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좇는다

로스트 룸

by XX







Event Horizon(=사건의 지평선)은 블랙홀의 중심으로부터 일정한 거리에 빛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어떤 지점을 가리킨다. 사건의 지평선으로 넘어간 물질은 그 순간부터 본연의 속성에서 벗어나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시공간에 놓이게 된다는데(그곳에 도달하기 전에 소멸되는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다) 과학이론에 대해 문외한인 나로서는 이해불가능이고 확실하게 증명이 된 이론 인지도 알 수 없다.

영화 이벤트 호라이즌은 이 이론에 상상력을 덧붙인 것으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사물과 사건이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면서 외부 관찰자가 생각할 수 있는 개념의 일체로부터 벗어났다가 뒤틀린 시공간을 지니고 다시 돌아온 순간을 영화의 시작으로 삼는다.

영화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에 존재하는 곳을 지옥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에 후반부부터 펼쳐지는 살육의 현장은 다소 흥미를 떨어지게 만들지만 존재하지 않는 시간을 경험하고 돌아온 사물(우주선)이 그 자체로 의지를 지니게 되었다는 점은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까 생각된다. 예를 들어 영화 매트릭스의 경우 뱀파이어나 귀신, 즉 설명할 수 없는 존재들이 우리의 주변에 나타나는 이유가 이들이 이전 매트릭스 버전의 통제와 규칙에서 벗어나 현재의 매트릭스에서 변종 프로그램으로 계속 남아있게 된 탓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이벤트 호라이즌의 설정도 우주를 벗어나 지구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일상으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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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로스트 룸은 영화 이벤트 호라이즌이 뒤틀린 시공간으로 인해 벌어지는 혼란을 우주라는 공간을 통해 이야기했던 것과는 다르게 현실과 근접한 평범한 일상을 배경으로 한다. 아마도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추측에 불과하겠지만 이벤트 호라이즌의 우주선이라는 물질이 인식 불가능한 어떤 차원으로 넘어갔다가 돌아오면서 물질의 개념이 뒤바뀐 것처럼, 미드 로스트 룸에서의 오브제들이 자율성을 지니고 존재하지 않는 선샤인 모텔 10호실이 열쇠를 통해 나타나는 것 또한 어떤 차원을 지나왔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결국 영화가 우주의 블랙홀을 말하고 있다면 미드는 모텔 10호실이라는 경계를 통해 일상에 나타나는 블랙홀을 말하고 있고, 이것에 의해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고 돌아오는 오브제들과 다른 존재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흥미로운 것은 우주함선과 기계군단,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나오지 않고도 충분히 SF라는 장르의 한계를 넘어선 지점에 있다. 평범한 서점과 전당포, 뉴 멕시코의 갤럽, 열쇠를 꽂을 수 있는 문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선샤인 모텔 10호실, 가위, 우산, 동전, 시계 등 흔해 빠진 오브제들. 굳이 100가지가 넘는 물건들을 드라마 상에서 다 보여주지 않아도 드라마 전개가 가능한 것은 그만큼 일상 도구에 불과한 그 어떤 것도 '물건'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좋은 소재에도 불구 이러한 설정들을 3부작에 구겨 넣기에는 힘이 들었는지 등장인물 설정에 구멍이 너무 많았다는 점이다. 소중한 사람을 되찾는다는 이유가 어떤 장르에서는 굉장한 시너지가 될 수 있는 반면, 이런 장르의 특성상 딸을 위해 목숨을 거는 평범한 주인공의 역할은 필연적으로 드라마의 구도를 싱겁게 만든다. 특출 나게 주인공의 역할을 설정하지 않는 이상 딸을 구하는 아버지 그 이상 이하도 안 되는, 재미없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물론 평범한 오브제가 발휘하는 힘에 각자의 욕망과 목적으로 모이게 되는 등장인물과 주인공의 대치상황이 자연스럽게 선악구도로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므로, 만약 주인공이 극을 이끌어가는 힘이 부족하다면, 그만큼 악역이 그 역할을 부담해야 하지만 칼 크로이츠 펠드, 마틴 루버, 위즐 모두 어딘가 조금씩 악역과는 핀트가 어긋나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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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1) 악역





