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한 밤이 주욱 이어진다. 잊고 있었다 생각한 긴 밤은 뜬금없이 말을 걸어온다. 주욱, 잔잔히 걸어오는 밤에 까만 밤과 그만큼 까만 방과 그보다 더 까말 방 속의 내가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는다. 오늘 밤은 비가 오고 있어요. 빗소리가 그렇게 전할 즈음은 밤이 저물어갈 즈음이라 나는 도대체 언제 새벽이 왔으며 언제 비가 오기 시작했는지 거꾸로 묻고 싶었다. 어느새 이만치 왔어요? 난 아직 한참 모르고 있었고 전해주지 않았으면, 끝까지 모를 수 있었을 텐데.
까맣기만 한 밤이 조금 야속하다. 뭐든지 까맣게만 보인다. 모처럼 쉴 수 있는 곳에 왔는데 평온의 색채가 잘 보이지 않는다. 내가 덮고 있는 이불은 하얗고 도톰하고 분홍빛 아이비와 꽃이 잠잠히 피어 차분히 화사한데 그저 희끄무레하다. 머릿속에 담아둔 이불을 끄집어내도 눈앞의 이불은 희끄무레하기만 해서 나는 내 머릿속의 화사한 이불을 끌어 담담히 밤그늘 위에 덮었다. 그저 담담하게 생각을 포근히 덮어주어 조금 졸리다.
연애 소설을 읽은 기억이 난다. 논리도 납득도 전혀 없고 있을 이유도 없던 책은 평소 내가 읽던 문장과는 거울 저편에 있는 것이었다. 너무 한 방향으로만 가는 내 모습이 조금 걱정되어 잡은 그 책. 나는 그런 책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내 조금 쓸쓸한 웃음이 났다. 내가 그렇게 반짝이는 글을, 심장이 뛰는 촉감이 느껴지는 글을 써낼 수는 있을까? 나는 늘어놓지 못하는 겁쟁이기에, 그 자리에만 서있는 탓에 순간과 파편이 아닌, 살아있는 시간을 써내려갈 수 없다. 언젠가 내가 늘 그랬던 것처럼 파편이 아닌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게 되고, 그게 논리와 이유가 전혀 필요하지 않을, 해변에 밀려드는 파도 같은 애정이라면 그 애정은 필시 내가 3cm 정도는 자랐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까만 밤과 비는 음악과 함께 흘러가고 나는 거기에 따라 눈을 감는다. 조금 무력한 느낌이지만 싫지 않다. 밤이니까. 겁쟁이인 나를 스스로 숨기지 않아도 밤이 나를 알아보고 불쌍히 여긴 탓에 쓰다듬어 가려준다. 이불을 덮어도 된다고 허락한다. 거세어진 빗소리도 창 너머의 일이라며 소리를 줄여준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빛으로 나를 드러내는 태양 앞에, 보인다는 이유로 자잘한 모조 보석을 꿰고 나의 색채인 양 과시한, 오만하고 비참한 빛의 시간. 그 태양의 시간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 새벽 너머, 다시 연민의 품을 떠나 허무의 전시장으로 떠날 나의 초라한 뒷모습도. 그 뒷모습이 걸음 걸음 걸어 내 생각을 떠날 즈음, 나는 밤처럼 까맣고 긴 베가 갖고 싶어졌다.
이런 자잘한 상념마저도 불쌍히 굽어보고 있을 이 세상의 수많은 밤들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