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5일
매일 아침 9시와 저녁 9시 부산에 계신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공황장애가 경미한 증세로 재발되고 있다는 진단을 받고 난 뒤부터 시작한 일이다. 엄마는 2012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공황장애를 앓으시고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 후로 막내딸로서 내가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만큼은 하려고 한다. 엄마가 언젠가 내 곁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에.
오늘은 전화를 거는 시간이 30분 늦었다. 목소리에 기운이 없으셨다. 지난 일요일부터 시작된 감기가 쉽게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엄마, 감기가 오래간다 그죠?"
"아이다, 누 있어서 그렇다."
엄마는 규칙적인 사람이다. 일상의 변화가 별로 없다. 9시에 걸려올 딸의 전화를 기다리다가 깜빡 잠이 드셨었나 보았다. 안부만 여쭙고 전화를 끊을까 하다가 엄마의 목소리에서 묻어 나오는 외로움이 느껴져 말을 이었다.
"엄마는 살면서 언제가 제일 좋았어요?"
"60에서 70 사이."
주저 없이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답에 대한 이유들.
"너거 아부지가 70부터 아팠다 아이가. 그다음엔 내가 아푸고. 그때만 해도 아부지 안 아푸고, 너거도 다 결혼했고, 연금이 나오니 묵고 살기도 괜찮았지. 안 아푸니까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하고, 활동 범위도 넓었데이."
그렇구나. 아프지 않고, 경제적인 여유도 있고, 자식 걱정도 없으며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나이. 그게 60 대구나. 100세를 넘겨 살고 있는 김형석 교수도 그랬다. 60대부터 인생이 보이더라고. 행복이 뭔지 알겠더라고.
그리고 그는 말했다. 100살을 살아보니 절대로 행복할 수 없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다. 첫 번째는 정신적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 물질에만 현혹되어 가치는 두는 사람들이다. 두 번째는 이기적인 사람들이라고 했다.
91세인 엄마는 매일 묵주기도를 하면서 기도를 하니 정신적 가치를 모르는 사람도 아니다. 직계는 물론 친가며 외가, 사돈팔촌까지 대소사를 챙기는 걸 보면 이기적인 사람도 아닌데 지금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때로는 불행해 보일 때도 있다. 무엇이 엄마를 점점 행복과 멀어지게 하는 것일까?
다시 생각해본다. 그러고 보니 정신적 가치를 자꾸 놓치시기도 한다. 요즘은 직계 가족만 챙기시기도 한다. 기도를 해도 자식들, 손자녀들 기도에만 머물러 있다. 사돈팔촌을 챙길 때도 그동안 쌓아둔 당신 체면 때문에 하는 경우도 있다. 그 또한 이기적인 마음 이리라.
100세를 산 선배의 말을 충실히 따르자면 엄마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정신적 가치를 회복하고, 이타적 삶을 지향해야 하는 것이군. 말은 쉽다. 두 가지를 어떻게 실천한담? 날로 약해지는 신체, 노화로 인해 점점 무력해지는 엄마, 식사 전후로 1시간가량 앉아 계시는 것을 빼면 20시간가량 침대에 누워 계시려고 하는 엄마. 코로나 19 이후 바깥출입조차 거의 삼가고 계시는 엄마. 어떻게?
꾀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일요일에는 내가 상담하는 친구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했다. 어제는 내가 하는 교육에 참여하는 교육생들이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직업상담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려드리고 그들이 교육을 잘 받고 일을 잘할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했다. 역시 효과가 있었다. 어젯밤에 전화를 했을 때, 엄마는 교육이 잘 끝났느냐고 여쭈어 보셨다. 그리고 잘했냐고. 엄마의 기도 덕분에 잘 끝났다고 말씀드렸더니 한층 목소리가 밝아졌다. 역시. 이기가 아닌 이타의 마음으로 하는 기도, 정신적 가치의 지향이 삶의 만족스럽게 하는 것이구나.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잦아내야 한다.
엄마의 행복을 위해 다시 꾀를 냈다. 전화를 끊으면서 과제를 드렸다. 살면서 감사한 장면 하나만 생각해보시라고. 내일 과연 엄마는 어떤 대답을 해주실까? 상상만으로 나는 행복해진다. 덕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