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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쓰 Jan 24. 2021

영화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나는 한참이나 너의 얼굴을 바라본다, <펀치 드렁크 러브>

#펀치드렁크러브 #영화적인것과그렇지않은것

안락하고 청결한 방에 은근한 외국어와 음악이 깔려있고 너와 나는 이제 막 누웠다. 우리는 우리가 아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그런 말을 뭐하러 해. 근데, 우리가 뭔데? 너의 맨송맨송한 얼굴. 우리는 두 번째로 재생되는 영화를 그제야 보기로 한다. 이곳에서 사랑에 빠지는 이들은 모두 감정적으로 소외되어 있다. 이 영화는 로맨스다. 하지만 좀 더 강박적으로 예민하고, 그러니까 조금은 덜 로맨틱 코미디 같다. 분명 앙증맞은 장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이 과정은 억지로 몇 줄기 햇살을 비춰보려 노력하는 발악으로 보였다. 진정한 사랑은 모든 걸 보여야 한다지만 모든 것이 보이는 사랑이 정상일 리 없다. 여기서 발생하는 불협화음이 극 내내 찢어질 듯 질주한다. 타인은 대부분 지옥이지만 희박한 확률로 구원일 수 있다. 괴랄하게 은근한 이 설득에 나는 그만 허탈하게 웃어버렸다. 형형색색의 엔딩 크레딧이 오르고 어느새 새근새근해진 너의 진진한 미소. 나는 한참이나 그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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