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have the time?

시간 있어요?

by 유희

미국에 와서 영어를 못 알아들어서 실수한 일이 많았다. 대한민국 사람 누구나 영어 울렁증이라는 것을 가지고 산다. 토익 만점자도 길을 묻는 외국인 앞에서 얼음이 된다. 나는 미국에 오기 전에는 영어를 잘한다고 꽤 자신했었다. 막상 미국에 오니 그들의 속도와 연음을 나는 따라갈 수가 없었다. 아주 단순한 “How old are you?” 조차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그들의 영어는 친절하지 않았다. 학교 수업도 따라가기 힘들어서 수업시간에 녹음을 했다. 수업 전에 모든 교수님을 찾아가 수업을 녹음해도 되냐 고 미리 양해를 구했다. 매일 녹음해 온 파일을 기숙사에 와서 열 번씩은 들었다. 진땀을 흘리며 이해되지 않는 말들을 듣고 또 들었다. 교수님이 농담이라도 하면 나만 빼고 모두가 웃었는데, 그 좌절감이란... 나도 웃고 싶었다.

캔자스 주립대 전경


내가 꿈꿨던 미국 생활이 이게 아니었는데 매일 허덕이며 살고 있었다. 긴장되는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미국 대학은 참여점수가 모든 수업에 필수로 적용되었다. 아무리 시험을 잘 쳐도 꿀 먹은 벙어리는 좋은 학점을 받기가 힘들었다. 스무 살의 나는 발랄하고 당찬 사람이었는데 미국에 와서는 모자라는 영어만큼 눈치만 늘고 있었다. 문제의 그날도 공강시간이라 도서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전날 강의를 아마 열두 번째로 다시 들으며 걷고 있었을 거다. 내 앞으로 걸어오던 어느 여학생이 자꾸만 나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왠지 말을 걸어올 것 같아서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그 여학생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숏 커트에 문신을 한 여학생이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Do you have the time?”

시간 있냐고? 미국 판 도를 아십니까, 뭐 그런 건가? 아니면 레즈비언인 건가? 그 몇 초 동안 온갖 가능한 시나리오가 뇌리를 스친다. 바로 대답을 못하자 그 여학생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고, 나의 한국발 영어 울렁증 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No,”

겨우 나오는 말이 노… 라니. 화끈거리는 얼굴을 숙이고 가던 길로 가려는 데, 그 여학생이 내 손목시계를 흘끔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한걸음 두 걸음 옮기는데 생각이 났다. 몇 시냐고 물어봤다는 게. Do you have time? 은 시간 있냐고 묻는 것이고, Do you have the time? 은 관사 the 가 붙어서 시계가 있냐? 곧 몇 시냐고 묻는 표현이다. 알고 있으면서도 이 상황에서 the 가 들릴 리가 없다. 지나쳐가는 나의 뒷모습을 보고 있을 그 학생의 눈빛이 불화살처럼 내 등에와 꽂힌다. 갈 길을 잃은 그 여학생의 Do you have the time? 이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캔자스 주립대에 있는 Watson Library

미국에서 처음 몇 달간의 모든 대화가 그랬다. 나의 리스닝은 늘 몇 초 뒤쳐졌고 뜻을 이해했을 때는 이미 대화의 맥락이 바뀌어 있었다. 바로 이해했다 하더라도 말이 빨리 나오지 않았다. 하고픈 말을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굴리다 보면 또다시 타이밍을 놓쳤다. 나에게 말과 글은 식량과 같았는데, 그 시기의 나는 늘 굶주려 있었다. 한국에서 배드민턴 공이 오가듯이 하던 대화들이 그리웠다.


나에게 해방의 언어가 될 줄 알았던 영어가 미국으로 오고 나서 체념과 수치의 언어가 되고 있었다. 말이 많던 내가 말 수가 없어지고 있었다. 될까? 잘할 수 있는 날이 오긴 할까? 끊임없이 반문하면서도 계속하는 거 밖에는 별다른 수가 없었다.

대학교라는 것이 한 학기 동안 정해진 스케줄로 움직이는 것이다 보니 그 학기 내내 나는 그 여학생과 종종 마주쳤다. 스쳐지나갈 때마다 말해주고 싶었다. 시간을 알려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나는 너의 언어가 서툴다고. 사실 알아들었는데 너무 늦게 이해해 부끄러웠다고. 그날 다른 누군가가 너에게 시간을 알려주었냐고도 묻고 싶었다. 이 모든 걸 웃으며 유머러스하게 하고 싶었지만, 그 학기 내내 나는 그 여학생을 못 본 척, 못 알아보는 척을 했다.

시간이 흘러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그 여학생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숏 커트에 양팔 가득 문신이 있었고 코에 피어싱을 하고 미소가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아마도 내가 손목시계를 차고 있는 걸 먼저 보고 물었으리라. 혹여 내가 자기에게 거부감을 느꼈거나 반감이 있었으리라 생각했던 건 아닐까. 단 한 번 한마디를 나누었을 뿐인 그 사람이 가끔 생각난다. 여전히 길을 걷다가 낯선 이에게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길 바란다.

다행히 나의 영어는 점차 나아졌다.

I’m sorry?

What was that?

Pardon?

Excuse me?

Can you say that again?


이런 말들을 반복하지 않아도 대화를 이어갈 수 있고 나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10년 가까이 미국 회사를 다니고 있다. 이제는 어떤 말은 영어에 담겼을 때 더 감칠맛이 나기도 한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15년 동안 영어로 겪을 부끄러움을 다 겪어본 내가 아는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이 있다. 언어를 배울 때, 나의 부족한 언어를 부끄러워하는 건 오만함이다. 당신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있고, 느릴 것이고 실수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은 오만하다. 그러니 마음껏, 실컷, 흠뻑 실수하고 창피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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