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하자."
부채를 회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한번 정도는 그도 생각해본 적이 있는 단어였겠지만,
일이 이 지경이 될 때 까지도 내 입에서는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었던 말이었다.
이혼하자는 내 말에 그의 큰 눈이 더 커다래졌다.
그리고 그 짧고 단호한 말이 나의 진심임을 알자, 그의 눈에서 단숨에 빛이 꺼졌다.
"애들하고 나는 살아야지. 다 죽을 순 없잖아.
죽을라면 혼자 죽어라. 나는 니랑 같이 못죽겠으니까.
그리고 니 그러면서 설마 이 정도도 생각 안했었나?"
한때는 천상연분을 하자 할 정도로 사랑한 그였지만 나는 단박에 그를 버렸다.
무릎은 여전히 꿇은 채고 푹 수그러진 고개 사이 사이 원형 탈모가 계속 내 눈에 거슬린다.
못 준 4억보다 받지 못한 6억, 그 중에서도 자신의 몫이었던 2억이 증발한 것에 분노하고 좌절한
그의 성질머리가 고대로 드러나 있는 결과이다. 그걸 보니 새삼 기가 찼다.
4억을 어찌 갚아야 하나 걱정하느라 잠도 설치는 나와 그는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이었다.
"니 그 영광의 순간에 함께 했던 사람들 지금 다 어디 있노?"
사업이 망한 전남편의 전화가 혹시 돈을 빌려달라는 전화일까봐 받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하 호호 밤 늦게까지 접대다 친목도모다 격려주다 하며 부어라 마셔라 하던 이들도 원수가 된 지 오래다.
힘든 일이 생기면 사람이 정리된다란 말이 딱 맞았다.
그는 돈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도 잃었다.
그도 나도 그 누구에게 돈을 빌려달라 한 적 없었다.
원래부터 우리집은 소비가 큰 편이 아니었고, 나는 내가 가진 것들을 하나씩 팔아가며 버텼다.
마지막으로 집을 팔고 담보대출을 정리하고 남은 돈으로 그의 카드값과 카드론을 모두 상환했다.
남은 것은 그의 하청업체에게 주지 못한 원금과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이자뿐이다.
그런 나를 지켜보면서도 어떤 것도 해줄 게 없던 그에게 결국 반쯤 우울증이 온 것 같았다.
세상 밑바닥까지 땅굴을 파고 내려가 올라오지 못하였다.
그렇게 그는 집에 쳐박히듯 세상과 자신을 단절시켰고 무너진 채 일어나질 못했다.
그런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게 짠하기보다 미웠다.
지가 뭘 잘했다고 저렇게 자빠져 있어.
넘어져도 일어나면 되는데, 그깟 돈이 뭣이라고 못 일어나나.
내 눈엔 그저 그가 한심했다.
바닥을 기는 그에게 본보기가 되기 위해서라도 나는 무언가를 해야했다.
단돈 1원을 벌기 시작한 그때부터 나는 내가 이 집의 가장이라 생각했다.
"원래 니 돈이 아니었는데, 왜 그걸 잃었다 생각하노. 아무것도 잃은 것도 없구만.
다시 일해서 2억이고 3억이고 보란듯이 더 벌 생각을 해야지.
그라고 자빠져 있으면 뭐 누가 옛다 하고 돈 던져 주나? 정신 차려라이."
처음부터 그 돈은 우리 돈이 아니었기에 잃은 게 없다한 내 말에 겨우 그는 땅 위로 올라왔다.
그러나 다시 희망을 품기도 전에, 땅굴에서 건져 올리자 마자 나는 그를 꿇어앉쳤다.
"니 그 영광의 순간에 내는 어디 있었노?"
여전히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에는 대답이 없는 그였다.
서울에서 경기 동쪽 끝까지 대리비만 5만원 거기에 팁 5만원을 얹어 주며
대리기사에게까지도 그리 돈을 퍼붓고 살던 그 사람이 내 남편이었다.
몰랐는데 알고보니 그는 그렇게 살았었다.
내가 아이를 낳고 성치않은 몸으로 아이 셋을 키우며 겨우 삶을 버티고 있을 때,
그는 그렇게 물 쓰듯 돈을 쓰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며
오만가지 생색이란 생색은 다 내며 오늘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살았다.
눈이 멀고 귀가 멀어 주제 파악도 못하고, 상황 파악도 못하고 말이다.