특히 크로이츠 펠드의 경우 마틴 루버나 위즐과 사정이 다르다. 그가 조 밀러와 가장 큰 대립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에 대한 절실함이 같기 때문이다. 의문은 아이를 다시 찾고자 혹은 살리고자 하는 절실함은 같은데도 어째서 조 밀러는 다시 애나 밀러와 함께 살아 나올 수 있었고, 크로이츠 펠드는 살아 나올 수 없음은 물론 아이를 다시 살릴 수 없었냐는 점이다. (알린 콘로이가 어떤 차원에 갇혀 모텔 9호실을 무수히 떠돌다 일정한 시간 동안 잠깐 동안 나타나는 것처럼 크로이츠 펠드 또한 죽은 것이 아닌, 특정한 공간에 갇혔다고 보는 것이 더 맞겠지만,) 조 밀러와 크로이츠 펠드간의 어떤 차이점이 그들 각자의 결말에 영향을 주었는지 알 수가 없다. 설정 상 크로이츠 펠드는 거래하는 상대방이 요구하는 돈을 지불하고 물건들을 모으는데 이것은 그만큼 그가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단순히 수도회나 위즐, 마틴 루버, 콜렉터스 집단같이 욕망 혹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으로 오브제와 10호실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 주인공과 같은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죽은 아이를 살린다는 것이 순리에 맞지 않기에 크로이츠 펠드의 결말이 존 밀러와 달라야 한다고 본다면 애초에 존재할 수 없는 선샤인 모텔 10호실과 사물에 대한 개념의 일체가 뒤집어진 물건들이 존재하는 것 자체부터 순리에 어긋난다.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을 보자. 열쇠가 있는 10호실을 존 밀러가 닫았기 때문에 열쇠는 더 이상 바깥으로 나올 수 없는 것이 맞겠지만 곧 문이 저절로 열리면서 그 자리에 다시 열쇠가 등장한다.(제작진이 3부작의 끝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지 고민하다 에라 모르겠다 진실은 저 너머에-식으로 결말을 만들었기 때문에...라고는 하지 말자.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미 나온 3부작에 대한 분석이므로) 인간의 선택이 닿을 수 없는 영역에 있는, 마치 이벤트 호라이즌 호가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닌 언제나 다시 나타날 수 있는 것처럼 모텔 10호실 또한 자신의 의지로 언제든지 우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은 좋다, 나쁘다, 옳다, 옳지 않다의 기준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그래서 다시 말하자면 이런 소재에서 선악구도는 조 밀러의 딸은 살아있었고, 크로이츠 펠드의 아들은 이미 죽었기 때문에...라는 이유만으로는 성립이 되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크로이츠 팰드가 실패했다면 마찬가지로 조 밀러 또한 에디 맥클레이스터를 대신해 물건이 되거나, 곧 재회할 것이라는 암시와 함께 애나를 데려오지 못하고 떠나는 결말로 끝났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둘 다 살아있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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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위즐은 어떨까. 드라마가 시작되고 존재감 있는 조연으로서 가장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위즐은 펜을 딸깍딸깍 누르고서는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태워 죽인다. 그만큼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지만 실망스럽게도 조 밀러의 딸 애나를 10호실에서 리셋시킨 후, 죄책감 때문인지 갑자기 겁 많은 코믹 캐릭터가 된다. 아마도 겁 많은 캐릭터로 변한 것에는 철학교수였다는 설정의 영향이 클 텐데 이것은 결코 이 드라마에서 이유 없이 물건들과 모텔 10호실에 집착을 보이는 사람은 없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들은 초반의 위즐에게서 잔인하지만 꽤나 단순 무식한 전형적인 악역을 보게 되다가 갑자기 진지하지만 찌질한 철학교수로 변한 위즐 사이의 간극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짧은 시간 안에 위즐이 조 밀러의 조력자가 되어 정보전달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무리한 설정이 캐릭터 자체의 균형을 무너뜨린 것과도 같은 셈이다.

마틴 루버는 분량 부족으로 가장 변화된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든 등장인물이다. 애초에 1부에서 조 밀러의 동료로 잠깐 나오고 말 것 같았는데, 전혀 앞에서 아무 설명 없이 갑자기 신을 열망하고 자신이 신이 됐다고 착각하는 사람이라니. 로스트 룸 자체가 등장인물들의 이름, 설정의 곳곳에 종교적 상징이 존재하긴 하나 수도회와 함께 가장 종교적 색채가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나는 캐릭터라서 큰 거부감이 있었고, 개인적으로 배우의 이미지나 연기의 무게감 또한 역할에 맞지 않았다고 본다.

