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해하기 - "미드소마"의 여주인공 대니

힐링 이라고요? 이게요? ??

by 유유자적

춥고 끄물끄물한 날씨가 계속되던 어느 날 좀 화사하고 따뜻한 영화가 보고 싶었다.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눈에 들어오는 영화가 있어서 눌렀다. 화관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 화사해 보이기에.

미드소마… 하지축제.

알고 보니 겁도 없이 아리 애스터 감독의 영화를 고른 것이었다. 밝은 대낮에 예쁜 수가 놓아진 하얀 옷들을 입은 매우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들이 알고 보니 그 이면에서 황당하게 공포스러운 영화였다.

무서운 밤도, 무언가 엄청나게 무서운 것이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것도 아닌데 어이없게 무서운 영화였다. 화창하게 좋은 날씨에 꽃이 그렇게 많이 나오는 영화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게… 놀라서 찾아보니 이게 한 장르 하는 영화이자 상징과 복선의 맛집이란다. 영화 보는 내내 여주인공 대니의 행보가 놀라워 연구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호르가 마을, 그리고 손님? ??

대니는 여자형제의 자살로 부모님과 가족을 한꺼번에 잃고 남자친구인 크리스티안마저 그녀에게 진정한 위로가 되어주지 못한 채 꽤 피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중에 학교의 펠레라는 친구가 스웨덴에 있는 자신의 마을 축제에 친구들을 초대하면서 대니도 함께 가게 된다. 마크, 크리스티안, 조쉬, 대니, 이렇게 넷이.

호르가 마을. 마을 공동체 초입에 도착할 때부터 이들을 맞이하는 방식이 심상치 않다. 환각기능이 있는 버섯차가 첫 대접이다. 이후 영화의 곳곳에서 환각제가 여러 번 쓰인다. 마을 공동체의 축제는 매 9년마다 벌어지는 미드소마, 하지축제이고 매 90년마다에는 9일 동안 차원이 다른 축제를 벌인다. 문제는 이때 9명의 사람을 제물로 바친다는 것이다. 이번 축제는 바로 이 90년 만의 축제이다. 펠레가 데려온 대니 일행 외에 펠레처럼 공동체의 일원인 잉마르가 영국에서 데려온 사이먼과 코니도 있었다. 이들 손님들의 본연의 목적이 의식에 쓰일 제물이었음이 한 사람씩 사라지며 차차 밝혀진다. 이 공동체는 마을의 원로들이 조용히 다스리는 매우 가부장적이고 통제지향적인 집단이다. 마을에 들어온 외부인들은 모두 감시, 판단, 통제, 심판의 대상이다. 호르가 마을의 신성한 책인 성전을 자세히 보려 금단의 장소에 몰래 침입했던 조쉬는 그 자리에서 잡혀서 죽임을 당한다. 두 다리가 밖으로 나오게 거꾸로 묻힌, 아니 처박힌 그의 발바닥에는 룬문자 마나즈(ᛗ)가 거꾸로 쓰여 있었다. 룬문자 마나즈의 의미는 인간, 인류, 자아인데 거꾸로 쓰인 마나즈의 뜻은 한마디로 인간이 아닌 자, 교활한 자, 믿을 수 없는 자라는 것이다. 72세가 되면 공동체를 위해 절벽에서 스스로 뛰어내려서 죽는 의식을 본 후 너무 놀라 돌아가겠다고 선언한 사이먼은 블러드 이글이라는 끔찍한 상태의 죽음을 맞는다. 사이먼과 함께 온 코니가 사이먼을 찾으니 마을의 장로가 태연하게 대답한다. 그는 먼저 떠났노라고. 아무 죄책감 없이 거짓말을 한다. 상대는 이미 죄책감 같은 것을 가질 필요가 없는 대상이다. 이후 코니는 강제 익사를 당해서 죽는다. 마을의 신성한 나무를 모욕했던 마크 또한 죽임을 당한다. 공동체의 존속과 순혈주의를 동시에 고려하는 마을의 장로들은 구성원들의 성적 활동까지 통제한다. 마야라는 공동체의 처녀는 금발의 백인으로, 장로들로부터 성행위를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는다. 그의 짝은 금발의 파란 눈인 크리스티안이 낙점된다. 그들의 성행위는 남녀 간의 은밀한 화합이 아니라 공동체의 여성어른들이 지켜보는 중요한 의식이 된다. 크리스티안은 환각제에 취한 상태에서 그 의식을 치른 후 뛰쳐나와 마을 장로들에게 마취제로 가볍게 제압당한다. 이들에게 손님은 외부인으로서 마을의 의식에 제물로 쓰이거나 근친혼을 피하고 종족을 유지하기 위한 번식용으로 쓰이는 도구일 뿐이다. 마크를 유혹했던 공동체의 여인은 앞부분에 커다란 붉은 고추가 그려진 옷을 입고 머리를 숙인 채 무리 중에 서있었다. 마치 집단 조리돌림처럼. 마크는 크리스티안과 달리 장로들이 인정한 번식대상이 아니었으므로.


