시작한다. 생선 접시를 바닥까지 쓱쓱 핥아먹고 난 후 소시지를 집어 먹는다. 소시지 접시도 바닥난다. 다음은 밥이다. 숟가락으로 몇 번 열심히 떠보다 이미 어느 정도 식은 밥이 잘 떠지지 않자 그만 먹겠다며 낑낑댄다.


율, 아직 음식이 많이 남았어. 콩나물이랑, 호박볶음도 있네~~

싫어 싫어~~~


율이는 양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강력하게 안 먹겠다는 의사표현을 한다. 나물이랑 밥이랑 같이 먹으면 얼마나 고소하고 맛있는지 설명하며 먹여보려 애써도 더 강력히 버티며 밀어낸다. 오늘도 결국 편식이다.


휴우.



겨울이면 엄마는 곰탕을 한 솥씩 끓였다. 곰탕 끓이는 날에는 온 집안에 진득한 사골 냄새가 배였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깊숙한 냄비에 네 식구가 일주일은 거뜬히 먹고도 남을 만큼의 양이었다. 나는 곰탕을 끓이는 겨울이 싫었다. 달지도 짜지도 않은 허여멀금한 국에 아무 맛도 느낄 수가 없었다. 상 위에는 일주일 내내 곰탕과 깍두기, 그리고 몇 가지나물반찬이 전부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럴 때면 식사 시간마다 나는 늘 뾰료퉁 해 있었다. 곰탕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한 숟가락이라도 먹어 보라며 엄마는 애가 탔지만 나는 극구 먹기를 거부했다. 곰탕을 안 먹는 내 입맛에 맞추느라 엄마는 겨울마다 국을 두 가지씩 끓이곤 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로서 아이가 성장해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치가 많아지는 것을 볼 때마다 뭉클했다. 그동안 애썼던 순간들에 대한 보상이라 여겼다. 하나씩 해 내는 아이가 대견했다. 율이는 이유식을 거치며 특별한 어려움 없이 대부분의 재료들을 잘 소화하고 즐겁게 먹었다. 음식에 있어 어려움이 없었기에 늘 다행이라 여겼다. 그런데 18개월이 되면서 강하게 거부하는 재료들이 생겼다. 토마토, 브로콜리, 호박, 당근…….


밥을 먹일 때마다 어떻게 하면 채소 한 조각을 더 먹일까 작전을 세웠다. 감쪽 같이 밥 속에 당근 한 조각을 파묻어 두기도 하고, 밥이 입에 들어간 후 입을 오물거리기 전 시간 차를 틈 타 입속에 쏙 밀어 넣기도 했다. 번번이 실패였다. 식사 시간이 돌아오는 것이 근심이 되었다.





그러던 중 아이의 기질 유형에 대한 강의를 들을 기회가 생겼다. 유아의 기질을 주요하게 세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했다. 순한 아동(easy child), 까다로운 아동(difficulty child), 느린 아동(slow child)이 그것이다..


순한 아동은 말 그대로 어떤 환경이나 번화, 사물을 받아들일 때 큰 거부감이 없이 적응을 잘하는 아이들이다. 예민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고 유아의 40% 정도가 순한 아동에 속한다고 한다. 식습관, 배변활동, 수면이 대체로 규칙적이고 부정적 정서를 덜 보인다.


까다로운 아동은 전체의 10% 정도를 차지한다. 이 유형은 일상생활이 불규칙해 예측하기가 어렵다. 많이 울기도 하고 부정적인 정서가 있다. 환경이나 변화 등 아이에게 주어진 요인에 대해 예민하다는 말이다. 특히 식습관에 있어서는 맛에 예민할 수도 있고 촉감에 예민할 수도 있다. 촉감에 예민한 아이라면 볶아서 덜 부드러운 채소는 먹지 않지만 삶아서 으깬 채소는 먹기도 한다.


느린 아동은 순한 아동과 까다로운 아동의 중간 반응을 보이는데 전체 아동의 15% 정도가 이에 속한다고 한다. 환경에 대한 반응이 느려 처음에는 예민한 것처럼 보이지만 천천히 습득하며 적응해 까다로운 아동에 비해 부정적인 정서가 많지 않다고 한다.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지만 육아를 해본 엄마라면 안다. 모든 아이가 이 세 부류에 딱딱 들어맞지는 않는다는 것을. 아이의 취향은 케바케(case by case)로 모두 제각각이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 세 가지 기질이 어느 한쪽이 조금 편향된 채로 뒤섞여 있다.


율이는 식습관에 있어서 만큼은 현재는 ‘까다로운 아동’에 가깝구나 라는 걸 알게 되었다. 특히나 딱딱한 촉감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담백하고 부드러운 생선이나 소시지는 아주 좋아하고 그렇지 못한 채소는 먹으려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안 먹일 수도 없는 것이 엄마의 고민이다.



마흔 살이 된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곰탕이다. 어린 시절에는 입에도 안 댔으면서 지금은 즐겨 먹는다. 오랜 자취생활 동안 먹는 게 부실해 몸보신이 좀 필요하다 싶으면 충무로의 유명하다는 곰탕집에 들르곤 했다. 어른이 되어서는 어릴 때 먹기 싫던 음식이라는 건 생각하지도 않고 맛있게 먹는다. 율이의 편식이 나의 편식에 대한 기억들을 불러왔다.



나는 기다려주는 중이다. 채소를 반드시 생채소로 먹지 않는다면 주스나 과일로도 대체할 수 있다. 즐겁게 먹는 것이 모든 것을 먹는 것보다 중요하다. 식사시간 좋아하는 생선 반찬을 보고 즐거웠던 기억이 쌓여 밥 먹는 시간이 좋아질 것이다. 어쩌면 커서도 채소는 싫어하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이 채소 싫어한다고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기에. 내 아이의 행동 앞에서 또 하나 엄마 욕심을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