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남자와 살아보면 어떨까?

이혼과 재혼 사이의 우리 15

by 딱좋은나

며칠 전, 청약당첨을 위해서 남편과 서류상 이혼을 하고 싶다는 이를 말렸다.

잘 생각해보시라, 다시 생각해보시라. 얻는 게 있다면 분명히 잃는 것도 있을 것이다며.



먼저 이혼을 하고 동거남으로 함께 지내는 생활을 해보니 절대 서류상 이혼, 위장 이혼 이런 건 없다고.

마음이 변해도 변하고 생각이 변해도 변하고 그 변화는 모두 말과 행동으로 그대로 은연 중에라도 드러나기 마련이라고.


그거 알아요?

혹시나 남편이 사고로 죽으면 받게 될 위로금도 보상금도 합의금도 내 몫이 아니란 걸.

전남편과 전부인은 서로에게 보호자조차 될 수 없는 관계이니까 남편의 죽음에 합의를 하고 보상을 받는 것도 내가 아니다. (나처럼 법정대리인을 사전에 지정해서 사망 보험금 정도는 받을 수 있겠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묘하게 어긋나는 한 끝을 시작으로 벌어져 가는 두 관계의 간극을 메우는건 정말 쉽지 않다.

법 그리고 서류가 가진 구속력과 강제성은 정말 위대함을 매 번 느낀다.


그런 것 까진 생각지 못했다는 그녀를 말려놓고 보니 이혼이 내게 남긴 것은 무엇이 있나 싶다.





이혼녀로서 가지는 좋은 점을 하나라도 써보고 싶은데, 뭘 써야할지 모르겠다.


이혼한 전남편과 동거 중이니 벗어난 관계에 의한 후련함도 내겐 없다.


아이 셋을 양육하는 이혼녀라서 좋은 것은 유일하게 전기세 다둥이 할인에 더해진 취약계층 할인뿐이다.

한달에 만 원도 채 되지 않는 그 금액을 할인 받는 것만이 유일한 장점이다. (내가 직접 운영하는 사업자 하나만으로도 나는 한가족 부모 혜택을 받을 수 없을 만큼을 벌고 있다. 매달 쪼들리게 사는 건 차상위나 다름 없지만 나는 국가가 선택적으로 해주는 잔여적 지원 대상자가 아니다.)


그 외엔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어 운전자 경력을 인정받을 때에도, 병원에 건강 검진을 받으러 갈 때에도, 다자녀 혜택을 받으려고 가족관계 서류를 제출해야 할 때, 대출을 받기 위해 낸 서류에 남편은 없고 내가 세대주가 되어 줄줄이 비엔나처럼 아이들이 있는 것 등. 우리가 가족이었던 관계를 드러내야 할 때 마다 불편하다.

그리고 나는 아직 이혼녀임을 밝혀야 하는 것이 솔직히 조금은 부끄럽다, 아무리 자의에 의한 이혼이고 타의에 의해 귀결되었다지만. (아이들 학교는 천만다행히 가족관계 서류를 제출 하라 하지 않는다.)




지금 내가 가진 것 중 좋은 것은 건강 하나 밖에 없는 것 같다.

이전에 남편의 아내로 살 땐 분명히 그와 함께였기때문에 나는 좋았고 행복했고 즐거웠는데. 지금은 애써 떠올려봐도 서운하고 섭섭하고 억울하고 분했던 것이 먼저 떠올라 어떤 좋은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좋았었던 기록이 남긴 기분만 남아있고, 내 머릿속 기억은 바래졌는지 무슨 일이 어떻게 있었는지는 퍼뜩 떠오르지 않는다. 추억마저도 좋은 것은 흐려지고 안좋았던 것만 선택적으로 상기되는 것이 이혼이라는 감투이다.







다른 남자와 연애를 해보면 어떨까?

다른 남자와 살아 보면 어떨까?


이혼을 하고 전남편을 곁에 두고 있지만 한번쯤은 상상해보았다.

돈 많고 어리고 이쁜 여자를 찾아간다는 그의 말에 나도 돈 많고 어리고 잘 생긴 남자를 찾아가볼까 생각해봤다.


