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이혼 했습니다 1

이혼과 재혼 사이의 우리 16

by 딱좋은나

이혼과 재혼 사이의 우리에 대해 쓰기 시작하면서 부터 맨날 힘들다 용쓴다 죽겠다 그런 부정의 글로만 가득찬 화면을 마주하게 됐다. 주제가 그러하다 하긴 하지만 내 글에 행복하다 좋다 감사하다 이런 보기만 해도 흐뭇하고 즐거운 얘기는 없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번이라는데, 내 손가락에서 쏟아져나오는 글들은 하나 같이 짠하고 슬프다. 어떨 땐 도대체 뭘 얼마나 하고 살길래 저리 힘들다 하나 하고 읽다 지친 사람들이 궁금해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1인칭 시점으로 써지는 이 이야기들을 전남편도 염탐하고 있다. 내 이야기 속의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비련의 주인공이자 삶의 의지가 넘치는 한국판 캔디이고, 전남편과 전시댁은 세상에 둘도 있으면 안될 몹쓸 사람들로 보인단다.


"신나게 갖고 놀고 제자리에만 갖다 놔."


관대한 그는 오늘도 내게 모든 것을 허락해주며 기꺼이 악역을 소화해낸다.


나에겐 100% 리얼인데 또다른 일방 당사자에겐 조미료가 가미된 가공의 이야기라니 기가 찬다.

가뜩이나 억울해 죽겠는 결혼과 이혼 이야기에서 좋은 에피소드도 하나 없으니 마치 내가 투덜이 캐릭터가 된 것 같아 내가 제일 답답하다.

나는 원래 남편에게만 제외된 초긍정의 아이콘인데 말이다.


이렇게 한탄하고 슬퍼하려고 이혼과 재혼 사이의 우리 이야기를 시작한 게 아니었다.


이혼과 재혼 사이에서 우리가 버릴 것과 취할 것을 구분하고 방식이 어떠하든 앞으로 더 나은 관계가 되길 바래서 시작한 자기 반성이었다. 결코, 누군가를 헐뜯고 비난하고자 함은 아니었다. 내 의도는.


남들은 궁금하지도 않겠지만, 그렇게 사랑해 마지않던 남편과 이혼을 하게 된 결정적 이유를 써 보려 한다.


아마도 이 글이 이혼과 재혼 사이의 우리에 대한 마지막 글이 될 것 같다.

더이상 글을 이어가기엔 전남편과의 재혼을 꿈꾸고 있는 내게 득보다 실이 많은 것 같다.

나를 브런치 작가로 데뷔하게 해준 이 이야기는 '박수 칠 때 떠나라'가 아니라 '이제는 멈추어야 할 때' 이다.






"꿇어."



무릎을 꿇으라는 내 말에 어이 없는 눈으로 나를 보던 그가 이내 조용히 바닥으로 내려가 꿇어 앉았다.

고개까지 푹 숙이고 나의 눈을 바로 보지도 못했다.


하늘같은 남편을 땅바닥에 꿇려놓고 스트레스성 원형 탈모로 군데 군데 헐거워진 그의 정수리에 울컥한다.

그래, 당신 딴에도 살아보려고 그랬겠지, 어떻게든 잘 해보려고 했겠지.

하고 아무리 이해를 해보려고 해도 이해가 안된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다.


노력을 잘못한 탓인지, 그 결과로서 남편은 지금 내 앞에 벌을 받는 아이 마냥 꿇어 앉아있다.


애써 울음을 참고 떨리는 턱을 안간힘을 써서 참고 있는 나를 올려다보던 그가 장난기 하나 없는 나의 진심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가 지은 죄의 무게도 함께 깨달았다. 지금은 아내인 내게 자존심을 세우고 버틸 때가 아니다. 당신 아내의 세상이 와르르 무너지기 0.1초 직전이다.


"미안해."


"말 하지 마."


평소같았으면 대한민국이 아니라 저기 태평양 어딘가에 있는 통가 사모아 욕까지 끌어다가 퍼부어도 모자랄 것만 같은데 너무 어이가 없어서 욕도 안나왔다. 뺨이라도 한 대 후려칠까 손을 올려봤지만 그냥 내렸다. 지금은 그와 닿는 것 조차도 더럽고 싫다.


미안 할 짓을 하지 말았어야지, 하는 생각만 들었다.





막내가 태어나기 전 시작했던 남편의 일이 반 년쯤 순항하다가 결국은 제대로 꼬꾸라졌다.


계약 금액은 22억.

그의 커리어에 드디어 날개가 달리나, 그에게 내려온 것은 하늘이 주신 기회, 황금을 두른 동앗줄인가 했었다.

그야말로 쥐구멍에 직사광선이 스포트라이트처럼 바로 때려박히는 걸로 알았다.

제멋대로 한 착각에 김칫국을 다라이째 마셨었다.



꼬꾸라진 원청으로부터 받지 못한 우리 돈은 약 6억, 그가 하청업체에게 주어야 할 돈은 약 4억이다.

