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때 조선도 같았을까?

진영논리에 갇인 무서운 경고

by 유블리안


[경고: 패턴 일치율 94.7%]


​모니터 중앙에 뜬 붉은색 팝업창. 그것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500년 묵은 경고음의 재림이었다. 희성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다온은 손으로 입을 막았다.


​"잠깐만요, 여보."


​다온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조선어에 능통한 그녀는 텍스트의 표면 너머, 그 행간에 숨은 권력을 읽어냈다.


​"1591년의 저 문장... 저건 '동인', 즉 당시 '집권 세력'의 논리예요. 그런데 2025년의 이 문장... 이건 지금 '진보 정부', 즉 현재 '집권 세력'의 브리핑이잖아요."


​희성의 머릿속이 차갑게 식었다. 그렇다. 이것은 야당의 비판이나 재야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500년 전 나라를 위기로 몰아넣었던 '경고 묵살'의 주체와, 지금 '위협 축소'를 말하는 주체가, '집권 세력'이라는 점에서 정확히 일치했다.


​"그때 조선도... 이랬을까?"


​희성이 텅 빈 눈으로 모니터를 보며 중얼거렸다.


​"경고를 하는 자는 '분란'을 일으키는 자가 되고... 위협을 축소하는 자는 '신중'한 자가 되는... 이 지독한 알고리즘 속에서, 류성룡 대감도... 혼자였을까?"

​"이걸 알려야 해요." 다온이 결연하게 말했다. "하지만 어떻게? 내 칼럼에 쓰면 '정부 비판' 프레임에 갇혀요. '흥미로운 역사학자의 음모론' 정도로 소비되고 말 거예요."


​희성의 시선이 스마트폰으로 향했다. '김민수'와 '류시인'.
​"김민수 의원?" 다온이 물었다. "그는 보수 야당이고, '무기'를 원했잖아요. 이 데이터는 현 정부를 공격할 완벽한 무기예요."


​"아니." 희성이 즉각 고개를 저었다. "그게 바로 '함정'이야."


​그는 '특징 4: 진영 논리'를 가리켰다.


​"이 데이터를 김민수 의원에게 주는 순간, 이건 '국가적 경고'가 아니라 '보수 야당의 정치 공세'가 돼. 그럼 진보 정부와 지지층은? '정치적 의도를 가진 비난'이라며 더 강력하게 이 경고 자체를 묵살할 거야. 500년 전 동인 강경파가 '서인의 당파 싸움'이라며 황윤길의 보고를 묵살했듯이. 우린 알고리즘에 정확히 먹이를 주는 꼴이 돼."


​"그럼..." 다온이 망설였다. "류시인 작가는요? 당신 종친이잖아요."


​희성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류시인. 같은 풍산 류씨, 서애 류성룡의 후손. 하지만 그는 현 정부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핵심 진보 논객이었다.


​"그래. 그 사람을 만나야겠어."


​희성이 결심했다.


​"김민수 의원은 '적'이야. 적을 설득하는 것보다 어려운 게 뭔지 알아? '아군'을 설득하는 거야. 특히 그 아군이... 시스템의 일부일 땐."


​"여보."


​"류시인 형님은... 적어도 '조상'의 경고는 무시하지 못할 거야. 그는 이념가이기 이전에, 우리 '종친'이니까."

​류시인 작가의 서재는 북촌의 연구실과는 다른 종류의 지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희성은 태블릿 PC를 꺼내 <프로젝트 징비>의 결과를 보여 주었다. 나란히 뜬 1591년의 텍스트와 2025년의 정부 브리핑. 그리고 94.7%의 일치율.


​류시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는 안경을 고쳐 쓰며 미간을 찌푸렸다.


​"희성아." 그가 입을 열었다. "이거... 대단한 발견이다. 정말로. 역사학자로서의 네 집념에 경의를 표한다."


​"형님. 이건 그냥 '발견'이 아닙니다. '경고'입니다."


​류시인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 웃음은 희성이 기대했던 '충격'이나 '공감'이 아니었다.


​"희성아. 넌 학자고, 난 논객이다. 넌 '패턴'을 보지만, 난 '맥락'을 본다."


​"맥락이라뇨?"


​"1591년의 동인은 '무능'과 '당파심'으로 경고를 묵살했지. 맞아. 하지만 2025년의 우리 정부는 달라. 이건 '묵살'이 아니라 '신중한 외교적 관리'다."


​"94.7% 똑같은 단어와 논리를 쓰는데요?"


희성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단어가 같다고 본질이 같은 건 아니야!"


류시인의 목소리도 커졌다.


"지금 이 시점에 누가 위기를 부추기고 있지? 저들 보수 야당(김민수 측)이야! 그들은 어떻게든 현 정부를 흔들려고 안보 위기를 조장하고 있어.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신중론'을 펴는 건... 500년 전의 '묵살'이 아니라, '책임 있는 자세'라고!"


​희성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위협 축소'라는 패턴이 '신중론'과 '책임'이라는 단어로 완벽하게 포장되고 있었다. 류시인은 알고리즘 자체를 보지 못하고, 알고리즘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형님." 희성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만약... 만약에라도, 형님이 틀리고 내 AI가 맞았다면요? 이 '신중론'이 500년 전과 똑같은 '묵살'의 시작이라면요?"


​류시인은 차가운 눈으로 희성을 바라봤다. 이제 그는 더 이상 희성을 '종친 동생'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더더욱, 이 데이터는 위험하다."


​"네?"


​"류희성씨." 류시인의 호칭이 바뀌었다. "자네의 이 순수한 연구 결과가, 지금 이 시점에 공개되면 어떻게 될 것 같나? 저들 보수 야당과 김민수 의원에게 완벽한 '공격의 빌미'를 주게 될 거야. 자네는... 자네의 의도와 상관없이 '현 정부를 흔드는 적들의 무기'를 만들어준 셈이 된다고."

​연구실로 돌아온 희성은 망연자실했다. 다온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맞았다.


​"어떻게 됐어요?"


​희성은 대답 대신 모니터의 팝업창을 바라봤다.


[경고: 패턴 일치율 94.7%]


그는 류시인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자네는 적들의 무기를 만들어준 셈이 된다고.'


​"그랬구나..." 희성이 허탈하게 웃었다.


​"류시인 형님은... 날더러 '적'이 될 수 있다고 했어. '진영'이 다르다는 이유로."


​"세상에..."


​"그때 조선도... 똑같았을 거야. 류성룡 대감은 '서인'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속한 '동인' 내부의 강경파들에게 '왜 서인에게 빌미를 주느냐'는 비난을 받으며 고립됐던 거야."


​희성은 깨달았다.


<프로젝트 징비>가 찾아낸 진짜 적은 '정부'나 '야당'이 아니었다.


​"우리가 싸워야 할 건... 진보도 보수도 아니었어."


​희성의 눈이 다시 모니터의 알고리즘 코드를 향했다.


​"사람의 머릿속에 깊이 뿌리 박힌 이 '실패의 알고리즘' 그 자체였어. '나와 다른 편의 경고는 무조건 묵살한다'는... 이 지독한 바이러스."


​그의 손이 키보드 위로 올라갔다.


첫 번째 경고는 가장 믿었던 아군이자 혈연에게 처참히 묵살당했다.


이제 '설득'은 끝났다. ​진정 국가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그의 표정은 결기로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