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한 완벽주의자] 피터 홀린스 | 넥서스BIZ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일탈이 끼어들 틈 없는 <회사-집-회사-집> 루틴의 노잼라이프를 성실히 수행했기 때문에 '이 정도면 밥값 1인분은 하고 있잖아?'하고 정당화하면서 '나'와 '나태함'이라는 단어 사이에 연결성은 없다는 듯 내심 거리감을 두고 있었다.
자기 계발서를 찾아보는 타입은 아니지만 '실패가 두려워 멈춰 선 사람들'에게 제안하는 현실적인 조언이 담겨있다고 해서 과거의 나 (어쩌면 지금의 나에게도 해당일지 모른다)에게 해줄 수 있는 따끔한 조언을 듣고 싶어 나도 모르게 홀린듯 이 책을 펼쳤다.
작가는 도전을 망설이는 행위를 단순 의지력 부족이 아니라 감정, 완벽주의, 회피 심리의 복합체로 본다.
게으름의 척도를 나열한 몇 가지 예시를 보다 보니 '이거 내 얘기인가?' 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몇 가지 항목이 눈에 들어왔다. '게으르다는 것'은 단순히 몸이 피로해서 그렇다기보다
(1)자신에 대한 믿음 부족, (2)의욕상실, (3)노력보다 편안함을 선호하는 성향 등
다양한 유형이 있다고 하는데, 이 세 가지가 바로 내가 애써 바라보지 않으려고 했던 진짜 내 모습이었던 것이다.
[완벽주의의 탈을 쓴 회피 심리의 복합체]
완벽주의를 가장한 회피 심리의 복합체라...
내 속을 꿰뚫어 본 듯한 작가의 뼈 때리는(?) 진단을 듣고 과거의 내가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사실 나는 대학 진학을 결정하던 고등학교 3학년 즈음 국문학과에 진학하고 싶었다. 날 때부터 승부근성도 없고 유연성도 없어서 무용이나 체육분야는 애초에 관심도 없었고, 나름 지구과학에 흥미가 있었지만 수학이라는 과목은 대체 나와 어떤 악연이 있는 것인지 도무지 친해질 수가 없어서 단박에 이과계열은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죽어라고 외워도 외워지지 않는 암기과목과 달리 고전문학이나 현대문학을 접하는 시간은 언제나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소설을 읽다 보면 살아보지도 않은 시대가 궁금했고 기존에 없는 새로운 등장인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가들의 표현력은 경의롭기까지 했다. 무엇인가를 배우며 즐거웠던 기억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국문학과를 진학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국어보다는 외국어가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현실적인 부친의 설득에 어떠한 저항도 없이 그동안 생각지도 않았던 불어불문학과를 전공으로 택하게 되었다. 추후 이 선택은 두고두고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되었지만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그 선택은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을 외면했던 회피 심리에 기반을 둔 나의 첫 번째 선택이었단 것을 말이다.
취준생 시절. 출판계열 직무 중에 '국문과를 졸업하지 않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라는 소심한 생각으로 도서/출판 관련 카테고리를 기웃거렸지만 결국 이력서를 제출한 곳은 내가 면접에 통과할 수 있는 분야였다. 그것이 회피 심리에 기반을 둔 나의 두 번째 선택이었다. 사회초년생이었던 그때는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의 괴리가 너무 컸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행복하지 않고 고뇌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인간의 욕구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욕구가 자아실현이라는데 첫 번째 단추부터 어긋난 느낌이었다. 결국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뼈저린 교훈만 체감한 채 실패가 두려워 새로운 시도 없이 멈춰 선 것이다.
그렇게 읽고 쓰는 일은 업이 아닌 취미로 하자며 스스로를 합리화하던 어느 날 카카오 브런치스토리를 알게 되었고 재치 넘치는 작가님들의 글을 눈팅하기 바빴다. 다들 어쩜 그렇게 흡입력 있고 재미있게 글을 쓰시는지. 고수들의 화려한 글솜씨를 보고 있자니 막상 내 글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익명의 다수가 내 글을 읽고 어떻게 생각할지 평가가 두렵기도 했고 부끄럽기도 해서 더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7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나 보다. 완벽한 구상을 하기 전 까지는 브런치스토리를 시작할 수 없다는 자기변명 아래 소득 없이 시간은 흐르기만 하고 꿈은 잊혀갔다. 그러던 중 '실패가 두려워 멈춰 선 당신에게'라는 문장이 불현듯 그때의 콤플렉스 덩어리였던 나에게 하는 말인 것 같아 이렇게 몇 자씩 적어 내려 가기 시작했다.
시작이 이렇게 어려울 일인가?
‘얼마나 느리게 걷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절대 멈추지 않는 약속의 정신을 잘 담고 있다. 이는 특정 습관의 최소한의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이라도 반드시 실천하며 이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이 약속은 자신의 삶에 대해 완전한 책임을 지고 통제권을 가지는 것이다. 변명이나 핑계가 끼어들 여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나를 가로막는 건 완벽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을 나에 대한 두려움]
나태함을 극복하기 위한 작가의 조언은 감정과 행동을 분리하는 것이다. 불편함을 피하려는 본능을 극복하고 부정적 감정을 조절하며, 미루는 것의 악순환을 끊어내고 방향성을 설정해야 한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다가오지도 않은 일에 대해 우려하기보다 우선 중요한 일부터 시작함으로써 루틴을 만들어가야 한다. 매일 성공할 필요는 없다. 그저 목표를 위해 전진할 수 있는 방향성과 꾸준함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작가는 강조한다. 나태함을 거부하는 사고방식 훈련이나 습관 기르기는 사실 머리로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정답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일단 시작하는 것. 모든 조건이 생각한 대로 완벽하게 갖춰질 때까지 준비만하다가 결국 시작도 못한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완벽주의를 가장한 회피 심리로 인해 새로운 것을 시도할 용기가 부족했던 과거의 나에게 따끔한 조언을 해준 작가 피터 홀린스에게 감사를 표하며, 서랍 속에만 저장해 두었던 소소한 나의 꿈을 실현해보고자 한다. 그동안 느꼈던 두려움은 현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온갖 부정적인 생각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려고 했던 완벽주의의 탈을 쓴 '용기 없고 의지박약인 나' 때문이었으니까 말이다. 새로운 도전이 망설여질 때마다 기억하자. 완벽한 100%보다 80%의 완성이 더 가치 있다는 사실을.
당신의 목표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어떤 날은 그 최선이 대단한 성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지만, 다른 날은 겨우겨우 한 걸음 내디디는 수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약속을 붙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약속이 살아 있는 한, 결과에 상관없이 당신은 여전히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