하청업체는 원청과 2억원의 계약을 따로 했으면서, 원청이 법인 파산을 하자 그 돈도 우리에게 내놓으라 했다. 멍청한 남편이란 작자는 술을 먹고 하청에게 지급 확약서를 써주었다. 원청의 보증을 선 것이나 다름 없이 말이다.



그가 만일 법인사업자였다면, 사업자만 날려버렸으면 되었을 일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2억 성실신고대상자가 되면서도 개인사업자를 고수했었다.

그것이 경험이 부족했던 그와 나의 첫번째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가 그의 이름으로 사업을 하는 동안의 모든 돈의 흐름은 내가 관리했다.

들어오는 돈 나가는 돈 모두 내 손안에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 흔한 가방 하나 반지 하나 못사봤다, 공금 횡령 같아서.


매달 정해진 적당한 금액만 감사히 생활비로 월급을 가져갔다.

세금만 제 때 잘 낸다면 그 누구도 찾아보지도 않을 개인사업자이면서, 고고한 척은 혼자 다 했었다.

솔직히 나는 이 일이 끝나고 나면 남는 수익금으로 찐하게 파티를 할 생각이었다.


단 한 달이라도 그의 정해둔 월급보다 더 많이 가져갔더라면,

그래서 하다못해 주택담보대출이라도 좀 꺼두었더라면,

10년이 다 된 차라도 바꾸었더라면 이렇게까지 억울하지는 않을테다.

무엇을 위하여 나는 그렇게 남겨두고 아껴두었었나.

물들어올 떼 노 저으라고 돈 들어왔을 때 썼어야 했다.

쓰지 못하고 남 좋은 일만 시킨 그게 내 두번째 잘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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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진 일을 수습하느라 젖먹이 막내를 안고 차에서 수유를 해가며

동에서 서로, 서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남에서 동으로 사방팔방을 다녔다.

어떻게 해서든 해결하고 싶었고, 그 혼자만의 힘으론 안된다는 걸 알았다.

작은 내 힘이라도 보태야 했었다.

변호사를 만나봤고, 법무사도 만나봤지만 답이 없었다.

결국엔 변호사를 살 돈이 없어 1년간의 긴 법정 공방도 우리끼리 해냈다.

전자법원 소장, 준비서면, 청구취지 및 원인변경신청, 소명자료, 공탁금 등 상대 언니가 법 공부까지 했다.



막내의 돌잔치를 하고 남은 돈, 아이 셋의 돌반지, 내 예물 할 것 없이 다 팔아서 채무자에게 보냈다.

그 당시에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용을 쓰는 동안 돈을 못 준 남편은 채권자들로부터 시도때도 없이 걸려온 전화를 받아야 했다.

또 그를 대표님, 사장님하며 높여주던 사람들로부터 그는 쌍소리를 밥먹듯 듣게 되었다.

우리집 앞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빈번히 왔다갔다했고,

사나흘 간격으로 법원과 변호사 사무실 등에서 서류가 날아왔다.

또 그러다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세간에 빨간 딱지가 붙었고(실제로는 핑크색이었다),

그의 이름과 그의 회사는 부실채무자와 부실기업으로 등재되었다.


이 정도 얘기하면 다들 그렇게 생각하겠지, 사업이 망해서 위장 위혼한 거냐고.


그럴리가!

고작 4억이란 돈 때문에 내가 나보다 더 사랑하는 내 남자를 무릎 꿇렸을까?

나는 키가 작아 그렇지 그 정도로 배포가 작은 여자는 아니다.

비록 그를 대신해 갚아줄 4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4억 때문에 그를 버릴만큼 나는 못나지 않았다.

내 사랑은 적어도 돈 때문에 신의를 져버릴 정도로 하찮거나 가볍지 않다.


그래, 솔직히 그와 이혼해서 지금 내가 가장 좋은 것은

그의 빚독촉으로부터 나는 자유로워졌다는 것 하나다.


내가 그다지 가진 재산도 없었건만 그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남편앞으로 된 다른 빚은 다 갚아주었다.

하지만 그의 앞으로 남겨진 4억은 아직도 여전히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기에 애써 무시하고 있다.

(나와 내 아이들이 살던 대출이 잔뜩 낀 내 명의의 집만 내놓으라 하지 않았어도, 어쩌면 나는 최선을 다해 4억도 갚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이 나의 한 끝, 내 가족을 건들였기에 나는 상환 의지를 접었다.)


그는 현재 국세만 겨우 다 낸 신용불량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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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과 재혼사이에서 내가 그를 재혼하자고 당길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그의 빚인 것은 맞다.

그리고 나는 그와 그의 빚을 나눠 가질 마음이 추호도 없다.

돈 때문에 버릴 사랑도 아니라면서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는

길어질 이야기이기에 다음 편에서 계속.........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혼을 한 것인지 이쯤되면 대충 예측 가능하실 겁니다.

기대하면 실망하는게 불변의 진리인지라 후속편이 크게 흥미롭지만은 않을 것같습니다.

하지만 [이혼과 재혼 사이의 우리]를 통하여 적어도 제가 왜 이혼을 하고

살아봤던 남자랑 또 재혼하려고 고민하는지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하실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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