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상상

내가 만약 투명인간이 된다면

by 유블리안


어릴 적 한 번쯤은 이런 상상을 해보지 않았을까요.
아침에 눈을 떴는데, 거울 속에 내가 사라져 있는 하루.
존재는 분명한데 흔적은 없는 상태.
시선도, 평가도, 설명도 필요 없는 시간 말이에요.

만약 그런 하루가 단 하루만 주어진다면,
나는 무엇을 가장 먼저 할까.
생각은 의외로 멀리 가지 않았습니다.
거창한 일보다, 평소 마음속에만 넣어두었던 사소한 장면들이 먼저 떠올랐거든요.


소심한 복수는 늘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다


투명해졌다고 해서 사람이 갑자기 위인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아주 작고 얄미운 장난들이었어요.
악의는 없고, 대신 웃음이 남는 정도의 것들.

매번 내 간식을 아무 말 없이 집어 가는 직장 동료의 모니터 한켠에
“간식 도둑 출몰 지역”이라고 적힌 포스트잇 하나.
범인은 없고, 의심만 공중에 둥둥 떠다니겠죠.

조용한 카페에서는 빨대가 혼자 움직이고,
냅킨이 이유 없이 바닥에 떨어집니다.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잠깐 현실을 의심하겠죠.
그 짧은 혼란이 왠지 모르게 즐거울 것 같습니다.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이어폰 없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도 괜찮겠네요.
박자는 틀려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정체는 미스터리니까요.


들어가지 못했던 공간에, 조용히 앉아본다는 것


투명해진다는 건, 문턱이 사라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가격표와 인파 때문에 늘 멀찍이서만 바라보던 장소들.
그곳에 아무렇지 않게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면요.

문 닫은 미술관에 홀로 들어가
작품 앞에 오래 서 있는 상상을 해봅니다.
누군가의 등 뒤에서 서둘러 봐야 할 이유도 없고,
설명문을 읽다 밀려날 일도 없는 시간.
그저 그림과 나, 둘만 남는 순간이겠죠.

늘 구하지 못했던 콘서트의 정중앙 앞자리,
영화관에서 가장 시야가 좋은 그 한 칸.
팝콘은 공중에 떠 있을 테지만,
그 기이함마저 이날의 일부로 남겨두면 됩니다.

그리고 문득,
이름만 들어왔던 대학교 강의실 맨 앞자리에 앉아
철학이나 우주 이야기를 듣는 장면도 떠오릅니다.
학생도, 수강생도 아니지만
배움에는 그런 구분이 없으니까요.



아무도 나를 보지 않을 때, 가장 나다워지는 순간


투명인간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자유’보다도 ‘무관심’ 일지도 모릅니다.
누가 나를 어떻게 볼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광화문 한복판에서
음악도 없이 막춤을 춰도 좋겠죠.
세상의 중심에서 아무도 나를 중심으로 보지 않는 아이러니.
그게 묘하게 해방감을 줄 것 같아요.

지하철 안에서는 사람들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고 싶습니다.
출근길의 무표정,
약속을 앞둔 설렘,
창밖을 보며 미소 짓는 순간들.
그 안에는 각자의 하루가 조용히 흘러가고 있겠죠.

길고양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오늘은 좀 어땠어?” 하고 말을 걸어보는 것도요.
고양이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향해
고개만 갸웃하겠지만,
그 짧은 교감이면 충분합니다.

물론 현실적인 문제도 따라옵니다.
문을 통과할 때마다 사람과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옷은 투명해지지 않으니
생각보다 민망한 하루가 될지도 모르죠.

그래도 괜찮습니다.
하루쯤은 모든 규칙에서 살짝 벗어나도요.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나는 하루라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투명해진다는 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잠시 내려놓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선과 역할, 이름표 같은 것들로부터요.

그렇다면,
여러분들이라면 어떤 하루를 살고 싶을까요?


보이지 않는 몸으로,
가장 솔직한 마음을 데리고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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