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대표의 오탈자 지옥 탈출 4단계 노하우
27년간 직장 생활을 하며 수많은 기획서와 보고서를 썼지만 '도서출판 카이'의 대표라는 직함을 달고 책을 펴내는 일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무게였다. 특히 원고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마지막 데스킹, 즉 '오탈자 교정'은 그야말로 지독한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요즘은 AI가 글을 써주는 시대라 하지만, 막상 실전에 돌입해 보면 현실은 다르다. 한국어 특유의 변화무쌍한 조사와 복잡한 띄어쓰기 앞에서는 첨단 인공지능도 엉뚱한 현대어 띄어쓰기를 남발하며 헛발질을 하기 일쑤다. 결국 최종 검증은 사람이 할 일인 것이다.
교정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일명 '내 글 완벽주의 저주'에 걸리는 것이다.
출판사를 차리고 첫 출간책인 『조선의 바람이 머무는 동안(세종대왕을 만나다)』는 수십 번의 교정 작업을 거쳐서 탄생한 책이다. (26년 2월 15일 출간 예정)
특히 이 책은 우리가 쉽게 쓸 수 있는 한글(훈민정음)을 만드신 세종대왕님을 모티브로 쓴 것이라 더욱더 맞춤법이나 오탈자에 신경을 썼다. 역사적 배경을 다루다 보니 하나하나 조각을 하듯 깎고 또 다듬어서 탄생한 것이라 이쯤 되면 오탈자는 거의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며칠 뒤 한발 떨어져서 원고를 다시 살펴보니, 사극 특유의 호칭이나 낯선 역사 용어들 사이에서 띄어쓰기가 처참하게 꼬여 있었다. 분명 완벽히 수정했다고 생각했던 문장들이 다음날 열어보면 고스란히 오타로 남겨져 있어서, 내 글과 내 기억력에 배신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오죽했으면 '누가 해킹해서 일부러 바꿔놨나?' 생각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때 뼈저리게 느낀 첫 번째 실전 노하우는 감정을 배제한 기계적인 필터링이다. 내 눈을 믿지 말고, 한글(hwp)이나 워드(doc) 프로그램의 빨간 줄을 일단 걷어낸다. 그 후 한국어 문법의 최고 권위자라고 할 수 있는 '부산대 맞춤법 검사기'나 '네이버 검사기'를 돌려서 2차 필터링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AI는 글을 써 주거나 맞춤법 교정용이 아니라 '문맥 교정 조수'로 써야 한다. 먼저 사람이 읽어 보고 입에서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AI에게 "이 문장이 좀 걸리는데 자연스럽게 연결해 줘." 혹은 "이 단어의 쓰임새를 알려줘."라고 구체적으로 명령을 하게 되면 최고의 편집자가 된다. 대신에 '내용 흐름 자체를 바꾸지 말라'라고 반드시 첨언을 해야 작가의 의도는 해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러운 문장이 탄생한다.
원고를 수십 번 읽다 보면, 뇌가 자동으로 오타를 보정해서 읽어버리는 마법에 빠진다. 글씨 자체가 의미가 아닌 덩어리로 보이기 시작하면 쓰는 치트키가 바로 TTS(텍스트 음성 변환)이다.
예시로 "출판사 대푶로서 작가님의 원고를 꼼꼼히 교정헸다고 생가했습니다."라는 문장이 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쉽게 오타를 찾을 수 있지만 자신이 쓴 글은 뇌가 전체적인 실루엣만 보고 뜻을 이해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놓치고 지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EPUB로 만든 전자책 뷰어(교보문고, 예스24, 밀리의 서재)의 음성 듣기 기능을 통해 들으면 눈으로 보이지 않던 오타들이 귀에 쏙쏙 박히는 마법이 펼쳐진다. 특히 띄어쓰기의 경우 잘못되면 어색하게 들리기 때문에 거의 정확하게 잡아낼 수 있다.
기계와 AI, 그리고 내 눈과 귀까지 동원해 수십 번을 훑어도 책이 세상에 나오면 귀신같이 오타가 몇 개쯤은 어디선가 튀어나온다. 비록 혼자이지만 출판사 대표를 하면서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지난 11월 첫 책 『조선의 바람이 머무는 동안(징비록 편)』을 처음 냈을 때, 나는 작가였고 다른 출판사에서 제안이 들어와서 처음 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는 단 하나의 오타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사명감에 빠지다 보니 정작 글에서 오는 감동과 여운을 온전히 즐길 수 없었다.
첫발을 디딘 것에 대한 뿌듯함과 나 자신을 칭찬하기보다는 오타를 발생시켰다는 자책감에 빠진 것이었다. 내 출판사를 차리고 내가 작가로서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돌아보면 과정이 중요하고 시도했다는 것에 큰 점수를 주는 게 맞는 것이라 생각을 바꾸고 나니, 오히려 책을 만들고 글을 쓰는 것이 더 재미있어졌고 뿌듯한 생각도 들었다.
'도서출판 카이'의 카이가 '바다'를 뜻하듯, 원고에 담긴 작가의 치열한 고민과 땀방울을 넓은 바다처럼 넉넉하게 품어내는 것. 기계처럼 차갑고 완벽한 텍스트를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마음에 닿는 따뜻한 여운을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AI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1인 출판사 대표만의 진짜 데스킹이자 최종 교정의 기술이 아닐까.
의뢰 주신 작가님의 원고를 최선을 다해 책으로 만들어 세상에 내보내는 책임감, 그리고 독자들이 그 따뜻한 글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출판사의 진정한 역할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