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해하기 - "더 메뉴"의 셰프 슬로윅

에니어그램 1번 인물에 대한 경이로운 전개

by 유유자적

영화를 보다 보면 인물의 성격에 눈이 가는 경우가 있다. 성격의 특성이 명확하게 그려지는 경우에 특히 그러하다.

마크 밀로드 감독의 영화 “더 메뉴”를 보면서 그랬다. 랄프 파인즈가 열연한 호손 레스토랑의 셰프 슬로윅. 어쩌면 그렇게 에니어그램 1번의 성격적 특성들을 교과서처럼 보여줄 수 있는지 감탄했다. 에니어그램 1번의 주요 키워드인 완벽주의, 의무, 그리고 분노의 전형, 그리고 착실한 1번이 예술형 4번으로 퇴행해 있는 모습도 그랬다.


분노...

슬로윅 셰프의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분노는 레스토랑에 초대된 손님들에 대한 계획된 응징으로 나타난다. 여기에서 그가 가지고 있는 분노의 원천을 잠시 들여다보아야 한다. 왜 그는 분노했는가. 거기에 대한 답은 슬로윅 셰프 스스로 정직하게 드러낸다. 그는 을이고 싶지 않은 을로서 갑이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갑들을 응징한다. 그는 우선 호손 레스토랑이 있는 섬과 그 레스토랑의 주인인 엔젤투자자에게 분노했다. 보다 나은 투자 수익을 위해 대체메뉴를 개발하라는 엔젤투자자를 줄에 매달아 물에 빠뜨림으로써 추락천사를 연출했다. 호손에 대체메뉴는 없노라 절규하면서. 그는 스스로를 예술가이지 단지 음식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여기기 때문이다. 갑과 을의 나눔은 손님에 대한 그의 판단 기준이 된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와 제공받는 자.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 그의 완벽한 계획에 변수가 되었던 마고. 데이트상대 역할대행을 하는 그녀는 그런 의미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이므로 같은 편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갑과 을의 나눔은 나아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은연 중에 확대된다. 펠리시티가 묻는다. “나는 왜 죽어야 하나요?” 슬로윅이 되물었다. “어느 대학교를 나오셨어요? “ “브라운이요” “학자금대출을 받으셨나요?” “아니요” “죽으세요” 가지지 못한 자가 스스로 성취를 이루는 과정에서, 을이 되고 싶지 않았던 자가 본의 아니게 을로 살아오는 과정에서 쌓인 분노를 자기파괴를 포함한 동반파괴로 표출한다. 그것도 섬세하게 계획되고 연출된 방법으로.


완벽주의, 퇴행, 그리고 의무...

호손 레스토랑의 키친에는 손님 수 이상의 종업원이 각 손님을 위해 정성껏 음식을 세팅한다. 심지어 핀셋을 이용해서. 슬로윅은 자신의 요리가 완벽한 예술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손님들에게 주문한다. “제발 먹지 마세요. 즐기세요” 자신의 예술이 단순히 먹어 치우는 음식이 아니라 작품으로 감상되고 경외되기를 바란다. 그의 이러한 바램은 그러지 않는 손님들을 보며 절망하고 그의 절망은 “여러분의 뱃속에서 똥이 되어버릴 요리를 나는 심혈을 기울여 만들고 있다”라는 자조적 절규로 표현된다. 성실한 1번이 4번으로 퇴행되어 자신의 예술성과 가치에 집착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요리사로서의 본질적 의무에 천착한다. 마고가 “당신은 형편없는 요리사예요”라고 도발하니 왜 그렇게 생각하냐 묻는다.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거든요.” 사람을 먹이는 일이 가장 중요한 임무인 요리사에게 식당에 온지 몇 시간이 지나도록 배가 고프다는 것은 크게 본질에 어긋나는 것이고 이 것은 정확히 슬로윅의 허를 찌른다. “무엇이 먹고 싶은데요?” “치즈버거요” 곁들일 감자튀김의 모양이 물결모양일지 그냥 긴 끈 모양일지를 묻는 데에서 그의 완벽주의적 천성은 절정을 이룬다. 슬로윅은 치즈버거를 직접 만들기 시작한다. 드디어 멋지게 세팅된 치즈버거를 가져다준다. 한 입 맛있게 먹는 마고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슬로윅에게 마고가 묻는다. 배가 불러 다 못먹겠으니 남은 것 포장해서 가져가도 되겠느냐고. 슬로윅은 잘 포장된 치즈버거와 방문기념 선물을 가져다준다. 그녀를 살려주고 가도 된다는 허락을 셰프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이후 남은 손님들은 디저트의 일부로 식당 전체와 함께 산화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각본을 쓴 사람들이 에니어그램 전문가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니어그램 1번의 성격적 요소들을 갖춘 인물을 어떻게 이렇게 잘 그려낼 수 있었는지 감탄스러웠기 때문이다. 만일 슬로윅셰프가 좀 더 행복한 사람이어서 1번의 퇴행 방향인 4번으로 가는 대신 통합 방향인 7번으로 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으면 호손 레스토랑에 오는 손님들이 맛있게 먹는 것에 기뻐하며 그들의 기념일과 이벤트를 축하해주며 더불어 즐겁고 행복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슬로윅이 만일 내 앞에 있다면 코치로서 나는 그에게 어떤 질문을 할 것인가도 생각해 보았다. 요리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뭐냐고, 어떨 때 행복하냐고, 어떨 때 인정받고 존경받는다 느끼느냐고 물을 것 같다. 에니어그램 1번의 성격적 요소와 퇴행에 대해 교과서적인 영화여서 감탄하면서 보았고 여운이 길게 남았던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