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이 내 마음을 태우지 않기를

나를 미루는 습관과 작별하고, 당신과 나 사이의 보폭을 맞추는 법

by 유블리안


1. 사무실의 온도 조절기가 되어버린 나



​사무실에서 대화가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나는 항상 먼저 말을 아끼는 편이었다.

누가 서운했는지, 어디서부터 업무가 꼬였는지 따지다 보면

이야기는 길어지고 퇴근은 늦어졌다.



그 사이 사무실 공기는 차갑게 식었고,

책상 위 서류들만 덩그러니 자리를 지켰다.

그럴 때면 나는 본능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제가 오해했나 봐요.” “그냥 넘어가죠.”



​동료니까,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직장 안에서 늘 남에게 맞추는 사람이었다.



누군가 피곤해 보이면 내 이야기는 접어두었고,

분위기가 무거워지면 일부러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갈등이 생기는 게 싫었다기보다, 시끄러워질 때

내 마음이 불안해지는 게 더 싫었다.



티 나지 않게, 조용히, 분위기가 험악해지지 않도록

나를 태우며 버티는 ‘온도 조절기’ 같은 쪽이었다.




​2. 배려라는 이름으로 깎아낸 마음의 모서리



​처음에는 그것이 배려라고 믿었다.

동료들이 편해야 일도 잘 풀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에게 맞추는 습관은 생각보다

나를 조금씩 갉아먹었다.



“괜찮아요”라는 말은 습관이 되었고,

하고 싶은 말은 목구멍 뒤로 삼켰다.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 참는 마음이,

오히려 내 마음의 모서리를 자꾸만 깎아내는

칼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상한 점은, 맞추면 맞출수록

더 잘 맞춰야 한다는 압박이 생겼다는 것이다.


한 번은 배려였고, 두 번은 습관이었지만,

세 번부터는 당연한 의무가 되었다.



직장은 오래된 관계인만큼 역할도 고착되기 쉬웠다.

누군가는 불을 붙이고, 누군가는 불을 끄고,

나는 늘 중간에서 감정이 튀기 전에 누르는 역할을 맡았다.

팀은 무사해졌지만, 정작 내 마음은 늘 뒷전으로 밀려났다.



​3. 이해받고 싶었을 뿐인데, 짐이 하나 더 늘었다



​참다못해 이런 내 답답함을 블로그에

조심스럽게 적어 올린 적이 있었다.

나를 좀 알아달라는 작은 신호였고,

이 관계가 조금은 더 건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그 글을 본 한 동료는 내 아픔을 살피기보다,

본인이 예전에 나 때문에 얼마나 상처받았었는지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당신만 힘든 게 아니라, 나도 그때 이런 일들로 힘들었어요.”



알고 보니 블로그 유블리안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유일한 직원 한 명이 내 글을 보고 동료들에게 공유를 해준 것이었다.



​돌아온 그 말들에 내 용기는 힘을 잃었다.

나는 다시 상대방의 상처를 달래줘야 하는

위치가 되어버렸다.



결국 내 마음은 또다시 갈 곳을 잃었고,

그 사실은 나에게 더 큰 상처가 되어 돌아왔다.

내가 마음을 꺼내놓아도 상대방은

본인의 상처를 먼저 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4. 나를 미루지 않고, 같은 속도로 걷는 연습



​지금 돌아보니 그 시간이 내게 남긴 것은

‘배려하는 기술’이 아니라 ‘나를 뒷전으로 미루는 습관’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습관을 조금씩 바꿔보려 한다.

다정함이 내 마음을 다 태워버리지 않도록 아주 작은 연습을 시작했다.



상대에게 맞추기 전에 내 마음을 한 번 더 확인하는 것이다.



​“직장이니까 참아야지”라고 생각하기 전에

“나는 지금 어떤 기분이지?”라고 먼저 묻는다.

그리고 아주 짧은 문장이라도 내 진심을 덧붙여 본다.



“괜찮아요” 대신 “그 말씀은 조금 무거웠어요”라고 말하기.

“아무거나 좋아요” 대신 “저는 이게 더 좋네요”라고

솔직하게 표현해 보는 일이다.



​동료와의 대화는 서로의 가장 오래된 사회적 습관이 드러나는 자리다.



나는 그 습관이 일방적인 희생이 아닌,

서로의 보폭을 맞추는 진짜 배려가 되길 바란다.



사무실 분위기가 평온한 것만큼이나

내 마음속이 평온한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제야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나와 너 사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