예전엔 잘 생긴 사람을 보면 저런 남자와 사귀고 싶다했다면, 이젠 우리 딸이 저런 사람 만나면 좋겠다 우리 아들이 저렇게 자라주면 좋겠다 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전남편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상상하는 것은 익숙지 않은 경험이었다.


일단 연애를 하려면 적어도 원나잇이라도 해보려면 누군가를 만나야 하고 호감이 있어야 한다.


나는 아이 셋을 임신 출산 수유하느라 몸매도 망가져 자신이 없어져버렸다.

이쁜 건 고사하고 나이만큼 보이는 내 얼굴도 누군가에게 들이대기엔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재력이라도 있나 하고 생각해봤더니 팔아서 빚을 꺼봐야 애들 키우기에도 모자랄 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돈을 써야하는 돈 없는 남자를 또 내 짝으로 만나고 싶지 않다. 아무리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이정도로 고생하고 살았으면 이제는 나도 남자 뒷바라지는 그만 할 때도 된 것 같다.



애 셋 딸린 이혼녀가 연애를 한다.

학령기인 내 아이들은 누가 돌볼 것이고 나의 일은 누가 또 대신 할까. 연애에 소요할 시간, 돈, 감정이 낭비처럼 느껴진다.


딸도 둘인 이혼녀가 재혼을 한다.

의붓 아버지로 인한 흉흉한 일들이 내게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을까? 그리고 상대 남자는 뭐가 부족해 남의 자식 셋을 대신 키워줄까. 아무리 사랑에 미쳐도 그 남자도 누군가에겐 귀한 아들일거고 나 아니면 편하게 살 인생인데,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생각만으로 상상만으로도 안될 일이다. 지금 내가 다른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결국 내 결론은 혼자가 가장 속 편하겠다 였다.

어차피 누군가가 같이 있어도 외롭고, 함께 있어도 고독한 게 인생이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고 공감도 위로가 그 무엇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그저 술잔을 같이 들어줄 누군가가 있음에 잠시 안도하는 것일 뿐.





그래도 아직은 나도 여자인가.

엄마도 여자고 늙어도 여자고 못생겨도 여자고 돈이 없어도 여자는 여자다.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싶다.


이 말이 '좋아한다, 사랑한다, 밥은 먹었냐, 뭘 먹었냐, 뭐 하고 있냐, 보고싶다, 우리 언제 볼까, 만나면 뭘 할까' 하며 일상을 나누는 보통 평범한 연애를 하고싶다는 것이 아니다. 이미 이놈 저놈들과 해 볼 만큼 해본 연애, 나는 더 하고 싶지 않다. 설레임보다 편안함을 추구하는 나이가 되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경험으로 알고 있는, 부러 생각지 않아도 배려받고 있는.

어차피 홀로 사는 인생, 그 길을 같이 걸어가 줄 누군가가 그래도 곁에 있으면 좋겠다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전남편은 나의 길에 이미 합류해있는 익숙하고도 편안한 동행자이다. 누구도 대체 할 수 없는 둘도 없는 나의 동반자. 적어도 우리는 같은 시간과 같은 경험 속에서 함께 살아왔고, 아이들이라는 존재를 통해 여전히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으니까.


축 쳐진 가슴도 그의 아이 셋을 먹인 탓이기에 부끄러움이 아닌 당당함이 된다.

나이가 들어버린 내 모습은 그와 함께 해온 세월의 증거이기에 우리 관계의 깊이가 된다.

거칠어진 내 손은 그와 자식들을 위해 사느라 변한 것이라 그저 미안하고 고마운 안쓰러움이 된다.

패악을 부려봐도 미친년 소리 대신 네가 힘드니까 그러지 하는 이해를 받는다.


그래서 이혼과 재혼 사이에서 더 그를 놓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미련하다고 해도, 어쩌면 사랑이 아니라고 해도 놓지 못하는 내 마음은, 같은 처지인 전남편만이 알 것이다.



이전 14화조금만 기다려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