주인공 다음으로 드라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악역의 역할을 일정한 사람에게 몰아주기보다 다양한 사람과 집단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조 밀러와 마지막까지 계속 부딪치며 사건을 만들었다면 좀 더 3부작이라는 제한된 분량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았을까 싶다. 위즐이라는 캐릭터를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다가 2부쯤에 죽인다거나 조 밀러가 멀쩡하게 애나와 10호실에서 살아 나오는 것처럼 마지막 장면에 문이 열리고, 크로이츠 펠드가 열쇠를 주으며 멀쩡하게 걸어 나온다거나 하는 등, 이미 드라마에서 나왔던 역사적인 사건을 굳이 드라마상의 현재 시점이 또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조 밀러가 오브제가 되지 않았던 것도 이에 해당될 것이다. 나는 이미 어느 시점에서 오브제들과 선샤인 모텔 10호실을 둘러싼 논리들이 뒤집어졌다고 생각하는데, 때문에 과거의 콜렉터스 집단의 실험이 실패했다고 해서 현재의 크로이츠 펠드가 콘로이와 똑같은 상황에 놓여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물건들과 10호실은 이미 그 자체로 살아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2) 러브라인과 인상 깊은 조연들





로스트 룸은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 표현에 있어서 건조한 편이기 때문에 조 밀러와 제니퍼 블룸의 갑작스러운 관계 변화를 대놓고 보여주는 씬은 매우 황당 그 자체였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들이 떠나는 장면에서는 마치 영화 터미네이터를 떠올릴 법한 비장함이 느껴진다. 애나의 엄마를 대신할 사람을 채워 넣어 가족의 완전한 형태를 제작진은 보여주고자 했던 게 아닌가 싶은데 나쁘지 않다. 오히려 그럴듯하다. 문제는 중간에 불필요한 장면이 없어도 마지막에 함께 차를 타고 떠나는 그들의 모습이 납득 가능했을 거라는 점이다. 연인이나 동반자나 어감은 비슷하지만 사랑을 나누는 관계보다는 같이 함께 떠난다는 관계가 더 훨씬 효율적이고 의미심장하다.

뜻밖에도 이 드라마의 분위기를 살려주는 것은 조연들이다. 아마도 내가 이 드라마의 작가였다면 월리와 스트리츠키, 수지 강의 캐릭터를 만들면서 가장 즐거워했을 것 같다. 매우 흥미로우면서 단순한, 가벼운 조력자에 불과하지만 정확한 인물의 내력을 드러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굳이 복잡한 역사나 구구절절한 사정을 적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재미있겠는가. 특히 판타지나 SF의 장르에서 동양인이나 차이나타운 같은 동양적인 공간은 서양인들의 환상이 집약되어 있는 대표적인 소재다. 로스트 룸에서 수지 강과 세탁소의 등장 또한 미국으로 이민 간 한인이 대부분 세탁소를 운영하였다는 사실을 토대로 이들의 환상이 조합된 설정이 아닐까 싶은데, 물론 터무니없이 큰 액수를 요구하는 수지 강이라는 캐릭터도 그냥 나온 것은 아닌 듯하다.

다만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같은 작품에서의 세탁소가 의미하는 상징성이 아닌, 세탁소라는 공간 자체가 가진 상징성의 측면에서 봤을 때의 궁금증이 있다면, 여러 작품들에서 마피아 같은 범죄조직이 불법적인 음지 사업을 통한 수입을 세탁소를 이용해 합법적인 소득으로 바꾸는, 실제에 기반 한 설정이나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에서 마약을 제조하는 곳이 세탁소 지하실인 것처럼 평범하면서 이러한 모종의 비밀을 은닉할 수 있는 공간이 세탁소와 잘 맞아떨어지는 건가 하는 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어렸을 때 자주 갔던 동네의 세탁소는 굉장히 작고 허름했는데,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다리미와 이상한 냄새, 이름표를 달고 가지런히 걸려 있는 옷들 너머로 어떤 공간이 있을까 궁금했던 적이 분명 있었던 것 같긴 하다. 좁고 어두운 공간은 많지만 세탁소처럼 지극히 평범한 장소가 이러한 공간의 이중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존 도와 오브제




