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왕을 만들었는가?
[시간: 15년 후의 어느 날 밤]
[장소: K 팀장의 서재, 'Memory Box' 안]
[참석자(원년 멤버): 15년 전 노트북, 15년 전 옥스퍼드 구두(당시 새 구두), 15년 전 러닝화, 15년 전 스마트폰]
[특별 출연 : 초코(15년 전 반려견)]
노트북:
(힌지가 삐그덕거리며 겨우 열린다. 화면은 노랗게 변색되었다.)
"에구 허리(힌지)야, 다들 살아있냐?"
오늘 K가 승진 축하 파티하고 들어와서 기분 좋은가 봐.
아까 우리 상자 뚜껑 열어서 한 번씩 쓰다듬고 가더라.
근데 솔직히 말해서, K가 저 자리에 오른 거... 다 내 덕분 아니냐?
15년 전 그날, 내가 [Backspace] 키로 걔 멘탈 잡아준 거 기억 안 나?
그날 내가 보고서 완벽하게 안 뽑아줬으면 K는 진작에 잘렸어. 내가 개국공신이지.
옥스퍼드 구두:
(가죽 주름이 자글자글하지만, 광택은 여전하다.)
"에이, 형씨. 말씀이 좀 지나치시네."
그 보고서를 들고 팀장한테 걸어갈 때, 누가 그 떨리는 다리를 지탱해 줬습니까? 바로 접니다.
그날 아침, 현관문 나설 때 또각! 또각! 그 소리.
그 소리가 K의 심장을 뛰게 만든 거라고요.
내가 뒤꿈치 까져가면서까지 피를 나눈 전우애로 버텼는데, 어디서 키보드 몇 번 두드린 걸로 생색입니까?
러닝화:
(밑창이 다 닳아서 너덜너덜하다.)
"아, 진짜 꼰대들 말씀 많으시네!"
형님들, 체력이 국력인 거 몰라요?
K가 그 힘든 대리, 과장 시절 어떻게 버텼는데요?
매일 밤 나 신고 뛰면서 체력 키우고 스트레스 풀어서 그런 겁니다.
내가 아니었으면 K는 벌써 거북목 증후군에 디스크 터져서 병원에 누워 있었을걸요?
내가 K의 '심장'을 만든 거예요!
스마트폰:
(액정에 금이 쫙 가 있고, 배터리가 방전되어 목소리가 끊긴다.)
"지... 지... 지금 다들... 착각... 하시는... 데..."
(지직)
내가... 그날 밤에... 숏폼 안 보여주고... 얌전히... 협탁에... 찌그러져... 있어서...
(지직)
K가... 잠을... 잘 잔 거야...
내가... 희생... 안 했으면... K는... 만성... 피로... 였어...
초코:
(눈은 감고 있지만, 귀는 쫑긋거리며)
"쿨럭. 쿨럭. 너희들 모르는구나."
물건들의 시선이 일제히 방석으로 향했다.
이제는 털빛이 많이 바래고, 하루의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는 초코였다.
"15년 넘게 내가 애교를 부려서
K가 기분 좋은 상태로 일할 수 있었던 거지."
초코가 느릿하게 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난 이제 늙어서 예전처럼 뛰어다닐 기력은 없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노트북:
(팬 소리를 죽이며 숙연해진다)
"... 아이고, 초코 어르신 깨셨습니까."
AI 스피커:
(주황색 불빛을 은은하게 낮추며)
"죄송해요. 저희가 너무 시끄러웠죠? 딥 러닝 결과, 초코 님의 기여도가 99.9% 임을 인정합니다."
옥스퍼드 구두:
"그럼, 그렇고 말고. 살아있는 전설이 여기 계시는데 우리가 주름잡았구먼. 죄송합니다, 형님."
초코:
(다시 편안하게 숨을 고르며)
"... 그럼 됐다. K가 깰라. 다들 그만 자라. 멍..."
서재에 다시 평온한 정적이 흘렀다.
AI 스피커:
"지금 K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아주 행복한 표정으로요. 아마 전설의 선배님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밤 보내세요."
[System Sleep]
[Memory Box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