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는 평생 참는 게 맞는 거 같다
처음부터 몰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가오.
그게 뭣이라고 가르치지도 않을 걸 혼자 배웠나 모르겠다.
그리고 꽤 오래도 피웠지.
엄마도 알고 아빠도 알고 남편도 다 안다.
내가 흡연자였다는 걸.
그리고 여전히 나는 간헐적이긴 하지만 흡연자이다.
흡연하는 옛 친구들을 만날 때만 담배를 피는 간헐적 흡연.
간헐 : 얼마 동안의 시간 간격을 두고 되풀이하여 일어났다 쉬었다 함.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굳이 내가 흡연자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는다.
여자가, 애 엄마가, 사교육종사자가 담배를 핀다는 건
나라는 프레임을 벗어던지고
객관적으로 놓고 봐도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운 조건이다.
이전에는 여성 흡연에 부정적인 사회의 시선 따윈 하나도 두렵지 않았으나
이제는 제법 무섭고 불안하고 걸리면 어쩌나 하며 떨리고 그렇다.
애를 낳아 키우다 보니까, 오늘 죽어도 뭔 상관이냐며 거칠 것 없던 나도 변하게 되었다.
그래서 엄마, 아내, 선생 같은 나한테 붙은 견장을 다 떼고
온전히 나라는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에만 나는 흡연을 한다.
부산에 가야만 필 수 있으니 일년에 몇 번 남짓이 전부이다.
나의 흡연은 간헐적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이긴 하지만
이 흔치 않은 흡연은 내가 나로 있게 하는 숨구멍 같다.
담배를 입에 물면,
와씨... 나 진짜... 잘 숨기고 살았다. 잘 참고 살았다. 싶다.
아주아주 오랫만에 담배를 피운다는 건, 대개 그 상황이 음주 중이다.
때문에
담배로 인하여 띵하거나 어지럽다 하는 이런 것을 당연히 모른다.
이미 술이 적당히 들어간 터이니
그 증상들이 술 때문인지 담배 때문인지 모르는 거다.
니코틴과 타르 등 합성물질에 대한 내 몸의 거부 반응을
맨정신일 때 처럼 단박에 알아차리기 힘들다.
- 쓰고 보니 나는 담배를 좋아하긴 하지만, 내 몸에는 그다지 맞는 편은 아닌 것 같다.
어떤 때는 담배를 피면 구토를 하기도 한다.
목이 따갑고 아픈 건 없어도 정말 그 냄새가 피면서도 역겨울 때가 있다.
무엇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뭣하지만
무지무지 속이 상하고 열이 받은 날.
갑자기 남편이 산책을 가자 권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달래야했기 때문에 억지로 나갔다.
주거지에서 한참 멀어질 동안 걷던 그가 나를 향해 담배를 내밀었다.
"한 대 펴."
물론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에도 나는 흡연자였다.
그래서 남편도 내가 담배를 핀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고
만남이 좀 깊어진 후에 "세상 여자가 다 담배펴도 괜찮은데, 내 여자는 안폈으면 좋겠어"
라는 어처구니 없는 핑계로 나를 금연하게 했다.
말 잘듣는 착한 아이처럼 나는 그의 말을 들어주는 척을 했다.
우리가 연애를 하는 동안 나는 간헐적 금연을 했다.
남편을 만나고 있는 동안은 담배를 절대 피지 않았다.
그와 싸우고 화가나도 피우지 않았다.
남자친구였던 그는 비록 꾸준히 담배를 폈지만 나는 안피는 척 했다.
그리고 나의 홈그라운드로 돌아오자마자 공항이나 기차역 편의점에서 바로 담배를 사 폈다.
(불행 중 다행스러운 것은 상견례부터 완전한 금연을 했고, 6개월 이후 첫 아이를 임신했다.)
아주 가끔 부산에가면 그와 나는 내 친구들 사이에 끼여서 담배를 같이 피웠다.
그런데 내가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아는 그가 청하지도 않은 담배를 권했다.
하지만 남편은 전자담배를 핀다.
맛이 없다.
담배를 피는 것 같지도 않다.
유일하게 전자담배의 장점이자 지금 내 상황에서 다행인 건
엄마가 담배를 피고 집에들어가도 애들에게 담배를 폈다는 걸 걸리지 않는 정도?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남편이 손수 꽂아준 담배를 몇 번 피다 말았다.
우엑, 이건 무슨 맛이야? 괜히 입맛만 버렸다.
간헐적 흡연은 해보니 그렇다.
모든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는 한 굳이 흡연을 하고 싶지 않다.
일말의 양심인건지는 모르겠지만,
화가 난다고 담배를 손에 쥘 만큼 나는 어리지 않다.
그래서 다 피지 못한 담배를 꺾을 용기도 있다.
어차피 화가 난 일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되든 끝이 나든 할 것이다.
지나갈 일에 분노는 하겠지만, 내가 지금 쌓아오고 지켜온 비밀을 깰 만큼의 것은 아니다.
절제력 부족이라 여전히 나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간헐적 흡연을 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나름 참고 인내하며 금연 하고 산다.
아직은 전자담배보다는 연초가 더 낫다고 생각하며 참고 또 참는다.
결국 금연은 참는 것이더라.
하지만 나는 언제든 피울 수 있고, 피워도 된다 싶으니.
굳이 금연이란 거창한 말을 갖다 붙이지 않더라도
간헐적 흡연자로서 만족하고 살 수 있다.
이런 쌉소리도 결국 자기위로이고 자기만족이다.
세상의 비흡연자, 금연 중인자들만큼 흡연자와 나와 같은 간헐적 흡연자.
모두들 만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