"내가 젖몸살을 해서 그리 아파도 비싸다고 마사지 한번 못 받고,
내가 감기에 심하게 걸려 열이 끓어도 애 수유한다고 약도 한번 못먹고 버텼다,
내 허리가 아파 걸음도 못떼고 다리 질질 끌고 우는 애 달래러 갈 때.
밤잠 못 자고 젖 먹이고 니 저 별난 딸들 치닥거리 혼자 다 하고.
애 아파서 119 불러놓고 나머지 애들은 딴집에 맡기고 있을 때!
빨래에 청소에 집안일에 치여 미친년처럼 정신줄 놓고 살 때.
제대로 씻지도 제 때 먹지도 못하고 싸지도 못하고 그렇게 살 때.
니는 도대체 어디서 뭐했노? 내가 그라고 사는 건 알기나 했나?
알면 뭐하노, 누가 그래 살아라 했냐고 내한테 그랬었제.
그러면서 니는 내 몰래 빼돌린 돈으로 비싼 술이나 처먹으면서
남들한테는 좋은 사람인 것처럼 온갖 유세는 다 떨고 다니느라
집구석이 어찌 돌아가는지 관심도 없었고 아무것도 몰랐제.
내한테 이 꼬라지나 보이려고 니 그라고 살았나?"
원망과 함께 터져버린 내 굵은 눈물에 남편의 고개가 더 수그러졌다.
"니 뭐라 그랬었노? 해결 될 거라고? 내가 몇 번이나 경고했제.
사람 말 믿지말라고. 니 통장에 꽂힌 돈만 믿으라고.
공사 스탑하라 했을 때 멈췄으면 이 꼴 났겠나? 적어도 내 선에서 해결 가능한 선으로만 빚졌겠지.
근데 니 내보고 집구석에 앉아 애나 보니까 감 떨어져서 모르는 소리한다며 무시하대.
니보다 더 배웠고 니보다 더 벌었었다. 니보다 똑똑하고 니보다 잘나서!!!!
집구석에 앉아서도 상황 다 내려다 보고 잇던 니 마누라 말! 무시한 그 결과가 이거다.
그때 그렇게 지 혼자 세상 잘난 것 처럼, 세상 전부가 다 지 말대로 되는 거 처럼 하더니!!! 이게 뭐냐고!"
미안하다는 말도 미안해서 나오지 않는 건지, 더이상의 사과도 할 수 없는 건지.
폭격같이 쏟아붓는 내 말에도 그는 한참을 묵묵부답이었다.
그리고 미안해서 말이 없나했던 그마저도 착각이었던 게 그의 대꾸에서 확인되었다.
이 때에도 다시 한번 느꼈지만, 그는 나와는 생각이 전혀 다른 사람이다.
"그땐 이렇게 될 줄 몰랐지."
변명도 사과도 아닌 어처구니 없는 말을 했다.
무식해서 용감했던 과거의 그나, 생각 없도 현실성 없는 지금의 그는 정말 주먹을 절로 부른다.
"내 눈에 보이는 게 니 눈엔 왜 안보였는데?
보였는데 무시한 건 아니고? 내가 경고 했나, 안했나?"
결론
그는 나를 속이고 돈을 빼돌렸다.
빼돌린 6,600만원 중 2,200만원을 접대비 명목 하에 유흥비로 탕진했다.
사업이 망하고 집구석을 다 말아먹고난, 하필 이 타이밍에 나한테 딱 걸렸다.
지 잘난 맛에 사는 사이 그는 앞일을 내다보고 제동을 걸던 나를 무시했었고,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내 말을 안들었으며, 그의 아내로서의 나는 안중에도 없었으면서 말이다.
돈 못 받아 빚진 4억은 용서할 수 있지만, 나를 속이고 유흥비로 탕진한 2,200만원은 용서할 수 없다.
(적지 않은 그 돈으로 6개월간 일장춘몽을 누리며 그가 무슨 짓을 어떻게 하고 다녔는지
비록 내 눈으로 확인한 바는 없지만 영업담당 짬밥이 얼만데, 이미 각은 차고 넘치게 나왔다.
작정하고 파면 진짜 이 인간이랑 못 살거 같아서 그냥 대충 알면서도 덮었다.
역시나 주머니에 돈 들어있는 남자새끼는 믿으면 안 될 것들이다. 어른들 말씀은 틀린 적이 없다.
일단 이 일은 언젠가 내가 크게 실수하면 너 또한 한번은 당해야지 하는 보험으로 두기로 한다.
나는 일단 면죄부가 1회권 있는 일회용 자유의 여신이다.)
