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인사하게 해 줘
영어에는 존댓말이 없다. 미국에서는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미 다 아는 이것이 나를 힘들게 할 줄은 몰랐다. 머리로 아는 것, 마음으로 아는 것, 몸으로 아는 것은 다르다. 분명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은 미심쩍고 몸은 불편하다. 미국 친구들은 나이가 지긋한 은발의 교수님들께도 How are you? 친구를 만나도 How are you? 엄마와 통화할 때도 How are you?라고 인사한다. 오해할 수도 있으니 한 가지 일러두자면 나는 한국에서도 특별히 예의 바르지는 않았다.
어느 날 친구들과 다운타운의 한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다행히 미국에 온 지 1년이 지나자 미국친구들과 대화를 이어갈 수 있을 만큼 영어가 늘었다. 날씨가 좋았고 우리는 테라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 멀리 전공 교수님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 교수님은 80대의 전공과 종신 교수님이었다. 걸어오던 교수님과 나는 눈이 마주쳤고,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친구들은 앉은자리에서 손을 흔들며 How are you?라고 인사하고 있었다. 순간 그 자리의 모두가 나를 보고 웃었다. 레이첼이 또 엉뚱한 짓 한다며 다들 재밌어했지만, 나는 쥐구멍에 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교수님 오피스에 찾아가 질문을 하거나 면담을 할 때가 종종 있었다. 질문이 많았던 나는 교수님을 자주 찾아갔다. 교수님과 얘기를 나누면서도 ‘이건 너무 버릇없이 들리나? 예의 없어 보일까?’ 하는 걱정을 늘 했다. 그러다 보니 말을 끝맺을 때가 힘들었다. 아직 다 못한 말이 있는 사람처럼, 듣지 못한 이야기가 있는 사람처럼, 일어날 타이밍에 늘 몇 초가 늦었다.
설상가상으로 교수님 방에서 나올 때가 더 문제였다. 땡큐! 하고 일어나 문을 열고 돌아서 나오면 되는데 그게 왜 그렇게 불편할까. 뒤돌아 걸어 나오면서 어릴 때 어른이 방에 계실 때에는 바로 돌아서지 말고 뒷걸음을 치라고 배웠던 게 생각나 괴로웠다. ‘땡큐’가 왜 그리 싸가지 없이 들리는 걸까. 그날 아침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랫집 꼴통 에릭한테도 땡큐라고 했는데 존경해 마지않는 교수님께도 땡큐라니.
어느 날 교수님이 ‘레이첼, 무슨 할 이야기 있어? 무슨 일 있니? 힘든 일이 있어?’라고 물어보신다. 머뭇거리는 나에게 ‘내 사무실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말하기 힘든 일이 있으면 이메일 보내도 돼.’라고 한다. 그렇게 또 졸지에 사연 있는 여자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 미국식의 인사가 편해졌다. 하지만 그건 적응의 문제이기보다는 생각의 전환이었다. 영어표현 중에 들을 때마다 좋은 표현이 두 개 있다.
I see you.
I hear you.
나는 너를 본다. 나는 너를 듣는다. 대게 서로 호응해 주거나 동의한다는 표시로 구어체에서 많이 쓰는 표현이다. 직역을 하면 어색해지지만 해석하지 않아도 그냥 뜻이 통한다. 인사는 누군가를 보고 듣는 것이고 반가워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방식이든지 중요하지 않다. 프랑스 친구가 볼에 세 번 뽀뽀를 하는 것도, 아랫집 에릭이 반갑다고 주먹을 내미는 것도, 이태리 친구가 볼에 두 번 뽀뽀하는 것도, 친구 엄마가 볼 때마다 포옹을 하는 것도 이제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