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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IGE Nov 09. 2021

애개육아 결국 무리를 하고 말았다.

스쓰일 001

스쓰일은, 스마트폰으로 쓰는 작은 일기를 말한다.

블로그나 글을 써서 포스팅하는 일은 늘 노트북으로 했다. 이렇게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는 것은 무언가 정성이 떨어지기도 하고 글을 글답게 쓰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가급적 피하려고 했는데. 저녁 8시까지 독박 육아 52일 된 아이와 산책만 기다리는 반려견을 키우다 보니 좀처럼 시간이 나질 않았다. 모유수유를 하고 있어 남편에게 아이를 온전히 맡길 수 없었고 또 남편에게 보보(반려견 이름) 산책을 맡기면 나는 바깥을 나갈 일이 전혀 없어져 주로 내가 산책을 맡았다.

아이를 낳고 난 삶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그려질 만큼 똑같다. 수유를 하고 아이를 트림 시키고 기저귀 갈고 재우고 아주 조금 놀아주고 그 사이 보보 밥을 챙겨주고 지루할까 15분 정도 뜯어먹는 간식 노즈워크를 해주고 부랴부랴 청소기를 돌리고 대충 밥을 먹으면 금방 저녁 8시가 된다. 저녁 준비는 반찬부터 다 남편이 해주면 먹고 아이를 씻고 밤수하면 저녁 11시.


저녁 11시가 지나면 나랑 보보의 산책이 시작된다. 조리원에서 퇴소하고 한 번도 빠짐없이 산책을 했다. 다들 아이 낳은 산모가 이렇게 다녀도 되냐고 걱정했지만 내가 보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이 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전처럼 하루에 세 번씩 나가진 못해도 한 번은 꼭 나가야지, 강박처럼 생각했다. 초반에는 산책을 짧게 나갔다 와도 아이가 많이 울고 바로 모유수유를 해야 했기에 나도 스트레스가 많았다. 보보는 오래도록 집에서 나랑 있다가 나간 짧은 1시간일 텐데, 이것도 마음 조리며 해야 하나 싶어 분유로 갈아타야 하나 싶었다.

이제는 아이의 패턴을 읽고 남편과 시간 체크를 잘해서 저녁 11시 이후 산책을 새벽 1시까지 했던 날도 있었다. 이런 날들이 2주가 넘어가니 몸에 무리가 왔다.


새벽 수유를 하려고 침대에서 일어나는데 아킬레스건이 찌릿하면서 세 번째 발가락이 아프더니 제대로 못 걸을 만큼 아파왔다. 절뚝거리면서 아이를 돌보고 남편이 보보 저녁 산책을 대신 나가는 것을 보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매일 남편한테 육아는 장기전이라고 말했으면서 내 몸하나 제대로 챙기지 않고 육아를 하려고 했다니. 보보를 챙기는 일도, 아이를 돌보는 일도 내가 아프지 않아야 가능했다. 미룰 수도 없는 일이기도 하고.

엊그제부터 보보에게 양해를 구하고(?) 30여분 천천히 걷는 산책을 했다. 곧 아이가 크면 다시 1일 2산책을 할 거라고 속삭이면서. 애개육아 둘 다 잡고 싶다는 마음이 무언가 조바심을 끌어냈던 것 같다. 장기전인데 매일 산책시키는 것만으로도 잘하고 있다고 마음먹어야 하는데 매일 한번밖에 산책시키지 못한다고 아이가 생기고 그전과 달라졌다고 나를 몰아세우는 일을 멈추려고 한다. 작년에는 보보에게 집중했고 아직은 내 손이 더 필요한 아이에게 당분간은 집중하자고. 물론, 보보의 산책은 매일이지만 내 컨디션을 챙기고 시간에 집착하지 않기로 한다.

뚝딱이 발싸개 하나는 어디로 갓님.

육아가 처음이라,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도 강아지를 키우는 것도 애개육아도 처음이라서. 감정에 대해 적은 글들이 스마트폰 메모장에 쌓여있다. 제대로 하겠다는 내 강박이 오히려 시작을 망가뜨리는 것 같아서 여유가 생기기 전까지는 이렇게 스마트폰으로 쓰려고 한다. 감정은 지나가면 왜곡돼버리니까 짧게라도 기록하는 것이 좋다. 나중에 읽어보면 재미있다.

새벽 수유하고 새벽 4시에 쓰는 일기. 내 감정을 내뱉는 공간으로 어떤 글들을 늘어놓을지 기대된다. 하아, 출산 기록부터 차근차근 쓰고 싶었는데 인생은 늘 그렇듯 예상한 대로 흐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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