힐링이라고? 이게? ??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상처받은 대니의 힐링 과정이라 표현했다. 대니가 상처를 받고 기댈 곳이 없었던 것은 맞다. 힐링의 사전적 정의는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것이다. 대니는 축제의 기둥을 돌며 춤추는 의식에서 쓰러지지 않고 끝까지 남아 얼결에 여왕이 된다. 여왕이 되어 살아남는다. 여왕이 된 후 크리스티안이 마야와 성행위 하는 것을 알고 서럽게 목놓아 운다. 이때 그녀를 둘러싼 다른 여성들이 집단으로 함께 울어 준다. 여왕이 된 그녀가 해야 하는 가장 큰 일은 의식의 마지막에 희생될 제물을 고르는 것이었다. 공동체 사람 중 뽑기를 통해서 뽑힌 한 명과 크리스티안 중 마지막 한 명을 결정해야 하는데, 대니는 크리스티안을 제물로 선택한다. 크리스티안은 곰 가죽 속에 넣어져서 결국 희생된다. 이 과정들을 지켜보며 영화가 끝나는데 이때 대니의 얼굴이 웃는 것과 우는 것이 겹쳐진 묘한 얼굴이 된다.

이 영화에서 대니에게는 무엇이 중요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대니가 상처받고 기댈 곳 없고 남자친구조차 위안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으나 이 공동체의 속성, 그리고 자신의 친구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상황 속에서 그 구성원들에게 받는 위안을 과연 힐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힐링이라면 치유되고 회복되고 그 회복이 의미 있게 지속가능해야 하는데 과연 그녀가 그런 상황이 되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 내내 이전 여왕들의 이후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는다. 영화 중 한 여성이 “먼저 여왕님들이 계시는 방에 가보실래요? 축복해 주실 거예요”라고 하지만 실제 가지 않음으로써 감독은 교묘하게 답을 주지 않는다. 대니에게는 힐링보다는 자존감과 효능감의 옷을 입은 권력이 중요하지 않았나 싶다. 남자친구에게 내내 섭섭하다가 남자친구의 운명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여왕의 위치에서 그녀는 자신을 공동체의 권위와 권력과 동일시하면서 잠시 그간 잃고 살았던 자존감과 효능감을 느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던 것 같은 느낌에서 중심에 자리잡고 많은 사람들의 추앙과 대접을 받는 듯한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녀의 고통에 공감해 주고 크게 울어주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감정도 공감 이라기보다는 무언가 집단 히스테리에 가깝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72세 노인들이 절벽에서 뛰어내릴 때도, 3명의 산사람을 포함한 9명의 제물을 불에 태울 때도 모두 단체로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을 연출하는데 그중 누구도 왜 산사람을 태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는다. 모든 공감의 장면에서 개인이나 이성이나 질문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동체 안에서 단지 한마음 한 모습으로 다 같이 고통스러워하는 기괴한 장면은 하나의 집단 히스테리로 보였다.

대니가 만약 앞에 있다면 나는 그녀에게 무슨 질문을 해야 할까 생각해 보았다. 크리스티안을 제물로 선택할 때 어떤 마음이었냐고, 지금 마음은 어떠냐고, 장차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냐고 물을 것 같다. 진정한 힐링은 치유하고 회복하고 다시 살아나갈 힘을 얻어야 하는데 과연 그녀가 그런 상황에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공동체는 개인의 감정이나 행복보다 집단이 우선인데 이 공동체 안에서 앞으로의 그녀는 어떨지 궁금해졌다. 위안이 필요할 때 위안을 얻는 대상이 매우 중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 대니가 경험한 것이 과연 힐링인지 효능감의 옷을 입은 권력과의 동일시인지 꽤 오랫동안 생각하게 한 영화였다. 그리고… 룬문자가 무엇인지까지 찾아보게 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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