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

버틴다는 것의 의미

by 유블리안

[작가의 말]


'버틴다'는 말. 어쩐지 처절하고, 때로는 패배감을 머금은 단어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직장 동료들과 술 한잔 기울이며 "그냥 버티는 거지"라고 말할 때, 우리의 얼굴에는 자랑스러움보다 씁쓸한 미소가 먼저 번지곤 합니다. 마치 거센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 바위 하나를 간신히 붙잡고 있는 모습.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버팀'의 이미지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27년이라는 시간을 돌아보며, 저는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버틴다는 것은 결코 소극적인 인내가 아니라, 내 삶을 지키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저항이라고 말입니다.


폭풍우가 몰아칠 때, 나무는 바람과 싸우려 들지 않습니다. 그저 뿌리 깊이 땅을 움켜쥐고 자신의 자리를 꿋꿋이 지켜낼 뿐입니다. 바람이 멎었을 때,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무를 보고 우리는 '살아남았다'라고, '버텨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버팀의 본질입니다. 무언가를 이기기 위함이 아니라, 소중한 것을 잃지 않기 위해 자리를 지키는 것.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지키기 위해 이토록 버티는 것일까요? 그것은 단순히 월급이나 직책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버텨내며 지키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아주 평범한 것들입니다.


매일 아침 습관처럼 마시는 커피 한 잔의 여유, 퇴근 후 나를 반겨주는 가족들의 웃음소리, 휴일의 안락한 휴식, 그리고 '회사원 유블리안'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의 '나'라는 존재의 존엄성입니다. 이 모든 일상이 모여 '나의 삶'이 되기에, 우리는 기꺼이 버팀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사직서를 던지는 것은 순간의 용기일 수 있지만, 나의 삶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루를 더 버텨내는 것은 평생에 걸친 위대한 용기입니다.


그렇게 버텨낸 시간의 끝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상처뿐일까요? 아닙니다. 버텨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지혜와 단단함이 남습니다. 수많은 위기를 넘으며 생긴 마음의 흉터는 훈장이 아니라, 어떤 길로 가야 하고 어떤 길을 피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이 됩니다. 나와 비슷한 아픔을 겪는 후배의 어깨를 진심으로 두드려줄 수 있는 '어른'이 됩니다. 결국 버틴다는 것은, 무수한 시간의 풍파를 견디며 자기 자신이라는 그릇을 더욱 깊고 넓게 만들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를 묵묵히 버티고 있는 당신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의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버텨온 하루하루가 바로 당신의 역사이며, 당신이 지켜낸 삶의 증거입니다. 대기업에서 정년까지 살아남는다는 것. 그 끝에서 우리는 아마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켜낸 것은 회사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삶과 존엄'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당신의 위대한 '버팀'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이 시리즈는 브런치 작가로서 저의 첫걸음을 떼게 해 준 소중한 연재였습니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당시의 기억과 마주할 때면, 잊었던 감정들이 되살아나 벅차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연재를 마칠 수 있어 가슴 벅찬 뿌듯함을 느낍니다.


참 신기한 우연입니다. 이 시리즈를 시작한 9월 2일, 그리고 마지막 회를 선보이는 오늘 9월 18일. 공교롭게도 이 기간은 27년 전 첫 합격 소식이 찾아오고, 교육을 거쳐 입사식을 하는 날과 정확히 겹쳐집니다. 지난 17일간 이 글을 쓰며 저 자신을 깊이 돌아볼 수 있었기에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글의 마침표와 입사 27년 차 출발선이 만나는 이 순간을 함께해 주신 독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독자 여러분께 더 큰 즐거움과 깊은 공감을 드리는 글로 찾아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의 다음 여정에도 따뜻한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