개인적으로 드라마에서 가장 큰 긴장감을 주었던 장면은 조 밀러가 폴라로이드 사진을 통해 바라본 로스트 룸의 원형에서 에디 맥클레이스터의 존재를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상한 힘을 가진 평범한 오브제들이 100가지가 넘고 이것을 묶어 줄 만한 핵심이 드라마 내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조 밀러는 그를 만나기 직전까지 계속 알 수 없는 미궁으로 좀 더 깊숙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나타난 그의 존재는 꼬이고 꼬인 이야기를 명확하게 풀어줄 수 있는 핵심인물임과 동시에 어쩌면 조금은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악역들 사이에서 무게감 있는 절대자의 등장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즉 그가 중립을 선언하든, 주인공과 대립되는 역할로서 존재하든 간에,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오브제들과 다르게 존 도는 인간이라는 형태로 나타났기 때문에 우리들은 이 인물의 등장 이후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인지 기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에디 맥클레이스터 또한 단지 오브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들은 대신 흥미롭고 중요한 정보 하나를 얻게 된다. 알 수 없는 이상한 일을 선샤인 모텔에서 그가 겪은 후, 에디 맥클레이스터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증명할 만한 기억과 기록이 모두 사라졌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조 밀러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데, 1) 사람도 오브제가 될 수 있다는 것 2) 사람이 오브제가 되면 그를 아는 모두에게서 그 사람은 잊혀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또다시 생기는 의문은, 오브제가 우리들이 도달할 수 없는 차원을 건너고 돌아왔을 때, 그것의 개념이 다시 세워지는 과정에서 오브제는 어떤 규칙의 지배를 받으며, 바깥의 세상은 어떤 영향을 받는가이다. 에디 맥클레이스터가 다시 메이블 스미스를 만났을 때, 그녀는 미혼자였다. 세계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그녀의 남편을 누군가로 대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로스트 룸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세계가 오브제가 된 존재를 제외하고 다시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닌, 세계 자체가 송두리째 어떤 큰 변화를 겪는다는 것을 말해주며, 그렇다면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시공간의 뒤틀림으로 인해 기억 체계의 변화를 겪었거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의 체계 자체가 뒤집어지는 등 단순히 로스트 룸과 관련된 인물들만이 영향을 겪게 되는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사물과 인간이 오브제가 되는 과정에서 각각 어떤 규칙이 적용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찌 됐든 리셋은 선샤인 모텔 10호실 안과 밖 모두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재미있게도 이러한 추측은 다크 시티나 매트릭스 류의 영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된다.

한편, 존 도가 계속 시간 속에서 외로이 남겨지는 삶을 산다는 것은 낯이 익은 설정이다. 뱀파이어 물부터 그린마일이나 닥터 후, 토치 우드 등 죽지 않는 삶이 주는 환상과 외로움, 고독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잘 먹히는 소재 중 하나가 아닌가 싶은데, 드라마가 계속 진행이 된다면 그래서 오브제가 된 인간에 대해 좀 더 집중이 되지 않을까. 존 도의 캐릭터가 그냥 사라지기에는 아쉬움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로서는 제작진이 그가 죽지 않았다 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들고 와도 기쁠 것 같다.




이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강력한 힘은 캐릭터가 아닌 세계관에서 나온다. '익숙하면서 낯선'의 환상이 다양한 작가들에 의해 문학작품에서 변종되어온 것과 달리 영상매체는 텍스트보다 더 제약이 많기 때문에 그 수가 지극히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우리들은 로스트 룸의 있음 직한 도심 판타지의 이미지에 많은 매력을 느낀다. 하지만 불완전한 캐릭터와 완벽하지 않는 세계관에서 멈춰버린 이 드라마의 한계 또한 분명하다. 딜레마는 관객들이 '익숙하면서 낯선'환상의 이유를 굳이 그 환상의 밑바닥까지 확인하면서 찾고 싶어 하지는 않을 거라는 점이다. 아마도 이유를 물어서는 안 되는 불문율을 지닌 판타지와 다르게 나름대로의 원리와 체계를 지닌 지극히 일상적인 로스트 룸의 판타지는 흥미로웠겠지만 굳이 계속 그 이유를 끝까지 부여하기 위해 쓸데없이 낭비된 캐릭터의 설정이 그 세계관까지 흔들면서 관객이 끝까지 가지고 가야 할 환상까지 깨뜨린 것은 분명 제작진이 잘못 판단한 부분이다. 하지만 불완전한 캐릭터와 완벽하지 않은 캐릭터는 어쩌면 이 장르가 가지고 있는 분명한 딜레마이며, 이미 예상된 한계일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이유를 찾고 싶어 하지만 또한 그 이유를 확인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판타지라면 더더욱, 그리고 그것을 이미지로 증명해야 한다는 점에서 또한 그렇다. 로스트 룸이 SF라는 장르를 가장 평범한 방식으로 풀어낸 TV 드라마로서 잠재적인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이유 또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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