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쓰기
주로 밤에(정확히는 새벽에) 글 쓰는 걸 좋아하는데, 많은 분들이 아침에 쓰는 글을 추천해 주셨다. 모닝 페이지라는 것도 있고 말이다. 암튼, 몇 가지 생각나는 것들을 거칠게(?) 풀어볼 예정.
1. 인물 탐구
나는 평생 '롤 모델'이라는 단어에 부정적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인간은 본디 어리석은 존재인데 무엇을 본받는단 말인가 하며 말이다. 조금은 고리타분한 성격 같다. 그런 나에게도 관심이 가는 인물은 있기 마련이라 시기에 따라 나를 자극하는 몇몇의 인물들이 있었다. 최근에는 프릳츠를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한 조인혁 디자이너님에 완전 꽂혀있는 상태다. 인스타그램을 정독하고 인터뷰를 찾아서 기록하고 있다. 나는 이런 때를 '인물 탐구 기간'으로 명명하고 시간을 보낸다. 한 사람의 삶을 최대한 많이 흡수하려고 노력한다(대부분은 취향이나 취미 생활을 많이 찾아본다). 그리고 대상의 관점에서 경험한 것들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이때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이건 무슨 의미지?' '이 시기에는 어떤 건강 상태와 감정이셨을까?' 말 그대로 간접적인 타인의 삶을 살아보는 것. 내 것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의 시선과 안목에 새로운 레이어가 생기는 과정 같아 재미있다.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이 만났을 때의 그 교차점, 그 지점이 나는 항상 즐겁다.
2. 그림
배워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직장을 나와 나의 이름만으로 무언가를 하려니까 내가 못하는 것이 너무 많다. 다행히도 절망감보다는 하고 싶다, 알아보고 싶다,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더 크다. 목공은 예전부터 관심 있던 분야였고, 음악도 조금 더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다. 욕구가 큰 영역은 디자인 쪽 영역이다. 디자인 툴에 대한 것도 혼자 꾸준히 공부하고 있지만 아직 부족하다. 특히 기본적인 그림 그리기 실력을 키우고 싶다. 잘 그리고 싶은 것도 아니다ㅎㅎ 정말 기본이라도 좀 했으면 하는 생각. 반대로 그림의 기본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제는 Urban Break 2022를 다녀왔는데, 정말 다양한 작품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걸 사람이 그린 게 맞을까? 싶은 그림도 있고, 이것도 그림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그림도 있었다. 어디까지나 무지한 나의 그릇 안에서의 시각이지만 어쨌거나 내가 정의하고 있는 그림의 범위가 편협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좋은 그림은 뭘까? 나는 단지 디자인을 위해 그림을 배우고 싶은 걸까? 어떤 그림이 나에게 필요할까?
3. 미열
공룡이 멸종에 이르는 6도의 변화는 몇 만년에 걸쳐 일어났다. 서서히 물이 끓는 냄비 안에 개구리는 자기가 죽어가는 줄도 모른다. 의식하지 못한 채 조금씩 올라가는 온도가 자멸을 만든다. 미열의 관계는 그래서 눈치채기 어렵다. 잔열 같기도, 약간의 진동 같기도 해서 이질감을 느끼지 못한다. 비로소 온몸이 뜨거워졌을 때에야 관계가 틀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해열제를 먹어 급하게 열을 내려도 잠깐뿐이다. 이미 깊은 곳에서 시작된 미열이다. 급히 수몰시키는 미열은 피부만 따가울 뿐이다.
4. 손
죽음의 경계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손...'이라고 한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손...'을 말했던 것 같다. 도와달라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의 실수이고, 나의 부족함인데 되려 미안하다는 말을 들을 때면 나 역시도 '손...'을 말하게 된다. 손을 잡으면, 손을 잡은 사람이 움직이려는 방향으로 몸이 따라간다. 그게 혹여나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어도 끌려간다. 그렇게 가다 보면 이 길도 나쁘지 않다는 걸 알게 되고, 인정하게 된다. 나도 많은 사람들의 손을 잡았고, 많은 사람들의 손을 잡았다. 결코 혼자 살 수 없는 세상에서 조금 더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설령, 내민 손이 민망하더라도 말이다.
5. 오늘
<탁월함의 발견>에서 '기분 좋은 오늘의 누적이 행복한 인생이다'라는 문장을 읽었다. 나는 시선이 늘 미래에 가있다.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생생하게 상상하는 것이 좋다. 현재가 싫어서는 아니다. 그저 백지 같은 내일을 채우는 재미다. 최근이 되어서야 현재에 집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대학생 때 쓴 메모 중에는 'Eternal Now'라는 글이 있다. 어떤 마음으로 쓴 글인지는 가물가물하지만, 지금의 나의 선택과 행복이 삶 끝까지 영향을 준다는 생각이 아닐까 싶다. 마치 과거의 선택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얼마 전에 엄마가 그런 얘기를 해주셨다. 정말 조금의 부정도 가까이해서는 안된다고. 그 약간의 틈 사이로 들어오는 부정이 하루의 행복을 상하게 하고, 며칠 간의 감정을 어둡게 만든다고. 잠깐의 여흥이 아니라, 영원의 기쁨을 위한 오늘, 그런 오늘 하루를 보내야겠다. 아니, 이미 그런 하루가 시작된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