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어의 정원] 강보라 | 문학동네
얼마 전 친한 지인 A로부터 연락이 왔다.
"나 이혼하려구."
하고 싶은 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지인 A는 나와는 다르게 항상 발랄하고 즐겁게 사는 듯 보였다. 마치 오늘만 사는 사람처럼 나중에 일어날 일은 걱정하지 않은 채 본능이 이끄는 대로 충실하게 사는 그녀가 내심 부럽기도 했다. 그러나 하고 싶은 건 다 하는 그녀가 딱 한 가지 못 하는 것이 있었다.
남편과의 대화였다.
세상 외향적인 그녀와는 달리 그녀의 남편은 내향적이고 보수적인 성격이었다. 맞벌이를 하는 가정이었음에도 삼 시 세끼 밥상을 차리고 치우는 역할은 당연히 아내의 몫이어야만 했고, 야외활동을 싫어하는 남편의 성향으로 인해 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다. 어쩌다 같이 여행을 가더라도 남편은 하루 종일 호텔방에서 영화를 시청하고 아내만 홀로 관광을 하는 것이 보통이라 여행지에서 둘이 찍은 사진이 몇 장 없다고 했다. 부부의 문제를 대화로 풀고 싶었지만 남편은 늘 입을 닫고 소통하기를 거부한다고 했다.
그간 사정을 들은 나와 지인 B에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할 거면 따로 살지 결혼은 왜 했대? 네가 그런 취급을 받으면서 그 사람이랑 같이 살아야 될 이유가 하나도 없어!"
나와 B의 공격에도 지인 A는 "사람의 성향을 고칠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참고 살고 있지만 그래도 점점 태도가 좋아지고 있다"며 남편을 감싸기 바빴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고 문득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인가?' 회의감을 느낀 지인 A는 결국 이혼을 결심했다.
나와 지인 B는 그 선택을 환영하고 응원했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그동안 A가 자신을 아끼는 법을 배우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명목아래 무심코 건넸던 조언들이 그녀에게는 폭력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A가 진정 원하는 것은 어쭙잖은 조언이 아니라 자신이 힘들게 꺼내보인 상처를 그저 공감하며 들어주고 이해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아니었을까?
['상처'가 '타락'으로 인식될 때]
주인공 은화는 독립영화로 얼굴이 조금 알려진 배우이다. 새로운 오디션에 참가한 그녀에게 주어진 주제는 "살면서 여성으로서 겪은 상처를 독백 연기의 형태로 들려주세요."
은화는 그녀가 겪었던 세 번의 임신과 세 번의 유산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연기인 듯 진심인 듯 심사의원들 앞에서 독백을 이어나간다. 생계를 유지해야 했으므로 오디션에 당선되기 위해 유산이라는 기억하기 싫은 과거의 상처를 입 밖으로 내게 되고 오디션장을 나오는 발걸음은 결코 가벼울 수 없다.
오디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우연히 마주친 후배 정림이의 눈에 은화의 차 뒷유리에 붙어있는 "아이가 타고 있어요" 스티커가 눈에 밟힌다. 임신했을 때 미리 붙여둔 스티커이지만 유산을 했음에도 은화는 그 스티커는 떼지 못했다. 스티커를 본 정림은 은화에게 본인이 몇 번의 유산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제야 동일한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은 각자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아 결코 꺼내고 싶지 않았던 내면의 상처를 입 밖으로 꺼낸다. 그러면서 그 상처는 조금 가벼워진다.
“……그 말을 들으니 나는 길가에 버려진 장갑 한 짝이 된 기분이야.” “……” “실은 나 아까 속으로 선배 질투했어. 선배한테 아이가 있는 줄 알고…… 차 뒤에 붙은 스티커를 봤거든.” 은화가 와이퍼 속도를 올리며 답했다. “그 말을 들으니 나는 저 창문의 눈송이처럼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기분이야.” 정림이 목소리를 한 톤 높였다. “그 말을 들으니 나는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봉지가 된 기분이야.” “그 말을 들으니 나는 추위에 굳어버린 길고양이가 된 기분이야.”