내 모든 걸 팔고 잃어가면서도 지킨 사랑이자 사람이었지만
나를 속인 이상 이제 더이상 내가 그와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자발적으로 선택한 나의 이혼은 이렇게 타의에 의한 결론이었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하지만 연애부터 결혼 기간까지 13여년의 감정이란 것은 말처럼 쉽게 그를 놓지 못했다.
무 자르듯 단박에 그가 잘려지지 않았다.
"이혼하면 어디 가 있을 건데."
".......................................... 갈 데 없는데."
통장도 제것을 못쓰는 사람에게 일을 시켜줄 이도 없고, 그는 막일 조차도 할 수 없는 체력과 정신력이다.
"지방에 일 없나, 애들한텐 당신 지방에서 일한다 하게. 주말에만 보러 온나"
"요새 경기도 없는데 내 사정 알고 받아주는데는 더 없지. 지금 이런 상태로는 남 밑에 못 가."
"아빠! 아빠 이거 봐봐!"
진지한 대화 중인데 밖에서 아이들이 아빠를 부른다.
집에서 땅굴 파고 지내는 동안 남편은 부쩍 아이들과 가까워졌다.
바빠서 얼굴 보기 힘들던 아빠가 곁에서 몸으로 놀아주고 자전거도 가르쳐주고 하니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 아빠가 되어버렸다.
나에겐 죽일 놈이라도 아이들에게 세상에 하나 뿐인 자랑스런 아빠였다.
그런 아이들의 가슴에 상처를 주기 싫었기에 이혼을 속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가 막상 우리 곁을 떠나면 갈 곳이 없는걸 알기에 매정하게 엄동설한에 밖으로 내쫓아 버릴 수도 없었다.
스스로 자립은 커녕 이대로 내보냈다간 혼자서 그냥 죽을 것만 같은 정신 상태이기도 했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시작된 이혼 후 동거였다.
.
.
.
.
.
아이들 앞에서 여전히 엄마 아빠로 남아있다보니 우리는 전남편 전부인이 아니라 남편, 아내 그대로였다.
손도 잡고 살도 맞대고 변함없이 잔소리를 하고 화를 내고 투닥거리기도 하고 서로를 안쓰럽게 보기도 한다.
하지만 울컥울컥 그가 내게 준 배신감이 올라와 나는 온전히 그를 놓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겠다.
"그만해라. 언제까지 그 얘기 할 건데."
그 때 그 일 이야기만 나오면 전남편은 회피하기 바쁘다.
내게 으름장을 놓아서라도 무시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그의 죄책감은 그 때 단 한 마디 '미안해' 하던 일회성 사과와 함께 끝이났나보다.
나는 용서한 적도 없는데 이미 용서를 받은 것 처럼, 마치 없었던 일처럼 혼자 속 편히 군다.
나는 용서는 해도 잊지는 못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나를 배신한 것에 대해서는, 단 한순간도 용서란 걸 한 적이 없다.
지금 전부인으로서 내 역할은 그가 파산이나 회생을 하고, 아이들 앞에 당당해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제 부모도 형제도 돕지 않은 그를 곁에 두는 것은 그를 남편으로 선택했던 내 마지막 책임이자 의무이다.
다만, 그를 다시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반려로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더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한번 배신한 놈을 곁에 둘 만큼 내가 호락호락하지는 않아서.
나의 끝 없는 의심과 구속을 그가 과연 평생 견딜 수 있을지
이혼과 재혼 사이에 두고 지켜봐야 알 것 같다.
항상 말하지만 우리의 결혼 유지 기간동안 내 전남편은 재활용도 힘들 쓰레기였던 적이 많았고,
나의 끓어넘치는 사랑과 인내로 겨우 붙잡고 버티다가 결국 우리는 이혼을 했다.
재혼을 바라고 또 바라는 이혼 3년차, 이혼과 재혼 사이에 선 이제야 그는 겨우 리사이클링에 들어갔다.
전남편이라는 사람이 완전히 업사이클링이 되면 아마도 그 때 우리는 재혼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비록 영앤리(치)는 아니지만 '업 앤 리'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혼과 재혼 사이의 우리는 업앤리사이클링 중인 러브 스토리로 돌아오겠습니다.
신혼 부부 아니고 언젠가 구혼 부부가 될 수도 있을 우리.
그 때를 위해 노력하고 애쓰고 용쓰며 살아볼게요!
그동안 [이혼과 재혼 사이의 우리]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