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넘긴 자, 시간을 건너리라.
오늘따라 국문학 자료실의 공기는 유독 무거웠다. 정기 보안 점검 때문인지 평소 붉은빛을 깜빡이던 CCTV마저 꺼져 있었다. 회색빛 하늘 아래, 오래된 서적의 묵향(墨香)과 함께 가라앉은 공기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은 유희성의 손가락뿐이었다.
그는 ‘조선시대 문헌 복원 프로젝트’의 마지막 과제, ‘해례본 미공개 초본’의 마지막 장을 판독하고 있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린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성패가 오롯이 그의 손끝에 달려 있었다.
‘… 거의 다 왔어.’
이 프로젝트에 꼬박 3년을 매달렸다. 돌아가신 스승님과의 약속을 지킬 마지막 기회이기도 했다. 화면 속 희미한 글자들이 그의 눈을 통해 비로소 제 뜻을 찾던 그때였다.
"... 이 문장은, 처음 보는군."
희성은 자신이 직접 개발한 고문헌 데이터베이스 연동 앱을 켰다. 그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AI 비서 '해례'의 차분한 음성이 스피커로 흘러나왔다.
"기존 데이터베이스와 99.8% 불일치. 해당 구절은... 기록에 존재하지 않는 문자입니다."
그 순간, 화면 속 글자가 손끝에서 미세하게 진동했다. 단순한 화면 오류가 아니었다. 획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마치 굳게 닫힌 자물쇠가 풀리듯 희미한 빛을 발했다. 이것은 번역이 아니었다. 시공간을 향해 열리는 '관문'이었다.
손에 들린 스마트폰에서 터질 듯한 진동이 울리고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귓가엔 낯선 바람 소리와 함께 단 한 문장이 속삭이듯 박혀 들었다.
“마음을 넘긴 자, 시간을 건너리라.”
1445년 세종 27년, '유희성'이 떨어진 곳은 하필 궁궐 한복판이었다. 낯선 이방인의 갑작스러운 침입으로 궁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지고, 희성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다. 그때, 홀연히 나타난 구세주가 그를 구하는데... 자신을 구해준 그에게서 희성은 정체 모를 낯선 감정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