“그 말을 들으니 나는 눈발 속에서 길을 잃은 발자국이 된 기분이야.” “그 말을 들으니 나는 영원히 멈춰버린 분수대가 된 기분이야.” “그 말을 들으니 나는 아무도 없는 골목에 켜진 가로등이 된 기분이야.” “그 말을 들으니 나는 물속에 가라앉은 못생긴 가오리가 된 기분이야.”
[100개의 사연은 100가지의 다른 아픔을 가지고 있다.]
두 여자가 상처를 공유하던 중 오디션 심사의원으로부터 걸려온 은화의 전화가 울린다.
“비슷한 사연이 반복되면 관객들이 지루해할 수 있어서, 세 번째 유산의 설정을 살짝 바꿀까 해요. 임신 마지막 달에 사산한 걸로 시기만 좀 늦추기로요. 자기는 프로니까 이해하리라 믿어요.”
비록 소설이지만 저 대사를 읽는데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개인의 상처를 원하는 대로 짜깁기 하여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어버리는 무심함과 가혹함. 그리고 마냥 거절할 수만은 없는 약자. 그 제안을 거절하면 마치 프로의식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고 어렵게 얻은 기회도 날아가버린다. 인간의 무심함이란 이토록 잔인하구나. 말 한마디로 지워질 수 없는 스크래치를 저렇게나 쉽게 낼 수 있구나. 그리고 또다시 드는 생각.
'나는 주변 사람들의 슬픔을 깊게 들여다본 적이 있었나? 내 일이 아니라고 아무렇지 않은 일로 가볍게 치부해버리지는 않았나?'
상대방에게는 이처럼 타인의 상처가 아무렇지 않은 듯 쉽게 소비된다.
"누가 파혼을 했다더라."
"누가 우울증으로 요즘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더라."
힘들게 꺼낸 각자의 사연이 제 3자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조금의 양념이 추가되어 다른 이야기로 둔갑된다. 관객들의 흥미를 끌기 위한 자극적인 소재로 전락한다.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어디서나 일어나고 있을 법한, 충분히 있음 직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두 여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니 몹시 잔인한 느낌이 들었다.
제 3자에게는 다 비슷해 보이는 사연이라고 해서 당사자들의 아픔을 하나로 뭉뚱그릴 수는 없다. 100개의 사연은 100가지 색깔의 각기 다른 아픔을 가지고 있다.
['파란 조각들'로 상처를 극복하는 우리]
제목이 <바우어의 정원>이라 하여 바우어가 무엇인고 했더니 호주 동부에 '새틴 바우어'라는 새가 산다고 한다. 새틴 바우어는 땅에 떨어진 모든 사물 중 파란 물체만을 모아 둥지를 꾸며 암컷을 초대하는 방식으로 암컷에게 구애한다고 한다. 땅에 떨어진 모든 '파란 조각들'을 모으는 새.
사람들도 저마다 '파란 조각들'을 각자의 상처와 아픔, 우울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씩 가슴속에 묻고 살아간다. 그 조각들은 결코 가볍게 입밖에 낼 수 없다. 그 파란 조각들을 공유한다는 것은 제 3자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내 안의 상처를 너라는 특별한 존재에게는 기꺼이 열어 보인다는 뜻이다. 그것은 어쩌면 인간이 사랑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내 안의 상처가 타락이 아닌 회복과 전환점으로 인식될 때쯤 다시 세상으로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마음을 열고, 속 이야기를 터놓고, 공감하고, 의지하며 위로한다. 그렇게 함께 부대끼며 살아간다. 이 치유의 과정에서 얻은 사랑과 용기가 어쩌면 우리가 각자의 무게를 견디고 고된 세상을 살아낼 수 있는 원동력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