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좇는다

미스 슬로운

by XX


* 약간의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가 결말을 소비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충분히 예상되거나 한 가지의 닫힌 결말, 예측할 수 없거나 스토리 라인을 비트는 강력한 한 방을 가진 결말들은 영화의 장르, 소재, 감독의 메시지 등의 복합적인 요소에 의해 선택되고 만들어진다. 결말의 방식에 대하여 선호와 불호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결말이 영화의 스토리 구조와 상호 교감하여 작품과 가장 어울리는 이상적인 지점을 찾는 과정에서 나오는 산물임을 생각해본다면 그런 이유로 때로는 식상한 결말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거나, 신선한 결말이 영화를 무너지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영화 <미스 슬로운>의 첫 장면은 클로즈업된 슬로운의 얼굴과 곧 이어지는 그녀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독백하는 슬로운의 시선은 정면을 향해있다. 그녀의 응시는 마치 스크린을 뛰어넘어 관객에게 도달한 듯하다. 소설에서 첫 문장이 중요하듯이 영화에서 첫 장면을 클로즈업과 정면을 향한 주인공의 시선, 강조된 말(언어)로 채운 것은 감독이 분명한 의도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싶어 했음을 의미한다.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인 이 장면이 영화 상영 내내 관객들의 뇌리에 강렬하게 잔상처럼 남길 바라면서 말이다.


노골적으로 직접적인 첫 장면을 지나 이 영화가 다루는 소재, 등장인물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사건과 그들의 행동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쏟아지는 대사들을 바쁘게 따라가야 한다. 총기규제, '히튼-해리슨'법안, 수정헌법 2조, 로비스트... 대사들 속에서 몇 가지의 낯선 단어들이 영화 내내 계속 등장하며 영화의 맥락과 조우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상기된 단어들이 익숙해지고 영화의 이야기 속으로 몰입하도록 이끈다.


초반 슬로운이 파격적인 선택을 하면서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스토리는 총기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을 두고 싸우는 콜 크래비츠 워터맨 사와 피터슨 와이트 사의 대결구도로 흘러가게 되는데 그와 동시에 엘리자베스 슬로운이라는 개인의 면모가 그 중심에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게 된다. 만성 불면증에 시달리며 깨어있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각성제를 복용하고 불필요한 감정 소모와 개인관계를 차단하기 위해 돈으로 애정 욕구를 해결하는 슬로운의 기벽을, 히튼 해리슨 법안 통과라는 승리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는 냉철하고 자비 없는 로비스트로서의 슬로운의 모습과 계속 대조시키는 와중에 협박과 돈, 권력이 오가는 워싱턴 정가의 로비스트들의 대립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신념이 성공이자 곧 성공이 신념인 슬로운에게는 지켜야 할 선이 없기 때문에 목표 달성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극단적인 선택을 늘 기회로 이용한다. 필요하다면 팀원을 수단으로 이용하고,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서라도 승리를 쟁취하고자 한다. 망설임 없이 폭주하는 야생마 같은 그녀의 행동은 피터슨 와이트 사가 승리를 예감하는 순간조차 관객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영화의 구조 속에서 이미 초반부에 청문회에 불려 나간 슬로운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녀의 말로를 예감하게 하는 영화적인 장치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정의와는 거리가 먼 슬로운의 선택과 행동이 콜 크래비츠 워터맨 측의 비열한 방식과 전혀 다를 게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이 영화가 결코 정치 고발성을 띄는 통쾌한 정치 스릴러가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안할 정도로 극단적인 슬로운의 행보는 보다 슬로운 개인의 인물에 집중하게 만들고, 극이 중반부를 지나 끝을 향해 갈수록 분노에 차서 테이블 위의 물건들을 손으로 쓸어버리며 주저앉거나, 청문회에서 이성을 잃고 흥분을 하고, 포드와의 성교를 끝내지 못하고 무너지는 모습들은 마치 한 개인의 파국을 보는 듯하다. 영화의 끝으로 갈수록 히튼 헤리슨 법안의 통과 여부보다 한 영화의 주인공으로서, 면죄부를 받을 만한 명분 조차 없는 슬로운이 과연 어떤 결말을 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간다.


하지만 현재로 돌아와 슬로운이 청문회에서 마지막, 강력한 한 방을 날리는 결말에서 이 영화의 정체성은 흔들리고 무너진다. 과연 이 마지막 계획을 위한 슬로운의 설계가 영화 내내 암시가 되었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차치하더라도, 결말로 인해 그동안 쌓아온 엘리자베스 슬로운이라는 캐릭터의 설정이 내부에서부터 분열되는 것은 분명하게 지적되어야 할 문제점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슬로운의 계획 안에 있었으며 슬로운이 예측하지 못한 계획 밖의 변수들이 있었는지, 슬로운의 행보를 어디까지 짜여진 각본으로 보고 어디까지를 슬로운의 본질로 봐야 할 것인지 혹은 영화 내내 슬로운의 본질이 있긴 했었는지에 대한 의문까지 혼란은 더 커진다. 슬로운이 자신의 승리를 향한 욕망이 스스로를 수단으로 삼았다는 가능성은 캐릭터의 훼손 없이 결말까지 설득력을 얻을 수 있고, 뜻밖의 결말이 일종의 플랜 B였기 때문에 아마 슬로운이 뜻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고 수세에 몰렸을 때부터 플랜 B를 계획했을 것이라는 가능성도 그럴 듯 하지만 이 반전을 위한 장치와 암시가 영화 속에 제대로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면 결국 다시 원점이다. 오직 결말을 위한 결말이 영화의 근간까지 흔든 셈이다.


<미스 슬로운>은 주인공의 원맨쇼가 짙은 작품이다. 에스미를 제외하면 다른 캐릭터들은 내용의 흐름 안에서도, 좀 더 거시적인 눈으로 바라본 영화의 구조 내에서도 도구화되고, 심지어 이 영화의 이야기조차도 슬로운에게 먹힌다는 느낌이 강하다. 슬로운이라는 캐릭터는 문제적이기 때문에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한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으로 봤을 때 폭발적인 에너지와 도덕적인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으로 무장하고 무섭게 돌진하여 극을 끌고 왔다는 점, 이 슬로운의 캐릭터성이 영화의 최대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정치 고발성의 스릴러와 면죄부를 줄 수 없는 주인공 사이에서 그 어느 것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감독이 길을 헤맨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럼에도 빠른 속도감으로 지루할 틈 없이 진행되는 이야기의 흡입력은 탁월하고 제시카 차스테인의 연기는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이 두 가지만으로도 볼만한 가치가 충분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관람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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